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만 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by 이음

그때의 나는 부끄러웠다.

그 이후로 나는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안고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를 ‘어른’으로 바라보았고, 존경과 동경의 시선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우리는 대학에서 만났고, 연인이 되면서 그의 친구들과 지인들 역시 자연스럽게 내 인간관계가 되었다. 그는 교수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고, 그 덕분에 몇 차례 교수님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

그런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는 늘 비슷했다. 세계 정세,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의 흐름, 전공과 연결된 방대한 지식, 다양한 문화와 인문학적 소양을 전제로 한 이야기들. 말 그대로 ‘교양’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대화 속에 끼어들 수 없었다.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무엇을 말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열여덟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아기’ 취급을 받던 나이였다. 시키는 대로 공부했고, 대학에 가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막연히 믿었던,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날의 식사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입을 다물고 어색하게 웃는 것뿐이었다. 이야기의 중심이었던 세계 정세는 그들의 삶의 기반이기도 한 유럽 이야기였고, 나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먼저 떴다.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중, 교수님은 나에게 “정말 말이 없구나”라는 말을 건넸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나는 그저 어색한 미소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서른이 된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 ‘아이’였다. 당장의 자유를 즐기느라 인문학적 소양을 차근차근 쌓을 생각은 하지 못했고,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만을 좇고 있었다. 옷이 좋았고, 꿈꾸던 연애가 중요했고, 학기 말에 있을 시험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런데도 나는 의문이 들었다. 왜 이곳의 또래들은 이렇게 어른처럼 느껴질까. 비록 나이는 열여덟에 불과했을지라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관심사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의지로 삶을 밀어붙여 온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히 ‘어른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비교적 평범하고, 다소 수동적인 삶을 살아온 한국의 보통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 그들은 마치 최소한 열 살은 더 성숙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직 미성년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그때의 부끄러움은 아마도, 나 자신의 속도를 처음으로 자각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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