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은 낯설고, 정체성은 익숙했다.

by 이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을 떠났다. 주변 친구들이 방학마다 한국을 드나들던 것과 달리, 나는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세 번 한국을 다녀왔을 뿐이다. 그중 두 번은 2주도 채 되지 않았고, 가장 길게 머문 것도 고작 3주 남짓. 계산해 보면 졸업 이후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을 제외하곤 나는 한국에 없었다.


처음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나는 스스로를 대단히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난 절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라고, 심지어 한국이 아니면 어디든 좋아 라며 당당히 선언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싶다. 물론 당시엔 입시와 경쟁, 학벌과 지연, 숨 막히는 일상에 대한 회의가 꽤 진지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나는 도망치듯 떠났고, 그 선택은 적어도 처음 3년 동안은 옳았다고 믿었다.


여유로운 생활, 검소한 소비, 느긋한 리듬. 외국인으로서 겪는 불편함이나 언어 장벽은 이 정도쯤이야 하며 애써 눈 감았다. 여기에 살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게 4년의 학사 과정과 2년의 석사 과정을 채 마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코로나였다. 전 세계가 멈춘 그 혼란 속에서 나도 또다시 짐을 쌌다. 이번에는 남편을 따라, 스페인으로.


더 이상 유학생이 아닌 생활자이자 이민자로서의 출발이었다. 더는 학생이라는 신분의 보호막도, 졸업 전이라는 면죄부도 없었다. 그리고 이 삶은 더 이상 경험으로 쌓을 무언가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정말, 살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체험이 아닌 체류, 머묾이 아닌 정착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이주, 또 한 번의 낯선 시작이 닥쳤다. 학생증이 그렇게 강력한 방패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 작은 카드 한 장이 내게는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줬고, 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지탱해 줬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저 현지인 남편을 둔 외국인 아내, 무직의 신분이었다. ''라는 이름 대신 누구의 누구로 불리는 삶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를 소모시켰다.


열심히 어학원에 다녔고, 언어에 몰두했다. 설정해 둔 목표들도 거의 다 달성했다. 그런데도 문득, 그래서, 그다음은?이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게 허무해졌다. 내가 이곳에서 영영 누군가의 옆 사람으로 만 존재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생각보다 무겁고 오래 나를 짓눌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내 정체성에 대해 더 복잡한 감정을 품게 됐다. 여권에 찍힌 국적처럼, 한국인이라는 말은 여전히 나를 설명하는 첫 문장이었지만 그 의미는 점점 더 불분명해졌다. 확실한 건, 나는 여기서 외국인이라는 것.

하지만 전형적인 한국인이라고 하자니, 내 한국에 대한 기억은 고작 18살 이전에 멈춰 있다. 지금의 한국은 내가 짐작하고 상상해 꿰어 맞춘 퍼즐 같고 때로는 너무 빨리 돌아가는 뉴스 속 나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두 세계 사이에서, 나는 늘 어정쩡하게 떠 있었다. 발 디딜 곳을 찾듯 나는 마구잡이로 한국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한 취미라기보다 약간은 집착에 가까운 일이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덮쳐온 것 같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그 책들에서 시작된 관심은 유튜브로, 신문으로, 칼럼과 팟캐스트로 뻗어 나갔다. 시간은 많았고 갈증도 그만큼 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았고 그렇게 해야만 내 중심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떠나 있는 동안 한국은 나에게 오히려 더 가까운 나라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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