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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자기 Jun 03. 2022

'하고 싶은 일' 하려고요

연고 없는 목포에서 갑자기 창업을 했다

 

소도시 창업 | 창업 편 인터뷰 ① 

목포에서 5년 버틴 스타트업 '공장공장' 박명호 대표의 솔직 매콤한 인터뷰   




✧ 이 인터뷰를 읽고 나면 다음 내용을 알게 됩니다.

-연고도 없는 지역에 정착해 기획사를 창업한 사정
-동업자와 동업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이름 없는 작은 스타트업의 홍보 비법
-인터뷰어가 낚아 올린 작고 소중한 인사이트






"네? 무슨 공장이라고요?"



회사명을 말하면 대체로 위와 같이 되묻게 되는 곳 '주식회사 공장공장(이하 '공장공장')'은 인구 22만 명의 작은 바닷가 마을 목포에 있는 스타트업이다. 실제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장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만들기는 한다. 행사도 만들고, 영상이나 책도 만들고, 커뮤니티와 브랜드까지 만드는 기획사다.



공장공장은 회계 일을 7년 넘게 해오던 나에게 콘텐츠 기획자로 커리어를 전환하도록 기회를 준 곳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싶어서 안정적인 커리어를 버리고 기획 일을 시작했다. 커리어도 주거지도 바꾸는 일생일대의 결정은, 의외로 쉬웠다. 공장공장이 괜찮아마을을 만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아마을은 과도한 경쟁과 불확실한 미래에 지친 청년들에게 "쉬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커뮤니티다.



목포로 일하러 간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고기 잡으러 가는 거냐"고 농담할 정도로(농담이었겠지?) 알려지지 않은 땅, 목포. 공장공장은 이곳에서 5년 넘게 버틴 스타트업이다. 공장공장의 시작도 나와 비슷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박명호, 홍동우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회사였다. 시작은 청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푸르렀고, 그들은 열의에 가득차 있었다.



공장공장 동업계약서를 작성한 날의 박명호 씨와 홍동우 씨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라는 말은 제법 무거웠다. 그들은 밤낮 없이, 주말 없이 일했다. 하지만 억 단위의 빚을 내서 회사를 운영해야 했고, 거의 모든 직원이 한번에 퇴사한 시기도 거쳐야 했다. 심지어 그들 입으로 직접 희망퇴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던 때도 있었다.



스타트업 대표라는 빛나는 명함 뒤에는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온갖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내밀하고, 구차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를 굳이 스스로 꺼낼 필요가 있을까? 제 살 깎아먹는 일은 아닐까? 그럼에도 명호 씨(現 공장공장 대표 박명호)는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참조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과연 대표 입으로 얼마나 솔직한 회사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살짝 미심쩍었지만, 발주처의 부당한 처우를 SNS에 공개했던 명호 씨가 아니던가. 자기 회사 이야기는 얼마나 솔직하게 공개하나 두고 보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뷰 질문을 준비했다.


뜬금없이 연고도 없는 목포에 정착한 이야기부터, 돈은 어떻게 벌었는지, 빚을 지고 직원이 연이어 퇴사하는 위기는 어떻게 이겨냈는지, 지원사업에 붙는 팁은 뭔지, 로컬에서 먹고살 만한지 등 한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고 버텨온 이야기를 깊고 자세히 들어볼 예정이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진짜 이야기를 말이다.





연고 없는 소도시에서 5년 버틴 스타트업 공장공장의 이야기는 창업, 자금, 조직, 로컬을 순서대로 다루며 인터뷰 형식으로 연재된다. 과연 명호 씨는 무슨 이야기를 어디까지 들려줄 수 있을까?



*인터뷰어: 김혜원(공장공장 콘텐츠 기획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명호 씨 SNS를 찾아봤는데 비판적인 의견도 공개적으로 올려놓으셨더라고요. 솔직하다 못해 매콤하게 느껴져서 읽는 제가 '이래도 괜찮나' 걱정이 되었는데(웃음),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뭔가요?

▶︎ 가장 큰 이유는 '사회 선배로서 그래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서예요. 꼭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요. 초기 판 짜는 일을 여러 번 했었는데요, 말하기 어렵다고 회피하면 무급 노동 같은 나쁜 관습이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더이상 피해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으려면, 판을 만드는 사람이 자기 몫을 해주어야 하죠. 고민이 될 땐 ‘지금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봐요.



솔직함도 솔직함이지만 기록의 양도 놀라웠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기록을 해오셨더라고요. 도대체 얼마나 기록을 많이 하시는 거예요?

▶︎ 업무 기록이랑 일상 기록 포함해서 보통 한 달에 4,000개 정도 해요. SNS에는 일부만 공개하고 있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기록을 해왔는데, 유명해지고 싶은 건 아니었고(웃음),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 했어요. 사람은 비슷한 문제를 만나고 비슷한 고민을 반복하며 사니까요. 이전의 기록이 저에게 답이 되어주죠.

기록에서 다음 기획으로 이어지는 힌트를 얻기도 해요. 괜찮아마을(공장공장의 대표 사업으로, 청년마을 사업의 시초가 됨)도 이전에 했던 기록에서 이어진 프로젝트였거든요.



개인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사업의 결과 보고서도 공유하시는 걸 보고 놀랐어요. 그건 기업 기밀 아닌가요?

▶︎ 저는 공장공장이나 괜찮아마을, 심지어 저 자신도 하나의 브랜드로 여기는데요, 브랜드가 초기에 인지도를 쌓기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장공장 직원들은 모두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적으로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있어요.

사업 계획서나 결과 보고서를 공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사람들이 그 자료를 보기 위해 웹사이트에 방문하면 우리 브랜드를 인지할 계기가 되겠죠. 어떻게든 노출시키고 기억되도록 하고 싶어서 기록을 활용하고 있어요.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서는 성공한 것만 공유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괜찮아마을 이후에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제안서는 탈락했는데도 공개하셨더라고요.

▶︎ 괜찮아마을 자료를 공개한 이유는 조금 다른데요, 괜찮아마을이 지역이나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확산하고 싶었어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고 싶었거든요. 최근에는 전국 곳곳에 청년마을이 생겨나고 있는데요, 그분들이 괜찮아마을 자료를 참고하셨다고 하실 때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탈락한 제안서도 공개하는 저세상 쿨함



기밀까지 공개하는 솔직한 인터뷰가 기대되네요(웃음). 먼저 근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취업이나 사이드 프로젝트 등 다양한 길이 있는데요, 굳이 창업이라는 고난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뭐예요?

▶︎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조립 컴퓨터를 판매하거나 참고서 구입을 대행하면서 돈을 벌어봤어요. 남들 좋다는 대기업(LIG 넥스원) 가서 일하기도 해봤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10년 뒤의 제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여기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조직을 벗어나서 스스로 뭘 할 수 있을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회사 밖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10년 뒤가 상상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창업을 결심한 거죠. 그렇다고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든 건 아니었고요, 다른 기업의 창립 멤버로 들어가 다양한 역할을 먼저 경험해봤어요. 그러다가 창업을 하게 되었어요.  



공장공장은 동업자인 동우 씨(現 공장공장 이사 겸 괜찮아마을 목포 대표 홍동우)와 함께 시작하셨죠? 동우 씨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 당시 동우 씨는 스쿠터 렌털업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전국 일주하려고 스쿠터를 빌리면서 만나게 됐어요. 고민과 가치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잘 맞았고, 동우 씨 같은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오래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기 보다 같이 할 일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여행, 기획, 카페 등 우리가 해온 일과 앞으로 할 일을 하나로 묶을 '공장공장'이라는 이름을 우선 지었죠.



미래의 동업자를 만나게 해준 분홍 스쿠터



안 그래도 회사명이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공장이냐고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는 이 회사명,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 빌 공(空), 장소 장(場), 함께 공(共), 장소 장(場)을 써서, 빈 곳을 함께 채우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의미는 좋네요. 그런데 이름만 있고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이 회사를 시작했다? 제가 다 불안해지는데요(웃음). 모호함 속에서도 본격적으로 동업자와 회사를 운영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 동우 씨와 '한량유치원' 프로젝트를 하면서 같이 일을 만들어가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공장공장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시작해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한량유치원은 어떤 프로젝트였어요?

▶︎ '쉴 줄 아는 한량이 되는 방법을 처음 배우는 공간'이라는 콘셉트로, 제주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빌려서 준비했어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러 오라고 제안했어요. 짧게 준비하고 홍보했는데도 거의 만실이었는데요, 49일 동안 총 671박을 팔았죠.



제주에서 진행했던 한량유치원의 한량들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까요?

▶︎ 국내에서 제주만큼 브랜딩이 잘된 곳도 없잖아요? 사람들은 이미 제주에 많이 오는데 그들이 소비할 콘텐츠가 많지 않더라고요. 그 지점을 노렸죠. 진입 장벽이 낮은 여행과 숙박 상품을 기획했고, 인지도 있는 지인을 통해 홍보했어요. 이 두 가지가 유효했던 것 같아요.



그 두 가지 외에 뭔가 특별한 기획의 비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씀해보시죠!  

▶︎ 뭐가 있을까요(웃음).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매력적인 디자인'인데요, 한량유치원도 시각적으로 단번에 눈길을 끌 그림을 제시했어요. 제주 바다, 낭만적인 여행 사진 등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죠. 짧은 시간에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빠르게 흥미를 끌 요소를 확보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기획을 준비해도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텐데요, 유명한 지인을 활용한 방법 외에 어떤 방식으로 홍보하셨어요?

▶︎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홍보를 다 했어요. 기본을 소홀히 하지 않았죠.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인 홍보도 열심히 하고, 보도자료를 내고, 페이스북 광고도 했고요. 홍보 콘텐츠의 반응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 같은 콘텐츠는 비슷한 방향으로 계속 발행했어요. 그리고 한량유치원의 준비 과정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매일 콘텐츠를 발행했는데, 사람들이 당장 방문할 생각이 없어도 구독까지 하더라고요. 결국 그분들이 뒤늦게 찾아오기도 하고요.



대체로 스타트업들이 적은 예산으로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죠. 제한된 예산 안에서 관심을 끌고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는 뭘까요?

▶︎ 결국 홍보는 확실한 스토리텔링, 흥미로운 요소, 매력적인 시각화, 꾸준한 발행 이 네 가지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제주에서 성과가 좋았으니 그대로 창업해도 됐을 텐데 왜 연고도 없는 목포로 오셨어요?

▶︎ 처음에는 제주에서 하는 방법도 모색해 봤는데 마땅한 계기가 없더라고요. 이렇게 된 거 내가 좋아하는 치앙마이에 가서 앞날을 고민해보자 싶었어요. 동우 씨랑 같이 치앙마이에서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한량유치원 치앙마이' 버전을 구상했는데요, 리조트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협상을 하다가 자금 문제에 부딪혀서 접게 되었죠. 다음을 고민하던 차에, 한량유치원의 손님으로 오셨던 강제윤 시인님의 제안이 떠올랐어요. 제주 말고 다른 지역에도 관심 있으면 목포에 오라고, 오래된 여관 ‘우진장'을 무상으로 빌려주겠다고 하셨던 제안이었죠. 이 제안 덕분에 2017년에 목포로 향하게 됐어요.



목포행의 결정적 이유가 된 오래된 여관 우진장



파격적인 제안이네요. 하지만 고향도 아니고 연고도 없는 곳에서 창업하는 건 더 파격적인 결정 같은데,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 오히려 아무런 인연도 없고, 인프라도 없는 것이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목포 원도심에는 지금보다 더 인프라가 없었어요.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차를 타고 가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여백이 참 많은 동네였죠.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 동네가 흥미롭더라고요. 산과 바다, 섬 같은 자연이 가까이에 있고, 적산가옥이나 일본 영사관으로 쓰인 건물 같은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어요. 고속도로와 KTX가 있어서 교통도 나쁘지 않았고요. 목포가 여백이 많은 흥미로운 동네라고 생각되자 재미있는 기획이 떠오르더라고요. 아직 아무도 깃발을 꽂지 않은 목포에 내가 먼저 깃발을 꽂을 수 있겠다 싶었죠(웃음).



열악해 보이는 환경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판단하셨군요. 심적으로 부담은 없으셨어요?

▶︎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와서 길게 고민하지 않은 것도 있어요. 하나하나 재고 따졌으면 결코 시작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목포에 정착하신 다음, 처음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처음에 저는 서울이랑 목포, 제주를 다니면서 돈을 마련했어요. 일을 따오려고 전국을 헤매던 시기였어요. 일하면서 미래를 위한 사업 기획도 했고요. 동우 씨는 우진장을 수리하고 다듬어가면서,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그때 사진을 보면 동우 씨는 먼지 가득 뒤집어쓰고 작업하는 모습이 많죠(웃음).



먼지도 아랑곳 않고 우진장을 수리 중인 동우 씨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하셨어요?

▶︎ 용역을 수주 받아서 진행하거나, 여행이나 상품을 판매했어요. 그래도 모자라는 부분은 지원금을 받거나 빌리기도 했고요. 일단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어떻게든 채워 넣었죠. 무모해 보이지만 일단 시작하고 그 다음에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마무리 지었어요.

처음에는 서울에서 사업할 때처럼 투자 받을까도 고민했었는데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는 공간 외에 투자 받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물론 초기여서 비즈니스 모델이 정교하지 않기도 했고요.



그러고 보니 공장공장은 다른 스타트업과는 달리 돈이 아니라 공간을 투자 받은 셈이네요.

▶︎ 맞아요. 저희는 공간처럼 자본이 크게 들어가는 영역에서는 간접 투자 방식을 활용했어요. 예를 들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투자자 분들에게 무상으로 공간을 빌리거나, 저희가 필요한 건물이 생기면 투자자 분이 대신 매입하시고 저희에게 빌려주시는 방식이었죠. 보증금 없이 사용하되 은행권 이자율에 준하는 월세를 지급해드리고, 건물 가치가 상승해서 이익을 보실 수 있도록 잘 관리하고 있어요.



우진장이라는 공간을 간접 투자 받았는데 방치되어 있던 오래된 여관이라 다시 사용하기까지 시간도 돈도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우진장을 고치는 기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 한 달 반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너무 오래된 공간이라 고치고 치워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일부 공간만 정비하고 사무실로 썼어요. 시멘트가 떨어지는 벽을 보며 빈티지하다고 했던 낭만이 있었죠(웃음).



그 정도 상태라면 수리비도 꽤 나왔을 것 같은데, 얼마나 들었나요?

▶︎ 한 3,500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아요. 모았던 돈과 융자로 마련한 돈을 수리비에 썼죠.



우진장을 다 고치고 나서는 어떻게 활용하셨어요?

▶︎ 사무실 겸 직원들 숙소로 썼어요. 그러다가 한량유치원을 목포에서도 진행하면서 참여자들의 숙소로 활용했어요. 이후에 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괜찮아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한 입주민들의 숙소로 쓰였고요.



괜찮아마을이 우진장에서도 진행이 되었군요. 사실 제가 공장공장을 알게 된 계기가 괜찮아마을이었어요. 대부분 공장공장보다 괜찮아마을을 더 많이 알고 계실 거예요. 그만큼 괜찮아마을은 공장공장의 대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괜찮아마을을 만들어간 이야기는 다음 인터뷰에서 자세히 들어볼게요!



공장공장의 시작을 만든 사람들






'10년 뒤가 상상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창업하기로 했죠.





✧ 인터뷰어가 낚아 올린 작고 소중한 인사이트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비슷한 고민에 빠지고는 한다. 기록해 두고 고민에 빠지면 찾아보자.

아무것도 없는 환경이 오히려 블루오션일 수 있다. 먼저 깃발을 꽂을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적은 예산으로 효과적인 홍보를 하려면 '확실한 스토리텔링, 흥미로운 요소, 매력적인 시각화, 꾸준한 발행' 네 가지를 잘 조합해보자.





✧ 부록 ㅣ 그날의 노트

2017년 6월 28일 <그러니까 목포에 왔다> by.박명호

나는 일반적인 상황보다
기회가 더 잦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아니더라도 기회라고 생각하는
성격 탓도 있다.

어떤 상황이라도 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기회라고 생각하면
그 일이 어떤 일이더라도 좋아졌다.

그 기회가 나를
이 다음 단계로 몰고 갈 것이란
작은 믿음이 있다.

숱한 실수와 실패 속에서
변변하게 가진 것 없는 중에도
계속 시도하고 시작하는 이유는 그것에 있다.

그러니까 목포에 왔다.  






✧ 다음 이야기 | #자부담2억 #단체퇴사 #청년마을


내 돈 안 쓰려고 정부 지원 프로젝트에 신청했는데, 결국 내 돈 2억을 써야 한다? 직원들이 다 퇴사하겠다고 한다? 청년들이 괜찮아지려고 만든 괜찮아마을. 그러나 괜찮아마을을 만드는 그들은 정작 괜찮지 않았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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