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캐모마일 나왔습니다.

#3 순항중 [分家旅程]

by 동하

11월

일기도 그렇고, 블로그도 그렇고, 또 석 달 전 시작한 브런치는 추억을 좋아하는 내게는 아주 고마운 플랫폼이다. 기록하고 시간이 지나 그 기록들을 다시 보았을 때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전부는 아니지만 편집된 일부를 볼 수 있게 해 주니깐. 그런데 그렇게 기록을 좋아하는 나는 모순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일기를 쓰는 것도, 브런치를 작성하는 것도 미룬다. 일기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한다, 그렇게 작성되지 못한 빈 공간들은 오히려 꾸준하지 못한 것 같은 내 성격을 탓해 되려 스트레스가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일기가 한 달을 넘기지 못하는 건 매일 같은 반복적인 생활이다, 꾸준하게 쓰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하루하루 감정을 잊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아닌가? 또 진실된 감정을 기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일기장에 우울한 내용이 가득하면 계속 우울할 것만 같다. 나는 어쩌면 내가 기록하는 것에 우울한 내용보단 행복한 내용이 더 가득했으면 하는 마음이 강해 기록하는 소재가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한다. 어쩌겠나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만이라도 행복한 순간들만 편집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인스타그램은 중독성이 강한 플랫폼이다. 행복한 순간들만 기록하게 된다, 기록 방법도 사진과 이모티콘만 올리면 돼서 골머리 아프게 글을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아직까진 글로 기록하는 부분도 간직하고 싶으니 오랜만에 브런치 앱을 켜 타자를 치게 된다.

힘들었던 11월의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밥먹고 나오는길, 갑작스럽게 비가왔다. 시험이 끝나니 갑자기 온 비도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11월이 되었다. 두 번째 글을 쓸 때만 해도 높이 있는 선반 구석에서 작년에 사용했던 큼지막한 사각형 얼음 트레이 두세 개를 꺼내 물을 채워 넣고, 꽝꽝 언 얼음을 싱크대에 세게 내리쳐 얼음 보관함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작업을 아침마다 반복하며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내려 마시곤 했다. 가족들과 같이 살다 보니 각자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마실 때마다 얼음을 사용하곤 했는데 제일 마지막에 일어나 커피를 내려먹는 나는, 텅텅 비어있는 얼음 트레이를 볼 때마다 살짝에 짜증을 내곤 했다. 그래도 더운 열기 속 시원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 짜증은 무슨… 행복했다. 이제는 그런 반복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 되었다, 얼음 트레이는 차가운 냉동실 속에서 다시 손을 뻗어야 하는 높이에 있는 선반으로 제자리를 찾았고 여름에 쌓아두었던 몇 덩이에 얼음들만 냉동실에 보관되어있다. 이제는 적당히 따뜻한 방바닥에, 그런 온기에서 올라오는 나의 방 공기도 따뜻했다 그래도 살짝 추운 감이 있을 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려마시면 상쾌한 아침 시작이다! 겨울에 내리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온 집안에 고소한 커피 향을 빠르게 퍼뜨리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타 지역보단 겨울이 비교적 빠르게 오는 지역이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려 밖에 나가면 입김이 나온다, 아직까지 코끝이 시릴 정도에 추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겉옷을 입지 않고 잠옷바람으로 밖에 나간다면 오들오들 떨면서 팔짱을 끼면서 집안으로 들어간다. 여름에 입던 얇은 옷들도 장롱 속으로 보내 넣고, 두툼한 겨울 옷들을 꺼내 주었다 옷이 많지는 않아 귀찮은 작업들은 없지만, 작년에 니트류를 많이 입었던 건지 세탁소에 드라이를 맡겨야 할 옷들이 많았다. 겨울이라 그런지 드라이를 맡기러 가는데 동네 세탁소의 아침은 분주했다, 바깥에 추운 날씨 탓에 스팀다리미의 연기는 평소보다 더 크게 뿜어져 나오고 세탁소 아줌마는 능숙하게 내 옷을 보시더니 내일모레 찾으러 오면 된다고 단번에 말씀해주신다.


체크 스웨터를 목에 두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정중

정리

정리를 참 좋아한다. 기록은 정리가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사진 정리는 생각보다(?) 미루지 않고 하는 중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정리에 대해 내가 잘못된 정리 방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 나의 사진 정리 매뉴얼은 20살 때부터 정착해왔는데 발전 없는 매뉴얼이다. 우선 연도 별로 섹션을 나누어, 또 월별로 섹션을 한 번 나누었다. 워낙 사진을 좋아하고 카메라와 휴대폰을 번갈아가며 찍었던 사진들이 수천 장은 되는 것 같다. 3년 전쯤에는 월별에서 또 한 번 세분화하여 일 별로 섹션을 나누었더니 수많은 폴더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때도 문제점은 발견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그 사진들은 존재하는 거니 만족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진들은 의미 없이 존재하기만 하고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난 분명 찾아보려고 기록해놓은 것인데 생각하지 않으면 영영 찾지도 않을 사진들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는 찾으려다 보니 찾기조차 버겁다. 심지어 수많은 폴더들이 나열되어 있어 찾기도 힘들고 깔끔하게 보이고 싶어 삭제한 것들이 있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정리를 열심히 했던 건지 아쉽기도 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기록을 최소한으로 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하고 있다. 전에는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면, 요즘은 신중을 가해 한 번 정도만 누른다. 그러니 사진에 집중도 더 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필름 카메라가 좋다. 필름값이라도 아끼려면 무한정에 셔터는 절대적으로 누르지 말아야 하니깐! 그렇게 하다 보니 사진첩에는 빼곡히 많은 사진들은 사라지고 정말 추억이 될만한 사진들로만 추려진다 한눈에 보이게 되고 찾기도 용이하다. 섹션을 굳이 월별로도 나누지 않고 연도별로만 나누어도 충분할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정리는 재밌긴 한데 힘든 작업이다, 그래도 한 번 정리해놓으면 뿌듯함이 있으니 그걸로 됐다.


LosAngeles, 2016 <미국여행 사진도 몇 장 남기지 않고 삭제한 기억이 난다>
지난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친구 두 명과 삼척 여행을 갔다. 둘 다 8살 때부터 알던 사이니 우리가 알게 된 시간이 벌써 20년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무소식이 희소식인지라 그 친구들과 연락은 자주 하지 않아도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식과 가끔 하는 연락으로 근황을 들었었는데, 내가 전역도 한 김에 오랜만에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 친구들과의 여행은 고등학교 2학년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10년쯤 된 거 같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반가운 얼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단지 그들은 비계획 행동파들이고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라 여행의 제안부터 대략의 계획은 내가 짜서 좀 짜증이 났긴 했다. 그래도 반갑고 얘기만 해도 즐겁다, 우리는 같이 마트에 가서 카트를 끌며 장을 보고 내가 알아본 맛집에서 물닭갈비도 먹었다, 한 달 전 예약한 글램핑장에 도착해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안 좋아도 서로 짜증 한번 안 냈다 비가 와서 숯불을 못 피워주신다는 주인장 말씀에 난 많이 아쉬워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시원하다며 냉장고에서 소주부터 꺼내 들어 종이컵 가득 따라 마셨다. 나는 그 친구들과 성향이 완전 반대다 조금 감정에 예민한 편인데 그들은 터프한 인간들이다. 예전에는 그 친구들에 성격에 반감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부럽기도 하다. 그렇게 놀다 보니 비도 그치고, 멋지게 노을도 진다 그때에 순간은 행복했다 술도, 바다도 , 친구들도.. 그때에 느꼈던 감정이 세 달이 넘는 시간에 생생히 기억나는 것 보니 나도 꽤나 즐거웠던 모양이다.

아..! 그런데 그때 제일 좋았던 순간은 새벽 아침에 나 혼자 일어나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의자를 펴 헤드셋 끼고 노래 들었던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Samcheok, 2022 AUG <밤새 놀고선 혼자 마셨던 커피와, 그 시간들>

또 다른 친구들 두 명과 함께 놀러 갔다. 각자 집에서 와인을 챙겨 오자고 했는데 서로 같은 종에 와인을 챙겨 와 깔깔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계곡에 놀러 갔었는데 셋 다 물에 발만 담글 정도만 좋아하는 게 딱 내 친구들이었다. 밤새 게임기로 축구게임을 하며 옛날 고등학교 때 얘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떨었다. 친구 한 명이 어디선가 꼬마전구를 들고 오더니 데크 앞에 뱅뱅 꼬더니 불을 켠다. 게임을 다하고 나와 의자 세 개를 툭 갖다 놓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채로 계곡의 물소리랑 와인을 마셨다. 셋 다 노래 취향이 비슷해서 재즈 노래를 들으면서 술을 마셨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다음 주에 해야 할 공부를 할 생각에 막막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행복했다.

HONGCHEON,2022 SEP <게임,와인,재즈>

언제 한번 갑작스럽게 강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아이폰에 날씨 어플에서는 하루 종일 구름을 표시하고 있었다. 친구 한 명과 같이 동행하여 갔는데 둘 다 그날의 날씨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드라이브를 할 겸 허겁지겁 준비하고 강릉으로 갔다. 가는 동안 그 친구와 쉼 없이 떠들었다 출발지점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차도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끊이지 않는 대화 속에 마침내 도착하기 30분 전이 되었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순간 날씨는 맑아졌고 구름과 터널이 만나는 스카이라인에서는 무지개도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 비가 왔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변에 도착했고 노을을 보고 싶던 우리는 멋진 선셋도 마주쳤다.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와, 캐모마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하여 해변가를 걸었다. 나는 계획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요즘은 계획적인 것보다 틀어질 일 없는 비계획적인 여행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좋고,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상황이 주는 행복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Gangneung,2022 OCT <Sunset>


“따뜻한 캐모마일 한 잔 나왔습니다”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에 잠을 잘 못 잤다 아무래도 커피 마시는 양이 늘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하루에 두 잔 정도는 꼭 마셔야 했다 그러다 공부를 하다 피곤하면 네 잔 정도도 거뜬히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많이 마셔도 잠은 잘 잤다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제는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일단은 많이 마시는 커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카페인 중독이 돼버린 듯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머리도 아프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마시는 커피는 포기할 수 없다, 그 밖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 대신 차를 마시기로 했다, 그중에서 캐모마일을 한 잔 시켜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가며 마셨다. 차를 마시면 마실 수록 마음이 편했다 커피는 마시면 마실수록 입이 텁텁했는데, 차는 확실히 개운했다. 그래서 요즘은 카페에 갈 일이 있으면 캐모마일을 자주 마신다. 캐모마일의 꽃말은 “역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이라고 한다. 10월과 11월 지난날도 그렇고 앞으로의 날을 생각하면 힘든 날이 더 많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아주 조금 있어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캐모마일 한 잔은 나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게 아닐까. 나도 힘든 날에 굴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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