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서의 자의식

by 이음

한때 나도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았다. 모르는 동네에 이사 온 누구나 그렇듯 새로운 풍경에 눈이 번쩍 뜨이고 낯선 거리의 냄새에 괜히 의미를 부여했다. 사진을 찍고 감탄하고 동네 카페에서 커피값을 계산하며 혼자 들떴다.


모든 게 새로웠고, 나조차 낯설어서 재미있었다. 마치 내 안의 설정값을 전부 초기화한 뒤 다시 깔끔하게 설치해 가는 느낌이었다. 여행의 본질은 어쩌면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나를 새로 구성해 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끝났다. 딱히 선언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어느 날 아, 나는 더 이상 이 동네의 풍경에 감탄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행자일 때는 모든 게 주인공을 위한 배경처럼 느껴진다. 하늘도 나를 위해 더 파랗고 식당의 메뉴판조차도 작은 모험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생활자가 되면 하늘은 그저 장 보러 나갈지 말지의 기준이 되고 식당은 한국에서 손님이 왔을 때나 가는 곳으로 분류되고, 그 동네 맛집은 가보기도 전에 이미 지겨워진다.


이게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좋다. 풍경이 배경에서 맥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골목의 오래된 집을 보면 "저 집 수리하려면 돈 꽤 들겠네"가 먼저 떠오르고, 카페에 앉으면 "오늘은 학생들 쉬는 시간 피해서 한산해서 다행" 같은 현실적인 안도가 앞선다. 삶은 그렇게 장면에서 관계로 이동한다.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의 소비자가 아니라 등장인물이 된다.


물론 그런 자의식이 항상 평온한 건 아니다. 생활자란 여행의 끝에서 남은 사람이다. 주변은 계속 바뀌지만 나는 어딘가에 닻을 내려야 한다. 언어도 어중간한 상태에서 관공서에 가야 하고 동네 마트 직원과 인사할 타이밍도 알아야 한다. 이건 단순한 사회성이 아니라 신경망 전체의 재배선을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점점 조용해졌다. 조용하다는 건 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쓸데없는 감탄을 줄였다는 뜻이다.

"여기 진짜 아름답다!" 대신 "여기 모기 장난 아니겠는데..." 같은 멘트가 나온다.


이쯤 되면 나는 여행자도 아니고 완전히 이방인도 아니다. 정체성은 묘하게 애매하다. 외국인 등록증은 있지만 동네 아줌마의 눈초리는 여전히 낯설고, 익숙하다고 하기엔 여전히 할 말이 많고, 낯설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어정쩡함을 제법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어설프게 여기 사람이 되겠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누가 봐도 나는 아직 이 동네 사람은 아니지만, 누가 봐도 나는 이제 관광객도 아니다. 나는 그냥 여기에 있는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침대를 정리하고, 마트에선 늘 들 수 있는 양보다 한두 봉지 더 욕심내 팔 빠지게 끙끙대며 돌아온다. 더 이상 사진은 잘 안 찍지만 날씨 좋은 날엔 여전히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속으로 "이 정도면 꽤 괜찮지"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풍경은 이제 놀라움 대신 반복을 안겨준다. 내 하루의 배경이자 익숙한 무대 세트처럼.

그 위에서 나는 대사 없는 단역 혹은 대사 몇 줄 가진 오래 출연하는 조연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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