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후루, 두쫀쿠에 이어 봄동 나물까지…
왕과 함께 사는 남자의 흥행에 이어 강원도 영월의 청룡포에 주말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이러한 집단적으로 유행을 선도하고 좆는 문화는 한국인에게 유달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어떤 문화적 연관성이나 지리학적 이유로 근거함은 모르겠지만…
EBS의 다큐시리즈 주식의 시대에서도 60%에 달하는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의 비중은 개인적이 아닌, 집단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최초가 아닌 비트코인 조차도 한국인에 의해 많은 것이 이루어졌으며…
엄청나게 불길이 솟구쳤다가 금새 가라앉는 한국인의 이러한 집단적인 특성을 예전부터 냄비근성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자칫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이러한 특징들은 많은 문화적 부작용들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집단적인 화합을 교묘한 정치적인 시스템으로 이용한다면 그 어떤 나라나 공동체도 쉽게 달성하지 못할 목표를 일구어 낼 수 있다.
1990년 후반 IMF 구제금융 사태 시절의 국가부도 위기에서 달성한 전국민적 기부행렬인 ‘금 모으기 운동’
개발도상국에 지나지 않았던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들 수 있도록 탄탄한 기초산업의 인프라를 만들어낸 ‘새마을 운동’
전 세계적 펜데믹 사태인 코로나19를 그 어떤 집단보다 빠르게, 그리고 스마트한 극복은 이러한 집단문화를 매우 긍정적으로 변모시킨 역사이다.
21세기로 접어든 후 가장 빠르게 전국에 인터넷을 보급하고 많은 IT 산업을 발전시켰으나 그로 인해 동반 발생한 개인의 SNS로 인해 서로 비교하고 경쟁에 시달리는 지금의 한국은 점점 더 경쟁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철저한 개인의 삶을 살고 있다.
집단의 결속력이 가장 강력한 특징인 한국이 가장 개인적으로 변화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결속의 장점을 이용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교묘한 정치적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바닥이 보이는 출산율의 위기를 그 누구보다 슬기롭고 건강하게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부의 기반이다.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