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해답-4) 장강명 <먼저 온 미래>
2016년 3월 9일.
한국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1국이 열린 날이다. 많은 언론이 이 대국을 조명하고 있었기에 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세돌은 그 날 알파고에게 첫 패배를 당한다.
이 9단은 경기 전에 "제가 한 판이라도 진다면 알파고의 승리가 아닌가"라며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알파고의 4대 1로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렇게 프로바둑계는 AI 프로그램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며,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1년 반이 지난 2017년 10월.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의 새 버전이자 강력한 버전을 개발했다고 밣힌다. 이 9단과 겨룬 알파고 기존 버전은 인간 기사들이 둔 기보를 가지고 학습했다면, 새 버전은 오로지 바둑 규칙만 입력하고 혼자 바둑을 둔 지 36시간만에 기존 버전(알파고 리)의 실력을 넘어섰다. 72시간 동안 490만 판을 혼자 둔 뒤에는 알파고 리와 겨뤄 100전 100승 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바둑 전문 방송에서는 프로기사들이 한 수씩 바둑돌을 놓을 때마다 AI가 승률을 계산해서 보여주었고, 해설가는 그 승률의 변화를 보며 그 수가 악수인지 묘수인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2019년 11월.
1983년 생인 이세돌 9단은 프로바둑계에서 은퇴했다. 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은퇴 이유로 인공지능을 꼽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AI라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 앞에서 느끼는 허무와 좌절"이 은퇴의 직접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알파고가 나오기 전의 기보와 지금의 기보는 다릅니다. 예전 기보는 역사적인 가치 외에는 없는 거에요. AI의 기보가 내용상으로 훨씬 더 위거든요. AI의 기보를 보면서 '이건 이렇게 둬야 되는구나. 여기서는 이렇게 둬야 되는구나' 배워야 하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2022년 11월.
오픈AI가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를 공개했다. 이전 챗봇과 달리, 챗GPT는 사람처럼 말했다. 유명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기사를 다루었다. 챗GPT의 월 이용자 수는 공개 두 달만에 1억 명이 넘었고, 2023년 5월에는 18억 명이 됐다. IT 잡지 <컴퓨터월드>의 칼럼니스트 마이크 엘건은 "챗GPT는 현존하는 블로거의 99퍼센트보다 뛰어난 작가"라고 평가했다.
온 세상은 AI의 능력에 열광했고, 나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방송이나 인터넷 등의 매체에서 "AI를 어떻게 하면 내 비서처럼 똑똑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콘텐츠가 넘쳐났다. 그러면서 좀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으로 가장 중요한 인간의 무기는 '창의력'"이라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5년 가을.
현재 우리는 "AI가 나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터미네이터와 같이 인간에게 반기를 들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다. "그래, 내가 하는 일은 기획력과 창의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는 문제없을 거야"라고 안심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바둑 프로기사들은 2016년 이세돌-알파고의 2국을 복기하며 이미 알파고의 수법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라고 평가했다. 심지어 알파고의 수법이 퍼지면서 인간 프로기사가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줄었다고 말했다. 또한 알파고 등장 이후 인간 바둑기사들은 본인만의 기풍을 잃었고, 실력이 상향평준화됐다.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이 더이상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AI는 시와 에세이를 쓸 수 있고, 심지어 그림과 소설도 제법 그리고 쓸 수 있다.
책의 작가는 문학가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문학계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인공지능이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제안할 때 인간 소설가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 소설가가 인공지능과 협업할 때, 혹은 편집자를 통해 인공지능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 소설이 온전히 개인적인 것일 수 있을까?
또한 작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다양한 직업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와 'AI 진단 도움미'의 진단과 처방이 다르다면, 회사에서 경영자인 '나'와 'AI 경영 도우미'의 의사결정이 다르다면, 그리고 피해자로 재판정에 섰는데 '판사'와 'AI 재판 도우미'의 판결이 다르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믿고 따를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지난 95년 동안 등장한 수많은 신기술(비행기, 컴퓨터, 인공위성, 휴대전화, 인터넷 등)처럼 AI가 우리를 귀찮은 잡무에서 해방시켜서 여가시간을 고상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애플, 구글, 메타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단순히 유통 시장, 혹은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목표 보다는 물건을 구매한다는 행위, 다른 사람과 연결된다는 행위 차체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리가 알던 개념을 바꾸고, 우리가 아는 세계를 이루고 유지하는 근본 개념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낸다.
작가의 말에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프다.
저자는 수많은 화두를 나에게 던지고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좋은 상상을 하는 것,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렇게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투스> 마지막 구절을 조금 변형해 책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까지는."
"교수님! 챗GPT에 물어보니 교수님 말씀이 틀리신 것 같은데요?"
어느 한 대학교에서 최근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당황한 교수님은 학생에게 잘 못 알았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찾아보라고 말했지만, 그 학생은 자신은 유료 버전을 쓰기 때문에 절대 틀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진리의 전당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 대학교의 우울한 단상이다.
사실 이 책은 얼마 전 서점에 갔다 재미있을 것 같아 산 책이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이 책은 나에게 충격과 수많은 질문을 안겨주었다.
"4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바둑이 불과 10년, 아니 5년도 안되는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나 바뀔 수가 있을까?", "나의 직업과 업무는 어떤 변할까?", "미래의 나는 경쟁력이 있을까?",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할까?", "그 준비를 위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5년은 될까?"
최근에 이와 관련한 빅데이터 전문가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세상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 손으로 직접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