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prologue
삶은 왜 살까? 왜 삶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들이 이리 많을까? 길을 지나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시는 노숙자분, 신체가 불편하여 거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정신이 불편하여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친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자신만의 우물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서 그분들을 쳐다보거나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된다. 그냥 마음이 아파서 그런 것 같다.
인구수가 70억 명... 이제는 80억 명이라고 한다. 숫자로 표현하면 감이 잘 안 잡히지만, 나처럼 의식하고 생각하는 존재가 80억 명이라는 사실은 뭔지 모를 오묘한 기분을 준다. 다 다른 색깔을 가지고 다 다른 인생을 가지고 고민을 가지는 주체가 이렇게 많다는 건 조금의 위로와 조금의 허탈함을 주는 것 같다.
그럼 그 수많은 주체들 중 삶의 목적의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을 얼마나 있을까? 보통 이런 고민은 삶의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삶이 윤택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고민 같은데, 인정하기 싫지만 나도 조금 그런 편이다. (물론 이런 고민들을 한다고 삶이 불행하다는 건 전혀 아니다. 삶의 목적과 방향성에 대한 고찰은 인류가 태어났을 때부터 했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고 한다. 사람은 왜 살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난 순수하게 정답이 아닌 내 관점을 담은 대답을 쓰려고 한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행복? 행복하면 삶의 목적이 이루어지는가. 솔직히 굉장히 위험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행복한 건 어떻게 보면 좋은 것이지만 그게 가능할까? 세상 사람들 만들 때 설계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수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남이 행복한 걸 보면 부러워하고 나도 더 가지고 싶고 상위 몇 퍼센트인지, 내가 평균보다 위인지 밑인지 항상 구분하고 기준을 긋는 게 사람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잣대로는 모두가 행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왜냐면 모두가 평등하게 똑같을 수 없으니까. 우린 복제품이 아니니까. 평균을 중심으로 조금씩 편차를 가지며 떨어져 있는데, 모두가 평균일 수는 없지 않은가.
또,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말의 위험한 점이 하나 있다. 타인에게 공감을 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경우나 타인을 해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미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남을 해하면서까지 삶의 목적을 달성해야 되는가. 그런 사람들이 그럼 남을 해하면, 그 피해자의 행복은 어떻게 보장하는가.
이런 위험한 점을 담은 내 생각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라는 말은 어찌 보면 반발이 심할 것 같다고도 생각이 든다. 정말 당연하게도 내 생각에 의문점이나 화를 낸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유명한 심리학자도 아니고,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그냥 생각이 많아 밤에 잠을 설치는 대학생일 뿐이니까.
하지만 나는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삶을 해하는 사람들은 분명한 사회의 규제나 조기교육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기능은 인간의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특수한 케이스의 경우를 예방하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타인의 행복을 해하는 경우를 사회라는 틀에서 예방하고 각자의 인생 속에서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물을 것 같다. 그럼 행복이 뭔데? 난 행복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사실 두 가지로 나누긴 했지만 어찌 보면 같은 것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첫 번째는 호르몬의 동요. 우리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면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행복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이때 우린 충족되고 만족된 상태라고 느낀다. 호르몬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기분을 느끼고 감정을 가지는 건 호르몬 때문이고, 정신적인 보람이나 만족 역시 호르몬의 동요를 일으키고 서로 연결시켜 강화된다.
두 번째는, 상상의 실현.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상상을 하며 무언가를 하려 하고 목적을 가지고 상시 살아간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나, 내가 계획한 일들이 잘 풀리고 실현되는 모습은 매슬러의 욕구 단계 중 자아실현의 욕구처럼 내 상상이 실현될 때 느껴지는 충족감과 만족감은 행복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첫 번째가 두 번째를 포함한다고도 생각이 든다. 호르몬은 그만큼 감정의 중요한 부분이니까)
그럼 답이 나온 건가? 담배 피우고 마약하고 술 마시면 행복하겠네? 왜냐면 행복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계속 높을 테니까. 그렇게 간단하면 좋겠지만 인간의 설계가 그렇게 생겨 먹지 못한 것 같다.
인간은 행복의 역치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마약의 중독된 사람들의 뇌를 보면 처음 마약을 했을 때 뇌 속 도파민이 급격하게 상승하지만, 점차 시간이 들면서 같은 정도의 마약을 사용했을 때 도파민의 상승이 점차 감소화되고, 급기야 평소에는 마약을 하기 전보다 더 낮은 도파민과 세로토닌 수치를 가지게 된다.
인간은 인위적으로 행복하게 만들기가 불가능한 존재다. 아무리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는 사람도, 결국 그 역치가 점차 올라감에 따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둔해지게 된다. 그래서 마약 중독자들은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려고 마약을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이렇게 쓰고 나니 인간은 참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이 든다. 아니 행복하려고 사는데,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그 역치가 올라가서 더 행복하지 않게 되는 말도 안 되는 모순이 대체 뭐냔 말인가. 이거 어떻게 돼먹은 설계인가. 사실 술 담배 마약 같은 것이 아니더래도 우린 우리 주위의 행복의 점차 둔해지게 된다. 정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도 몇 달 정도 행복하고 그 뒤론 무덤덤해지게 되며, 내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거나 집을 사도 처음 몇 달은 행복하지만, 그 뒤로는 별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인간이 진화하면서 발전하고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 설계되었다는 말도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려고 삶을 사는 우리에게 좀 가혹한 진화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만족된 삶을 살 수 있는가? 술, 담배 같이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급상승시키는 것이 아닌, 호르몬의 균형을 만드는 운동? 상상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독서? 내가 말한 이 운동과 독서, 또는 여행 이런 것들은 너무나도 좋고 멋있고 행복을 위한 것들이다. 혹시 삶이 불행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운동이나 독서, 그리고 여행을 정말 추천한다. 이들은 호르몬을 안정화시키고 내 상상을 실현케 해주는 아주 좋은 방법들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행복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그리고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대답을 간략하게 해보려 한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려고 태어난 게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항상 사랑을 소재로 하는 것들이 많다. 설령 사랑이 주제나 소재가 아니더래도, 무조건 한 순간만큼은 연인들끼리의 사랑, 가족과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내가 말하는 건 이성적인 사랑이 아니라 인류애 정도로 해석해줬으면 한다.) 등을 표현한다.
그런 걸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는가?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우린 우리 주위의 사람이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고 행복한 감정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사랑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나 보다, 매출의 상승도 보장하고) 우리의 삶이 퍽퍽하고 외롭고, 길을 못 찾을 때 나는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껴보라고. 그게 반드시 이성일 필요는 없다. (이성이면 물론 좋겠지만)
보통 사랑이라고 하면 이성과의 사랑만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나는 사랑을 긴 구절로 표현하면 타인을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석하면 광범위하지 않은가. 오늘 밤에 집에 오면서 들린 편의점에서 편의점 점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부모님에게 잘 자라고 얘기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아까 인간 설계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말했다. 이 인간이라는 건 어떻게 돼먹은 건지 남들이랑 비교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하고. 또 그런 것들로 벗어나고자 행복해지려고 도파민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그 역치가 상승해서 행복하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설계라고 표현했다.
근데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딱 하나 게임의 지름길처럼, 치트키처럼 인간을 위해 만들어준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인간은 타인을 위해 살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이는 타인과 자신에게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양방향이라는 것이다.
타인을 위해 살아본 경험이 있을까? 만약 기억이 안 난다면 타인이 나에게 고맙다고 감사 표현을 할 때를 생각해 보라. 너 덕분에 재밌었어. 너 덕분에 할 수 있었어. 고마워. 이런 말들은 살짝 오글거리지만, 난 이 말을 들을 때 너무나도 보람차고 충족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운동하고, 책 읽고, 여행 가고, 공부하고 모든 것도 좋지만 세상 살면서 모두에게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건, 타인에게 도움을 주지만 분명 자신에게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만족감을 주게 된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인생 과업은 우리로 하여금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누군가를 향한 책임을 가지게 되는 사랑의 과정이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고, 서로가 서로의 정신적인 지탱을 해주며 살아갈 수 있다.
그 인생 과업이 그러하듯, 우린 항상 관계 맺음과 사랑을 중요시하며 살아왔다. 그 이유는 남을 위하는 것은 곧 자신을 위하는 것이고, 사랑함으로써 얻는 행복, 만족감 그리고 삶의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삶의 길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물론 그 길을 찾아 나서야겠지만 그전에 타인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닐까.
-pro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