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72.
<인간적>으로 광고를 풀고 싶은 그대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감동에 취약한 독자에게 얍삽하게 봉사하는 <헤픈> 광고를 만들 것인지, 오바를 경멸하고 싸구려 감동을 경계하는 독자를 다가오게 할 <튕기는> 광고를 만들 것인지.
전자를 선택하는 그대는 행복하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극렬한 반대에 부딪힐 우려도 적고, 제 분수도 모르고 회사 사정도 남의 일인 4차원 또라이로 매도당할 확률도 희박하다. 유사 휴머니즘, 문맥 없는 감성팔이나 판에 박은 웃음, 소재주의적 접근, 뭐 헤픈 광고가 흔히들 차리는 밥상이지만 적당히 취해 써라. 무슨 문제겠는가. 참, 인기 높다는 셀리브리티를 일단 골라 밑반찬으로 깔면 효과 만빵이겠다. 모두가 적당히 만족할 것이다. 왜냐. 어쨌든 사람 좋은 탈을 쓰고 다가오는 이야기에 굳이 까칠하게 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속으로야 꼬롬할지언정 거기다 대고 돌을 던지기는 사람의 탈을 쓰고 매우 쉽지 않다. 뉘라서 스스로 <인간적이다>라는 레토릭을 걷어차겠는가. 좋자고 하는 광고에 괜히 한마디 하고 짐승만도 못한 놈 소리 들으면 억울하지 않겠나. 이것이 헤픈 광고들이 대를 잇는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헤픈 광고가 뭐냐고? 흠... <소비자가 뽑은 광고상>이란 걸 수상한 작품들을 한 번씩 봐라. 아이러니하지?
자, 헤픈 광고에 싫증이 난 소수의 그대는 다시 생각해 보자. 함께 모여서 손뼉 치고 돌아서 욕하는 독자와 <광고니까> 한 수 접고 봐 주는 이른바 <질 낮은 용인>을 거부하는 깐깐하고 몇 안 되는 듯 보이는 독자를 위해서 콧대를 한 번 세워보자. 에구, 갈 길이 멀고 험해 안쓰럽지만 보상은 있다. 헤픈 광고는 절대로 문제작은 될 수 없으니까 확률은 그대에게 있다. 걱정 마라.
모든 문제작은 처음엔 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다.
<튕기는 광고>는 대개 무언가 질문을 던진다. 불편하게 시작한다. 그래서 이 도도하고 콧대 높은 광고는 비싼 광고료를 지불하고선 감히 딴청을 피우기도 한다. 불편한 진실을 맞닥뜨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소수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 삶의 예외성까지 의연하게 긍정한다. 이런, 광고 주제에, 싶다. 하지만 이상하지. 제대로 <튕기는 광고>를 만난 어떤 마음엔 파문이 인다. 으응? 이것 봐라. 가만있어봐. 그럴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휴머니티는 결국 어떤 코스프레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울림통의 크기에 관한 문제다.
배우가 먼저 울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연기론이 말하는 좋은 배우는 저는 울지 않으면서 사람을 울리는 배우다. 휴머니즘 광고가 무슨 장르라도 되냐? 휴머니즘 광고에 꼭 휴머니즘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꼭 인간적인 것은 아닌 것처럼.
코스프레는 진짜가 아니라는 인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