부모의 죽음에 관하여

영화 프로메테우스

by 인티니머스

로봇이든 인간이든 자기 부모가 죽길 바라잖아요?

- 영화 <프로메테우스> 중 AI 로봇 데이빗의 대사



최근 접한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고 뇌리에 남았던, 그리고 너무 충격적이었던 대사였다.


아주 당연스러운 시각에서 그 어떤 사람도 자기 부모의 죽음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세상에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생각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면 늙은 부모님이 치매나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중병에 걸린 상태에서 자신의 노후를 책임질 재산이 없다면?


당장 내 몸 하나 살피기에도 버거운 지금의 복잡한 세상에서 마주한 부모님의 몰락은 그 어떤 재앙보다도 크고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 중 데이빗의 대사에서 유독 싸늘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의 정서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단어 그 자체로 ‘부모의 죽음’을 바라는 인물은 두 명이다. 웨이랜드의 딸 ‘비커스’와 또 다른 아들이자 창조물인 ‘데이빗’.


그러나 비커스와 데이빗의 차이를 규정하는 것은, 다시 말해 인간과 로봇의 차이를 규정하는 것은 담고 있는 마음의 차이이다.


비커스는 아버지 웨이랜드의 헛된 꿈인 영원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를 바란 것이지, 아버지의 즉각적인 죽음을 바란 것이 아니다. 즉, 아버지에게서 진정한 인간다움을 완성시키는 결과로의 죽음을 바랐던 것이다.


반면, 데이빗은 자신의 창조자인 웨이랜드를 말 그대로 사라지게 하여 자신이 새로운 신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자라 어느덧 내가 새로운 부모가 되고 자식을 기르는 사이, 부모님에게서 점차 멀어져 가며 접한 데이빗의 한 줄의 대사가 가슴을 관통시켰지만,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인터스텔라의 대사에서 조금의 위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마치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지. 그저 추억의 조각말이야.

- 영화 <인터스텔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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