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순항중 [分家旅程]
7월
눈 깜빡할 사이에 한 달이 가버린 느낌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감각으로 하여금 느껴지는 자신만의 좋아하는 느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두세 가지 있는 거 같다. 첫 번째로는 나는 계절마다 공기 냄새가 다르다고 느낀다. 그중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데, 겨울에 따뜻한 집에서 나와 살짝 반들반들 얼어있는 마당을 걸어 나와 숨을 한 번 들이키면 코 끝이 얼면서 들어오는 냄새가 너무 상쾌하고 좋다. 두 번째로는 아침에 일어나기 전, 적당히 들려오는 소음 그리고 밥 짓는 냄새를 좋아한다, 여기서 적당한 소음이란 압력 밥솥에서 딸랑딸랑 울리는 방울 소리와, 매일 아침마다 아빠가 보는 뉴스의 소리다 그리고 엄마 아빠 둘의 대화 소리 정도. 그런 소리들이 들려오면 저절로 아침이라는 걸 느끼게 되고 기분 좋게 일어나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시작됐구나” 그런데 그런 나만의 백색 소음들이 이번 한 달은 잘 들리지 않았다. 7월 한 달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그 구성원 중 나는, 7월 한 달 동안에도 험난한 분가를 목표로 하는 여정을 하고 있다.
조급한 마음
어렸을 때부터 숲을 봐야 한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듣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저 멀리 끝에 있는 숲까지 보기 힘들었다, 언제나 보이지도 않는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막막함은 나의 힘을 축 빼놓는 말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숲을 보기 전에 가야 될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한 곳 한 곳 거쳐 가다 보면 결국엔 숲이 나오지 않겠느냐라는 말로 되받아쳤었다. 물론 아무런 논리는 없었다. 그냥 내 느낌, 나의 뇌 속에서 나온 생각일 뿐인 것이다. 이렇듯 목적지까지 가야 할 경로를 하나씩 찾아보며 계획을 세우는 일들은 어렸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항상 계획은 꾸준하게 세우고 그 계획대로 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좋지 않은 점이 있다면 그런 계획들에 대해서 무언가 차질이 생긴다면 번아웃이 온다는 것, 또한 경로 하나를 거쳐가면 휴식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6월 미복귀 전역 후, 계획을 하나하나씩 세워갔다. 후에 있을 시험에 대비해 몇 월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하며 지금은 무엇을 공부할 때인지. 그 계획 중 6월과 7월은 각종 어학시험 성적 갱신과, 기타 필요한 자격증들을 따 놓는 게 나의 경로였다, 내 생각으로는 비교적 쉽다고 얕본 시험들이라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시험장에 입실하여 시험을 보았다. 7월 말 각 세 개의 시험에 대한 결과 통보를 본 나는 처참했고, 한심했다. “이게 떨어진다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시험을 얕본 게 화근이 되었던 건지, 아님 공부 방법이 잘못되었던 건지 계속 되뇌었다. 이제 계획에 차질이 생겼으니 번아웃이 올 차례였다, 앞으로 가야 할 경로들이 이렇게 많은데 초장부터 길을 잘못 들어왔으니 빨리 가야 하는데 시간은 없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두세 시간 멍하니 소파에 누워 나오지 않는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가 나쁜 게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혼자 멍하니 생각하고 있다 보면 문득 스트레스가 미화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스트레스 미화가 훗날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에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는 아주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어쩌겠어 이미 벌어진 일이고, 가야 될 길은 많은데 일단은 해보고 힘들어하자”라는 생각을 자주 하며 시험에 재응시하였다. (자신에게 그만큼의 보상도 확실히 주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급한 마음들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8월에는 조금 조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려 한다, 내 천성이 원래 조급하지 않고 여유와 느긋함을 지향하는 성격인데 조급해지니 여러 잡생각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8월은 아주 조금은 속도를 낮추고 정확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여행을 가도 초행길은 험난하지 않은가, 나는 초행길이라서 아직은 순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여행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정중
-마포구에 한 족발집, “화요 정모”
글을 쓰는 게 8월이라서, 7월의 일상을 생각해보려 휴대폰 사진첩을 뒤적거렸다. 사진첩을 뒤적이는데 아무튼 7월은 웃음보다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던 달이었다. 7월 16일 시험 하나를 속 시원히 끝마치고, 친구들과 미리 잡아두었던 약속으로 서울을 갔다. 유학생활 동안 함께 했던 친구들과 약속이었는데 그 친구들하고 내가 유학하던 상하이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서 밥을 먹거나 술을 먹거나 했다, 아무튼 항상 만나면 배 터지게 먹는다. 그래서 모임 이름도 “화요 정모”라고 했었다. 무튼 미리 예약한 호텔을 체크인하고 마포에서 만나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그때 그 대학생 때를 회상하는 이야기들이 가장 재미있는 거 같다, 나는 만나는 친구들이 많이 있지는 않지만, 소수의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거진 옛날이야기들 뿐이다. 주제가 같아도 똑같은 이야기가 몇 번이나 오가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그 순간에 행복인 거 같다. 그렇게 마포의 한 족발집에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세 시간이나 불렀었다,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느꼈던 행복도 오랜만이었던지라 맘 놓고 마음껏 놀고는 호텔에 와서 쓰러지듯 잤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는데 목이 너무 아파서 왜 그런가 싶었는데 친구가 보낸 노래 목록표를 보니 아픈 이유에 대해 알겠더라…
-APMA, <Andreas Gursky>
오랜만에 서울도 왔겠다, 나 혼자만의 시간은 아주 소중했다. 그날의 서울은 구름은 잔뜩 끼고 온도도 높고 습도 또한 매우 습해서 평소 같았으면 집 밖에 나가지도 않을 날씨였겠지만 그런들 어떠하리오 혼자만의 시간은 행복 그 자체였다. 나의 여행 계획은 주도적으로 면밀하게 짜는 스타일은 아니다. 예전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을 때만 해도 여행 계획을 엄청 다 짜 놨는데 흐트러지는 일들이 빈번하여 여행 내내 기분 좋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어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그냥 틀만 짜 놓는 편이다, 또 변덕스러운 성격 탓에 그날에 따라먹고 싶은 것도 다르고 가고 싶은 곳도 너무 달라서 하루 이틀 전에 끌리는 장소로 대강 정해놓고, 그 장소에 가서 찾는 편이다. 그러니 여행을 조금 더 즐길 수 있는 느낌이라서 좋다. 내 일상은 고요한 듯 보여도, 굉장히 복잡하고 어수선한 날들이 많았다고 느꼈기에 나는 정적인 곳으로만 다니고 싶었다, 미술관도 요즘 SNS를 보면 많이들 가길래 찾아봤지만 미술에 대한 무지함에 괜히 즐기지 못하고 사진만 찍다 올 거 같은 느낌에 미술관은 포기했다. 그러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는 사진작가가 <Andreas Gursky>라는 한 독일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들이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에 전시되었다고 홍보하고 있길래 바로 표를 예매했다. 워낙 전시회 같은 곳은 돌아다녀 보질 않아서 큰 기대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직접 가보곤 너무나 기대 이상!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감동적이고, 작품 하나하나 볼 때마다 감탄하고 웅장해졌다. 살면서 이런 느낌들은 여행지를 돌아다니면서 대자연을 보거나, 갈 수 없었던 이상향적인 곳을 직접 가서 봤을 때나 느끼는 감정들이었는데 그분의 사진은 감동적이었다. 이 때문에 원래 세웠던 계획들은 무너졌고, 그의 작품을 두 시간이 넘게 멍하니 감상했었다. 사진들을 감상하는 시간 동안에는 사진도 사진이었지만, 다른 관람객들의 고요함, 사진들을 보는 진정성 그런 분위기들도 좋았었다. 내가 원하던 정적인 분위기.
-용산구 <TRVR>
사진전을 보고 나니, 커피가 한 잔 당겼다. 마침 용산이고 전부터 눈여겨보던 카페를 가고 싶었다, 미술관에 고요한 분위기를 갖고 갈 조용한 카페에 딱인 곳을 휴대폰 SNS에서 봐서 저장해뒀는데, 마침 기회다 싶어 찾아갔다. 마침 공영주차장이 있길래 주차를 해놓고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이태원 길은 원래 험난한 걸로 알고 있었지만 이 카페가 위치한 곳은 굉장히 험난했다. 도보로 지도를 본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두어 번 정도 길을 잘못 들고 그제야 도착했다, 이제 좀 걸어 다녀야 하나보다… 아무튼 카페 도착을 하고 문을 여는 순간 실내 공기는 행복이었다 시원했고, 달달한 쿠키들과 함께 직원들이 인사해 줬다. 나는 쿠키를 살까 하다가 시원한 것부터 당겨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커피 맛은 훌륭했다. 커피 맛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커피 향과 농도다. 땀을 흠뻑 흘리고 와서 그런지 더더욱 맛있다, 기회가 된다면 겨울에 다시 찾아가고 싶을 정도다. 그러곤 한 시간 정도를 카페에서 사진도 찍고 사진전에서 사 온 엽서들도 꺼내어 뚫어지게 봤다. 행복했다 정말. 서울에 오고 싶어지는 마음들은 더더욱 간절했고 빨리 이런 생활들을 눈 뜨면 하고 싶었다. 물론 직장에 대한 환상이 너무 이상적인 것 같지만, 아직 직장을 갖지 못했으니 환상 정도이라도 해보자. 이사를 온다면 이태원도 좋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상상도 해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옆 테이블의 앉은 다른 손님은 책을 보았고, 직원들은 카페에 관한 아이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각자의 시간을 즐기는 그곳도 사진전만큼이나 행복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한 배우가 인터뷰에서 말했던 내용이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 말이 나의 7월 한 달 동안 귀에 맴돌았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나도 해내야 한다 아직 8월밖에 되지 않았으니 길을 잘못 들어왔다고 해도 해내야 한다. 글을 쓰면서 한 달에 재밌던 일들을 생각하니 피로가 풀린다 그런 피로를 풀어주는 추억이야말로 여행에 즐거움이겠지, 여행은 끝나지 않았고 계속된다 그게 험난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