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조모님을 함께 겪은 시절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6.25 피난 시절 두 할머니는 한집에 살았다.
외갓집으로 피난 갔기 때문에 외할머니는 안방에, 친할머니는 건넌방에 기거하셨다.
두 분은 성격과 생활방식이 반대였다. 공통점은 하나, 장죽에 담배 피우시던 것이다.
친할머니 소개부터 하면 얌전하신 용모에 성격이 온유하시고 자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으셨다. 식사는 아주 적게 하시고 하루 종일 얌전히 앉아 있거나 누워계셨다. 좀 편찮으신가 싶으면 남편인 할아버지가 진맥하고 보약을 지어서 주면 아들 며느리가 지극정성으로 달여서 모셨다. 요즘 젊은이들 말로는 이런 할머니의 인생을 ‘개꿀’이라고 한단다,
친할머니는 겨울나기를 힘들어하셨다. 겨울이 되면 입이 쓰다고 음식을 잘 잡숫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셔서 보약을 지어주어도 잘 드시지 않았고, 잡숴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셨다. 그러면 자식들의 걱정 속에 겨울을 누워만 지내며 보내셨다. 봄이 오는 기미라도 보이면 우리 어머니는 양지바른 장독대 옆에 돋아난 돈나물을 뜯고 움에서 노란 싹 난 무를 꺼내셨다. 나박나박 썬 노란 무 싹과 무, 푸른 돈나물, 실고추를 섞어서 거기에 찹쌀풀을 쑤어 넣고 김치를 담아 부뚜막에서 익혔다. 이렇게 입맛 돋우는 돈나물 김치를 만들어드리면 할머니는 밥을 조금 잡수신다. 또 어머니는 아침 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종다래끼와 칼을 들고 논두렁으로 가신다. 방금 돋아난 쑥을 뜯어 쌀을 빻아다가 쑥버무리를 만드신다. 그러면 할머니는 쑥 향이 좋다고 잘 잡수신다. 기운을 찾으신 할머니의 얼굴에 생기가 도신다. 어른들은 휴우, 하고 할머니가 건강해지신 모습을 보며 얼굴이 밝아진다.
이것이 일 년 중 봄을 맞이하는 우리 식구의 첫 통과 의례였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우리 어머니가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부모가 당신들을 모시고 살 자식을 선택하였다. 셋째 아들인 우리 아버지가 선택되어 영광으로 알고 할아버지와 함께 한약방을 하셨다. 시부모님을 모시는 우리 어머니는 무조건 말없이 잘하시고 고생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도 부모님 말씀에 복종하며 잘 자랐다.
외할머니는 길게 쓸 말은 없다. 왜냐하면 친할머니와 정반대 되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성격이 활달하셔서 외삼촌과 외숙모를 매일 호령으로 다루셨다. 그렇더라도 외숙부 내외가 외할머니께 복종했던 것은 우리 부모님과 똑같다.
오늘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조모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거나 그리워서가 아니다. 단지 어떤 성품이셨든 집안의 어르신으로 군림했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나이 든 노인들이 집안의 어른으로서 좋은 대접과 존중을 받으면서 살았다. 아마 요즘에 이런 대접을 받길 원하는 노인이 있다면 자식들이 모두 나가 살고, 혼자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시대가 된 것이 안타깝거나 화가 난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 할머니와 우리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삼대의 삶을 생각해보니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세상살이가 이렇듯 달라졌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앞으로 100년 뒤에는 세상이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