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물장수 2

by 사오십년대소녀

방물장수 두 내외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가면 하루해가 다 갔다.

어머니는 방물장수에게서 여러 반찬거리를 샀다.

조기, 동태, 북어, 멸치, 오징어 등등

우리 아버지가 네발 달린 짐승고기를 통 안 잡수셨기 때문이다.

원래 방물장수는 화장품이나 장식품 같은 걸 팔지만, 우리 어머니가 부탁해서 특별히 우리집엔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우리집은 바다에서 거리가 먼 산골에 있어서 그 시절에는 비린 것들이 큰 반찬이 되었다.

방물장수가 왔다 가면 저녁 반찬이 푸짐했다. 며칠 잘 먹으며 부모님은 방물장수 이야기를 하셨다.

동네 아낙네들은 공동 우물가에 모여 화장품 얘기를 하곤 했다. 살이 하얘지고 예뻐졌다고 좋아했다. 방물장수가 한 푼도 안 깎아줬다고 흉도 보았다.

우리 할아버지가 큰기침하며 나오시면, 하던 이야기를 갑자기 끊고 물동이를 이고 총총 사라졌다.

방물장수는 물건만 판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식이 없어 돈이 많아 돈놀이도 하였다,

우리집은 언니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교엘 다녔기 때문에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방물장수에게 이잣돈을 빌려서 언니들에게 학비를 대주시고, 약방에서 번 돈으로 3할 이자를 쳐서 갚았다.

동네 아낙네들은 우리집도 흉봤다. 돈 벌어 땅 사서 아들들 줄 생각 안 하고 시집가버리면 그만인 딸들 공부시킨다고. 그러다 우리 어머니에게 혼나고 입을 삐죽거리며 사라졌다.

동네 사람들 말은 요즘 사람들에겐 기가 막힌 말이지만, 예전에 딸에 대한 인식은 그랬고, 딸들은 그런 대접을 받았다. 그런 세상에서 이자 빚까지 내가며 딸들을 공부시킨 우리 부모님은 깨고 현명하신 분들이었다.

덕분에 우리 언니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와 의사가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늙고 힘들어 나보고 사범학교에 가라고 했다. 사범학교는 학비를 내지 않았다. 당시는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시대였으니까 난 아무 토 달지 않고 사범학교에 갔다.

부모님이 늙으셔서 남동생 둘은 언니들과 내가 학비를 내주고, 밥을 해 먹여서 가르쳤다.


해 질 무렵 떠난 방물장수 내외는 한 달 지나면 잊지 않고 다시 왔다.(지난 1편에서 얼마에 한 번 왔다고 썼는데 정확하지 않다. 옛날에 시간관념도 별로 없고, 옆 마을에 왔다가 해가 남으면 잠깐 들르기도 했었다.)

또 한바탕 우리집 마루에 장 흥정이 벌어지고 나면 해가 넘어갔다.

방물장수는 움직이는 ‘편의점’이었고 그들의 방문은 시골 동네의 중요한 ‘행사’였다.


언젠가부터 방물장수는 오지 않았다. 그들도 늙어버렸으니까.

그렇다고 동네 사람들이 생필품을 못 사서 곤란을 겪거나 새로운 방물장수가 온 건 아니다.

방물장수와 교대라도 하듯, 두메산골 고개에 도로가 생기고 버스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큰 도시로 물건을 사러 다니게 되었다.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이다.


우리집 마루에 한 달에 한 번 방물장수와 동네 사람들이 불러일으키던 생기와 흥정은 사라졌고, 버스를 타고 고개 넘어 도시에 다녀온 이야기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방물장수는 늙어서, 그리고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사라졌다.


가끔 생각나는 방물장수 내외를 이 기회에 글로써 추억하려니, 그들로 인해 설레던 마을 분위기가 고스란히 떠오르고 더불어 부모님 그리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들, 아련하고 그립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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