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기억

호르몬의 장난

by 인티니머스

긍정적이다 못해 낙천적


무언가를 마음속 깊이 담아두기보다 쉽게 미련을 버리는 마음


넉넉하지는 않은, 아니 굳이 따지자면 가난에 더 가까운 기울기였지만 마음은 부족하지 않았던 삶


20대 중반까지의 나의 삶을 특징지을 수 있는 간략한 문장들이다.


인생을 살며 수많은 짝사랑을 담아왔으나, 큰 용기를 가지지 못하고 항상 멀리서 상상의 연인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청춘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이별은 큰 미련의 가치를 두지 않았다.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몇 만 원의 데이트 비용은 기쁨보다는 걱정을 가져다주었으며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분명 있었지만, 그 지속은 오래가지 않았던 형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이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로지 '외모 지상주의적'이었다.


이러한 나의 삶의 역사가 한순간에 박살 나버린 사건을 떠올려보자면....


첫 직장에 입사한 후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처음 맞이하게 된 그녀와의 기억이다.


바로 앞선 조의 유별나게 아름다웠던 사람에 비해, 이름을 호명하고 같은 조로 배정된 그녀는 첫인상부터 제로에 가까웠다.


물론 그녀 또한 나를 별 볼일 없이 여겼을 테지만, 누구보다 여자에게 관심이 많았던, 이제 월급을 받으며 형편이 나아진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기도 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그렇게 맞이한 그녀와는 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성격적인 부분에서도 연수원 내내 사사건건 부딪히며 충돌했었다.


몇 주간의 연수가 끝나고 각기 다른 지사로 배정되는 순간, 그녀와의 운명은 우연인지 몰라도 지속되게 되었다.


몇 없는 동기인지라 첫 직장생활에서 숱한 토로를 받아주다가도 계속해서 충돌은 멈추지 않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약 일여 년이 지나면서 가랑비에 스며가듯 점차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누구보다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녀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이성적으로 부정했지만


오히려 의도적인 부정은 더더욱 나의 생각과 감정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한 후로 이상하리만큼 색다르고 신기한 경험(아마 우울증과 비슷한)을 했었다.


식욕과 수면욕을 포함해서 상당히 많은 욕구들이 사라졌으며 잠식당한 머릿속은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절절한 이별을 맞이한 비운의 주인공처럼, 세상의 격정은 혼자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특히나 어쿠스틱 콜라보의 '묘해, 너와'와 '너무 보고 싶어' 같은 감성적인 노래에 빠져사는 궁상을 떨어야 했으며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녀의 프로필에 나타난 상태메시지에 매달리며 온갖 망상에 빠져사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고, 어떤 콘텐츠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오로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은 그녀와의 시시콜콜한 대화였다.


삶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오만한 생각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던 순간에 나의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것은 친구의 매우 이성적인 일침이었다.


이러한 감정과 궁상은 호르몬의 장난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 달간의 궁상으로 약 5kg 정도의 몸무게가 빠져버린 시간의 해결이었는지, 아니면 친구의 이성적이고 정확한 진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면 호르몬의 탓이 나의 궁상을 정당화해 줄 수 있어서인지) 이 일침의 이후로 나는 긴 우울의 터널을 지나 미련을 떨쳐낼 수 있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도 모든 것을 잃고 살던 톰에게 다가온 것은 새로운 만남과 인연이었다.


정말이지 누구에게 쉬이 터놓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웠던 우울의 시절, 하지만 인생에 있어 누구나 쉽게 접하지 못할 특별한 경험으로 자만에 대한 부끄러움과 인생의 또 다른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외모가 다가 아니란 것. 아니, 누구보다 내 타입이 아니라고 자신했던 사람에게 끌리다 못해, 잠식당했던 경험은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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