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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Jan 20. 2021

브람스 "헝가리 춤곡"

클래식에 다가가기(9)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글: 신동일(작곡가)


19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음악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했고, 무거운 작품을 많이 작곡했기 때문에, 그의 음악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브람스를 친근하게 느끼려면 <헝가리 춤곡>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헝가리 춤곡>은 사실 브람스가 작곡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유행가처럼 시중에 떠돌던 집시의 멜로디를 발췌하여 피아노 음악으로 편곡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브람스가 이 작품을 발표한 뒤에 저작권 문제로 소송이 있었지만, 브람스가 처음 발표했을 때부터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편곡 작품이라고 알렸기 때문에 소송은 큰 문제없이 끝났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본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서유럽에서도 ‘작곡가’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기는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실제로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많은 작곡가들이 당시에는 피아니스트 등 연주가로도 부지런히 활약했었는데, 브람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던 브람스는 자신의 연주 레퍼토리를 직접 만들어내곤 했는데, 집시의 음악이 청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판단하여 <헝가리 춤곡>을 만들어 직접 연주하곤 했습니다.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은 총 21곡입니다. 원작은 1대의 피아노에서 2명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 작품이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 오케스트라 곡으로 연주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악기 편성으로 편곡되어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21곡의 <헝가리 춤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제5번으로, 20세기 들어서는 재즈나 다른 여러 가지 대중음악 편성으로까지 편곡되어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제5번과 함께 제1번과 제6번 등 3곡 정도는 널리 알려져 있고, 제4번, 제8번 등 매력적인 곡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에겐 유명한 러브 스토리가 있습니다. 브람스는 작곡가 슈만의 제자였습니다. 20살의 나이로 슈만을 찾아온 브람스의 재능과 열정에 감명 받은 슈만은 브람스를 열렬하게 지지해 주었고, 브람스는 슈만 부부와 평생 유대를 이어갔습니다. 슈만은 말년에 정신병을 앓으면서 고통 받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브람스는 20대였습니다. 브람스는 슈만의 부인이었던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에게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클라라 슈만은 브람스보다 14살 위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브람스가 클라라를 사랑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가 죽은 뒤에야 자신이 평생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에 대한 감정을 평생 입 밖에 내지 않고 4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고, 함께 연주하기도 하며 우정 어린 관계를 지속했습니다. 슈만과 클라라와 브람스의 특별한 관계는 서양음악사에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 음악상식: 집시의 음악

주로 동유럽 지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살아왔던 집시들은 독특한 음악을 연주하며 유럽의 음악과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집시의 음악은 이국적이고 애절하면서 듣는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집시는 오래 전 인도 북부지역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거쳤던 여러 나라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비잔틴, 그리스, 아랍, 인도, 페르시아, 터키, 슬라브 음악, 유대 음악 등의 요소들이 집시 음악 스타일에 스며들었습니다.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방랑 생활을 하는 집시의 특성 때문에 집시들은 서쪽으로 계속 퍼져나가 스페인에서 플라멩고 음악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18세기부터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이 활약하던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서유럽의 세련된 음악을 쫓아 집시 음악을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19세기 하반기에는 서유럽에서도 집시의 음악이 크게 유행하여 베를리오즈나 브람스, 리스트 등 여러 작곡가들이 집시 음악 스타일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집시 음악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헝가리였습니다. 헝가리의 15세기 기록에도 집시 음악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후 꾸준히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고, 18세기~19세기에는 헝가리 민족주의 음악 운동과 결합되면서 집시 음악하면 헝가리 음악으로 인식될 정도로 가장 매력적인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로비 라카토시와 그의 밴드

집시 음악은 두 대의 바이올린을 사용하는 것이 전통으로 정착되었고, 우리나라의 양금과 비슷한 심발롬(Cimbalom)이라는 악기가 특징적으로 사용되며, 더블베이스, 기타, 아코디언, 클라리넷, 팬플륫 등을 활용한 4~7명의 밴드 형태로 연주를 하는데,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 등의 서양악기들은 자기들만의 주법을 개발해서 특이한 방식으로 독특한 선율을 연주합니다. 노래는 특정한 박자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부르는 느리고 애절한 스타일과 빠른 춤곡 스타일이 있습니다. 리듬이 살아 있는 음악에서는 혀를 차거나 손뼉 치기, 숟가락 연주 등으로 흥을 돋웁니다. 악보를 중심으로 연주하고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유럽 음악과 달리, 집시들은 악보를 남기지 않고 구전으로 음악을 전수합니다. 그리고 집시들의 연주에는 보통 춤이나 곡예 등의 활동적인 음직임이 함께 하곤 합니다.
집시 음악은 서유럽 작곡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베를리오즈의 음악극 <파우스트의 겁벌>에 <헝가리 행진곡>이 포함되어 있고, 브람스가 21개의 <헝가리 춤곡>, 리스트가 19곡의 <헝가리랩소디>를 작곡했으며,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라벨의 <치가느> 등 집시 음악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집시 음악 연구에 최고의 성과를 거둔 음악가는 헝가리 작곡가 바르톡(Bela Bartok)과 코다이(Zoltan Koday)입니다. 두 사람은 당시 발명된 녹음기를 들고 동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집시 음악을 채집하여 연구하고, 자신들의 작품에 반영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코다이는 음악역사상 최고의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헝가리에 정착시켰고, 바르톡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https://youtu.be/O192eo9zbT4

브람스 "헝가리 춤곡" 제5번과 제6번, 오케스트라 버전


https://youtu.be/v69MZWFQX0o

작곡가 신동일과 음악컬럼니스 임정빈의 브람스 :헝가리 춤곡"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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