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상, 시끄러운 마음

스페인에서 살아남기

by 이음

스페인에 산 지 꽤 됐는데, 여전히 말 걸 사람은 남편뿐이다. 사는 데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조용하다 못해 심심하다. 사방이 평화로운데, 정작 내 안은 시끄러운 날이 있다. 시끄럽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생각이 자꾸 말을 걸어온다. 나는 가끔 무시하고, 가끔은 말이 길어진다.


스페인에 오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남편을 사랑했고, 스페인이 좋아 보였고, 살던 곳에는 회의감이 켜켜이 쌓이던 시기였다. 모든 게 아다리가 착착 맞아떨어졌고, 나는 여기까지 오게 됐다.


처음 1년은 그야말로 꿈같았다. 미식의 나라에, 화창한 날씨, 사람들은 나이스하고 물가는 착했다. 사람들의 작은 친절에 큰 감동을 받고, 동네 카페에 평범한 핀초조차 인생 핀초를 만난 듯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3년쯤 지나자 나는 점점 덜 감동하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즈음 깨달았다.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그 마음가짐이라는 게, 은근히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것도.


처음 스페인에 반했던 이유는, 지금의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스페인은 여전히 미식의 나라지만, 나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햇살은 여전히 찬란하지만, 요즘은 그냥 덥게만 느껴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이스하지만, 내 눈엔 점점 그 나이스함이 게으름으로 읽힌다.


행정은 여전히 느리고, 컴퓨터는 자주 멈춘다. 나도 이젠 별 감흥 없이 에러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느 순간부터는 한국은 이렇지 않은데... 를 입에 달고 살았고, 그러다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투덜대는 내가 제일 별로라고.


사실, 여전히 바다는 예쁘고, 와인은 싸고 맛있고, 사람들은 잘 웃는다. 달라진 건 이 나라가 아니라, 그걸 대하는 내 태도였다. 내가 너무 많이 기대했고, 너무 자주 비교했다. 이곳에서 나답게 사는 방법을 모르고, 자꾸 한국의 기준으로 현재를 채점하니 계속 낙제점만 나왔다.


느리고, 허술하고, 근거 없이 따뜻한 이곳에 발을 담근 채 나는 오늘도 적당히 투덜대고 적당히 웃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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