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중 막내로 자랐다. 나는 순한 아이였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별말 없이 잘 따랐다. 그게 편했고 또 그게 사랑받는 방식인 줄 알았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다. 어느 날,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엄마가 말했다. "피아노 쳐봐. 얼마나 잘 치는지 다들 보게." 나는 불편했고, 하기 싫었다. "지금은 싫어"라고 말하자, 엄마는 사람들 앞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 친척 오빠가 당황해하며 말리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그날 마음속으로 물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단지 하기 싫다고 말한 건데, 왜 엄마는 그렇게 화가 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와의 갈등은 늘 비슷한 방식이었다. 엄마는 걱정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 안에 통제하려는 마음을 느낀다. 내 의견을 꺼내면 엄마는 공격처럼 받아들이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나는 이제 나만의 선택과 삶의 방식이 생긴 어른이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내가 미숙하고 안쓰러운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다른 생각을 말하면 "왜 날 무시하냐"라고 하고, 나는 "왜 내 인생을 안쓰럽게만 보냐"라고 받아친다.
엄마는 변하지 않는다. 그게 안정감일 때도 있지만, 벽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예전보다 더 많이 말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내 선택을 걱정과 불안으로만 해석한다. 어릴 땐 괜찮았던 거리감이, 이제는 불편해졌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릴 적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 걸고 있는 건가. 그때 느꼈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너무 닮아 있다. 엄마는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고, 나는 엄마가 내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서로의 방식이 다르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엄마는 여전히 딸을 걱정하고, 잘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 마음의 표현이 나와는 어긋난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와 엄마가 살아온 세계는 다르니까. 그렇다고 누가 틀린 건 아니다. 단지,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 오래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엄마를 조금 다르게 본다. 엄마의 날카로운 반응도, 어쩌면 오래전부터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라도 나는 엄마를 이해하고 싶다. 완전히 같을 수는 없어도 그 거리 안에서 조금씩 다가갈 수는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