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대화는 내가 한국어로 할 때처럼 그렇게 깊게 흘러가진 않는다. 말의 뉘앙스나 감정의 결까지 완전히 전하기엔 아직 언어가 부족하다. 가끔은 그런 대화의 부재가 아쉽기도 하다. 모국어로 주고받는 섬세한 교감, 그 결을 알아듣고 반응해 주던 감정들. 그걸 나눌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어떤 빈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꽤 잘 통한다. 남편은 내가 말하는 대부분을 알아듣는다. 비록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를 깊이 파고들 순 없어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전혀 통하지 않는 관계도 많은 걸 생각하면 국적이나 언어가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방식이 있다. 말이 다 닿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태도 덕분에 마음이 전해진다.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더 유심히 듣는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가볍게 흘려버릴 수도 있었던 말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에겐 우리만의 언어가 있다. 나의 한국어 억양은 남편만이 단번에 알아듣는다. 남편의 스페인어 속엔 이제 한국어 단어가 간간이 섞여 있고, 우리가 스페인으로 오기 전에 함께 살았던 나라의 언어까지 더해져서 우리가 쓰는 말은 이제 오직 우리 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어느 누구도 완전히 해석할 수 없는 조합. 그것이 우리 대화의 방식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애정이 있다. 단어 하나를 찾아 헤매는 시간 속에, 천천히 이어 붙이는 문장 속에,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깊고 무겁고 정교한 대화는 아니지만 이 언어 안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 있다. 가끔은 모국어로 나눴던 깊은 대화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리움 속에서 지금의 우리 언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말보다 더 큰마음이 오가는 순간이, 매일의 삶 속에 있다.
완전히 이해받는 것보다, 끝까지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 그게 우리가 지금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