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다녀왔습니다. 1편

#4 난기류와 만남 [分家旅程】

by 동하

12월

12월 초쯤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서울에서 저녁식사를 약속했다. 오랜만에 반가운 마음에 술도 마시려 애초에 차도 안 가져가고 전철을 탔다. 서울 가는 건 주차가 부담스러운데 전철을 타보니 편하고 좋았다. 마침 용산역 근처가 만나는 친구의 집 근처이기도 해 이동이 편하기도 했다. 저녁식사는 계획을 했으나 역시 내 친구들 답게 메뉴는 정하지 않아, 집 구경을 한 뒤에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친구들 모두 거리를 나섰다. 우리는 한참을 헤매 횟집을 들어갔다. 제철에 맞게 방어회를 시켰고 반가운 마음에 술을 흥건하게 마셨던 기억이 난다. 취기가 오르니 각자의 회사 이야기를 꺼냈고, 취업준비생인 나도 그 친구들에 말을 꽤 진지하게 들었다. 나와 동갑이지만 나보단 사회생활을 앞서 시작한 그들에게 느끼는 부러움도 있었고, 현재의 나의 상황에도 불안함이 컸다. 항상 느끼는 감정이지만 그렇게 부러움과 불안함을 느끼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조금은 더 술에 취했던 것 같다. 한 친구가 벌써 회사에 입사한 지 5년째라고 한다, 그 친구는 학교를 일찍 졸업했고, 또래에 비해 입사를 비교적 빨리한 편이다. 벌써 사내에서 팀장이라는 직급을 달았고 회사에서는 그에게 요즘 직장인에게 인기가 좋은 WORK-CATION(워크+베케이션의 합성어)을 30일간 제주 생활을 보상으로 준다고 그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내 일도 아닌데 괜스레 그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술김에 나는 그 친구에게 나도 요즘 너무 힘들어서 제주도 휴양지 가서 조금 쉬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사실 그 친구와 장난반 농담반으로 메시지 상으로 올해 유럽여행을 가자고 아주 잠깐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이틀이 지났던가 그 친구에게 문자가 한 통 왔다. 본인도 같이 갈 수 있다면 내가 같이 가도 좋을 것 같다는 그 친구의 의견이다. 나도 많지는 않지만 일정한 비용을 그 친구에게 보태어 같이 가기로 했다. 나는 한 달은 조금 무리가 있었고, 앞에 예정되어 있던 시험도 보고 가는 게 마음이 편했다. 아쉽지만 그렇게 10일 정도에 제주 생활을 계획했다.



2023년 01월 08일

새해가 시작된 1월도 벌써 8일이 지나가버렸다. 정신없이 시험공부를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올해의 첫 시험을 떨어져 가며 제주도를 떠나고 싶진 않았다. 홀가분한 마음 한구석이라도 있어야 요동치는 내 멘탈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험을 보고 난 뒤에는 잘 봤다는 생각을 했다,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마음이 조금은 편안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날은 제주도를 떠나기 하루 전이였다. 시험은 아침 댓바람부터 시작해 비교적 빨리 끝나서 새로 개봉한 영화[영웅]를(을) 보았다. 혼자 보는 조조영화가 오랜만이라 옆자리가 어색했지만 그 옆자리엔 갓 나온 추로스와 따끈한 아메리카노가 있어서 허전했던 빈자리를 메울 수 있었다. 마침 그날 아침에 폭설이 내려서 온 사방엔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있었다. 그래서인지 편안한 느낌을 더 받았지 않았나 싶다. 아직은 눈을 볼 때면 설렘이 가득해진다. 그날 기분이 은근하게 좋았던 건 시험을 잘 봐서도, 영화를 재밌게 봐서도 아니었다 그냥 조금은 여유로운 그 시간들 때문에, 아픈 기억들을 아주 조금 잊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2023년 01월 09일 오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시험 때문인지 퍽 여행의 설렘은 느끼지 못했다, 계획도 없었다 그냥 무작정 떠나고만 싶었다. 계획 없이 여행하는 건 또 처음이었다 제주에는 여러 번 가봤으니, 게다가 한국이니 별 걱정 없었다. 공항의 주차비는 감면이 된다고 하더라도 부담되는 가격이라서, 친구집에 주차를 해놓고 리무진을 타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빠는 장기주차가 걱정된다며 아침 일찍 일어나 나를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셨다. (내가 걱정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단둘이 아빠차를 타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단둘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게 꽤나 오랜만이었으니. 터미널에 도착한 즈음 재밌게 놀다 오라는 아빠에 말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취업준비 중인 나는 괜히 혼자 눈치를 보고 있었거든) 아직도 부모님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체크인 수속을 하고 수하물을 부칠 때 설렘이 가득해졌다. 갑자기 배도 고파지고 커피도 당겼다. (마침 비행기는 지연이 되었네^^)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드디어 비행기는 제주를 향해 이륙했다.

비행기 지연으로 이미그레이션을 마치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2023년 01월 09일 오후

난 분명히 오전 6시부터 집을 나섰는데, 제주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가 되었다. 장장 10시간 만에 밟은 제주도의 땅은 반가웠지만 힘들었다. 같이 여행하자고 제안한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에 와인 한 병과 공항에서 인터넷으로 맛집을 찾아 참돔회를 포장할 계획이었다. 부랴부랴 수하물을 찾으러 갔는데, 웬걸 컨베이어 벨트에서 첫 번째로 수하물이 나왔었다, 비행기를 많이 타봤지만 이런 행운은 처음이라 빠졌던 체력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수하물을 곧장 찾고, 렌터카 회사에서 예약해 두었던 차를 수령하고 나서야 배가 고팠다. 생각해 보니 먹은 건 공항에서 마신 커피가 전부였다. 무언가라도 먹고 싶어 유명한 고기국숫집을 가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서야 사려고 했던 와인과 참돔이 생각이 났다. 참돔 횟집의 동선이 너무 안 좋았지만 그 친구에게 꼭 사주고 싶었다. 결국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제주 시내를 벗어났고, 내가 10일 동안 지낼 숙소에는 저녁 9시쯤 도착했다. 기다린 친구도, 멀리서 온 나도 배가 고파서 짐을 풀기도 전에 식탁부터 정리했다. 공항에서 시간이 되어 잠깐 들렀던 김포몰에 무지가 있길래 귀여운 와인잔 두 잔과, 커피를 맛있게 마실 컵도 두 잔씩 샀는데 식탁에 올려놓으니 꽤나 보기 좋은 한 상이 되었다. 그때 마신 화이트 와인은 그 어느 와인보다도 달큼했고, 참돔은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동영상으로 찍은 걸 캡쳐이서인지 화질은 좋지 않지만, 그 맛은 아주 훌륭했다 ㅠㅠ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1

내가 이번에 간 제주는 여행의 旅가 아닌 여유의 餘행이었다. 시간적 여유가 아닌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여유는 점점 좁아진다. 내가 다른 취업준비생과 같이 피 터지게 준비하는 입장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괜히 혼자 좌절감에 들 때도 있고, 그저 생각으로만 열심히 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들만 가지고 있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쉽게 누군가에게 이런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떠들기도 어렵고, 가끔은 외로운 마음이 들 때도 많다. 내 기준에서 열심히 산다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제주도에서는 그런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자!라는 생각만 들고 떠났다. 윗글에는 제주에 대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고 했지만 내가 제주도에 가서 하고 싶은 조그마한 계획들은 세워놨었다. 그 계획은 1. 브이로그 찍어서 동영상 편집해 보기 2. 책 보기 3. 멍 때리기 4.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산책하기다. 집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취미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하지 못했다. 게으른 게 가장 큰 원인이겠지… 게으르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도 것도 같고… 무튼 저 사소한 계획들로 제주에서의 삶을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