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 그리고 이해하는 사람-
앞서 삶의 목적은 행복하기 위함이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이 주신 지름길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낄 때 받을 수 있는 행복은 긍정적인 호르몬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일으키며, (이는 술과 담배 등 인위적으로 호르몬의 변화를 일으켜 행복의 역치를 올리는 것과 상반된다.) 타인과 자신에게 모두 행복을 줄 수 있는 양방향적인 이득이다. (치트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행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사랑을 현실에서 어떤 방법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견을 내보려고 한다. 사랑이 뭘까?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사랑의 모습은 흔히 연인과의 로맨스, 또는 가족애를 그리곤 한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진정으로 책임감을 다하는 모습은 자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뇌 속 회로가 연결하고 창조되어, 행복과 긍정을 쉽게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꼭 가족과 연인이 아니더래도 가까운 사람, 심지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정성과 배려를 다할 때 역시 행복과 긍정을 느끼게 되고, 나는 그런 모습도 사랑으로 보고 싶다.
그런 광범위한 정의의 사랑은, 어려운 사람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봉사의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봉사가 사랑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좀 당연한 얘기인 것 같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애틋한 마음과 도움은 사랑의 큰 정의에 포함되는 것 같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에 아주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서로를 사랑하라."라는 말은 연인과 가족, 도움을 필요로 한 사람, 세상의 모든 사람...으로 확장되어 사랑, 봉사의 의미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드는데, 과연 모두를 사랑하고 아낄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착하지도 않고 다 이타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전략으로 인해 생존에 이기적인 방향으로 행동한다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 미디어나 뉴스에서 보듯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우리 같은 사람이 보기에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럼 사랑의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이러한 범죄자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 꼭 이런 큰 스케일의 범죄자가 아니더래도 우린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싫은 감정을 느낀다.(나만 그런가? 거의 다 그럴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내 의견을 묵살하는 의견을 내놓던가, 갑자기 나에게 무례한 말을 한다던가. 누구나 이런 일을 겪으면, 순간 기분이 욱해져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뭘까? 첫 번째에 해당하는 답은
한 훌륭한 존재의 답을 인용하려고 한다. "죄인은 미워하지 말고 그 죄를 미워하라."
이런 사람들을 연인과의 사랑처럼 감정적으로 아끼고 정을 주라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연민으로서의 사랑, 존재에 대한 공감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사람, 자신으로서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웃기지 않는가? 세상 사람들은 80억 가지의 관점이 있다.) 같은 것을 바라봐도, 사람들은 다르게 해석한다. 무려 80억 가지의 해석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 그런 해석들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오롯이 유전과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태어난 뇌의 구조와 호르몬, 그리고 그 사람의 인격을 만들어온 환경과 관계들.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관점을 다르게 하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랑 그 들 자신이 다른 인격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내 앞에서 나에게 삿대질하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은 뭔데 나를 싫어할까? 뭔데 이렇게 이기적이고 꽉 막혀있을까? 그건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나는 그것을 원초적인 유전과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은 오만할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진정으로 내가 그 사람이 된다면 생각의 틀마저 그 사람처럼 바뀌게 된다. (유전과 환경은 신체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관점과 정신까지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잔혹한 범죄자들을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람들을 아끼고 배려하라는 건 아니다. 벌과 질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뇌의 전두엽과 대상피질의 이상으로 인하여 발휘되지 않고, 어떤 환경과 관계 속에서 남을 해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감정적이고 정을 주는 사랑을 이들에게 하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난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 자기중심적이고 때론 오만한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분노를 담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연민으로서의 사랑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그런 이유가 있어서다. 내 부족한 지식 선에선 유전과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물론 더 새로운 것들이 있을 수 있겠다. 누군가의 관점과 생각을 결정하는 건 과거의 어떤 무언가다. 그러니까 분노하지 말고 복수하지 말고, 연민으로서의 마음을 가지는 게 좋은 것 같다.
선과 악, 정의하기도 어렵고 사람마다 다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추상적이고 어렵다. 철학 따윈 배운 적 없는 한국의 일개 대학생이 나름 정의를 해보려고 하는데, 남에게 공감할 수 있으면 선, 남에게 공감할 수 없으면 악이라고 정의해 본다. 이기적인 것은 절대악이 아니고, 이타적인 것도 절대 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가 현실 사회에서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생각이 든다.
선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공감하며 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악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럼 선과 악이 공감 능력으로 좌우되는가? 그건 태어날 때부터, 아니면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선과 악이 정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정의하기 나름이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물론 절대적인 진리의 선과 악은 구별할 도리가 없다.) 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걸 판단하는 건 여러분 자신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악한 사람에게 사랑이란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연민과 이해로서의 사랑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과 환경의 집합, 그들의 관점과 시선은 그런 것들에 의해 결정되니까. 당연히 흘러가는 그들의 관점에 너무 분노하지 말자.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고, 남에게 해를 가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합당한 질타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의 유지를 위한 도덕적인 절차다. 그러나 개인적인 시선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주위의 누군가에게 분노하거나 화가 나는 경우가 있다면, 마음을 다잡고 그들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정말 아주 넓은 의미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해와 연민으로서의 사랑.
항상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나도 나의 관점이 나의 유전과 환경으로 인해 정해진 시선이란 걸 안다. 그러나, 오만하게 내 삶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나는 타인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 사람들의 행동, 시선, 관점, 감정에 이해하는 사람이 되면 그건 나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게 하고, 내 행복의 긍정적인 도움을 주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한테 열을 내고 화를 내며 나를 해하려 한다면, 나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되, 그 사람 자체에게 너무 미운 마음을 가지지 말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사람의 관점과 시선은 무언가로 인해 이미 정해진 것이니까.
이러면 좀 마음의 짐이 덜어지지 않을까?
#2.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