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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Jan 19. 2021

슈만 "어린이의 정경"

클래식에 다가가기(8)

슈만 <어린이의 정경>


글: 신동일(작곡가)

서양음악사에서 19세기 낭만주의(Romanticism) 음악을 대표하는 독일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은 자신의 음악에 문학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곡가입니다. 그리고 낭만주의 음악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문학성을 포함한 음악입니다.

슈만은 소설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청소년기에는 아버지가 발행하는 잡지에 에세이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슈만이 본격적인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음악잡지도 창간하고 꾸준히 음악에 대한 글을 발표하며 음악비평가로서도 활동을 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했던 슈만의 20대에 작곡된 초기 작품들 중에는 피아노를 위한 곡들이 특히 많은데, 그 중 대다수가 어떤 이야기나 특별한 상징들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곡이 많습니다. 장 파울 리히터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초기 작품 <나비(Papillons)>를 비롯하여 <다비드 동맹 춤곡집(Davidsbündlertänze)>, <카니발(Carnaval)>, <크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 등 그의 대표작들은 소설 등 실제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거나 작곡가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담아낸 피아노 음악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의 정경(Kinderszenen Op.15)>은 하나의 이야기 흐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각각의 짧은 곡마다 작곡가가 생각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상징하는 제목과 이를 반영한 음악적 표현을 간결하고 아름답게 펼쳐내고 있습니다.

슈만이 28세 경 작곡한 <어린이의 정경>은 총 13곡의 짧은 피아노 곡을 모은 “모음곡”으로, 당시 젊은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비크(Clara Wieck)와 연애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인지, 동심에 가득 찬 악상과 행복한 감정이 곳곳에 펼쳐진 아름답고 즐거운 작품입니다.

슈만과 클라라 비크(Clara Wieck)의 사랑은 서양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애 이야기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고,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도 다루어져 왔습니다.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릭 비크(Friedrich Wieck)는 음악평론가이자 교육가였는데, 당시 20대의 슈만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슈만은 선생님의 딸과 연애를 한 것입니다. 아버지 프리드릭 비크는 딸 클라라와 슈만의 연애를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슈만과 클라라는 <어린이의 정경>이 작곡된 지 2년 후에 마침내 결혼해 음악사에 길이 남는 음악가 부부가 되었습니다.

슈만의 피아노 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어린이의 정경>에 포함된 13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미지의 나라들에서 (Von fremden Ländern und Menschen)

2. 이상한 이야기 (Kuriose Geschichte)

3. 술래잡기 (Hasche-Mann)

4. 조르는 아이 (Bittends kind)

5. 만족 (Glückes genug)

6. 큰 사건 (Wichtige Begebenheit)

7. 트로이메라이 (Traümerei)

8. 난롯가에서 (Am Kamin)

9. 목마의 기사 (Ritter vom Steckenpfed)

10. 약이 올라서 (Fast zu ernst)

11. 거짓말 (Fürchtenmachen)

12. 아이는 잠잔다 (Kind im Einschlummern)

13. 시인의 이야기 (Der Dichter spricht) 

제목들만 살펴봐도, 슈만의 문학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13번째 곡에서는 자기 자신을 ‘시인’으로 상징하면서 조용하면서 성숙한 분위기로 전체 작품을 마무리합니다. 

<어린이의 정경>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역시 7번째 곡인 <트로이메라이>입니다. “꿈”이라는 뜻을 가진 이 곡은 꿈결같이 아름다운 선율이 특징이며, 피아노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악기로도 편곡되어 수 없이 연주되어 온, 사랑스러운 명곡입니다.  


▷ 음악상식: 표제음악

베를리오즈에 대한 풍자화

표제음악(Program Music)이란 음악 외적인 소재를 가진 음악 작품들을 말합니다. 문학이나 미술 등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이나 자연의 모습 등을 소재로 하여, 음악으로 이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표제음악”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표제음악에는 특별한 제목이 있습니다. 그 작품이 무엇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제목을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기악 연주곡이 발달한 유럽의 음악가들은 음악으로 새소리나 천둥소리 같은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음악가에게 부차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했고, 순수하게 음악적인 표현만으로 작곡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클래식 음악의 제목은 “피아노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4중주곡”, 피아노 협주곡“과 같이 악기 편성이나 형식에 관계된 제목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제목의 불친절함은 오늘날 청중들이 클래식 음악을 따분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표제음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계(Four Seasons)>로 유명한 작곡가 비발디(Antonio Vivaldi)는 <폭풍우>라는 제목의 플륫협주곡을 작곡했고, 프랑스 작곡가 쿠프랑(François Couperin)은 <사랑의 꾀꼬리>, 라모(Jean-Philippe Rameau)는 <암탉>이라는 묘사적인 곡들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표제음악이 발표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전원>을 표제음악의 출발로 보기도 합니다. 베토벤은 이 작품의 초연 당시 <시골 생활의 회상>이라는 제목을 붙여 발표했는데, 베토벤이 직접 기악 연주곡에 제목을 붙이는 일은 흔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5악장에 걸친 작품 속에도 여러 가지 새소리, 천둥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묘사하는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전원교향곡>이 표제음악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베토벤은 이 작품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작곡가의 정서를 음악적으로 표현했을 뿐이지, 자연 현상을 묘사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양음악사는 최초의 표제음악을, 19세기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의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이라고 말합니다. 이 작품은 작곡가 자신의 실패한 사랑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구상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따라 음악이 흘러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작곡가 스스로 음악의 각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대입해 가면서 작곡했습니다. 전체는 총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악장마다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각 악장마다 특별한 이야기를 따라 작곡된 음악이 흐릅니다. 

제1악장 “꿈. 열정”에서는 사랑에 빠진 예술가가 느끼는 꿈결 같은 감정과 주체할 수 없는 우울함, 열정과 질투와 같은 여러 가지 정서를 표현합니다. 예술가의 사랑이 시작된 것입니다.

제2악장 “무도회”는 교향곡에 처음 삽입된 왈츠입니다. 무도회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춤을 추는 행복함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3악장 “들판의 풍경”. 여름 저녁 들판에서 상념에 빠진 예술가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불안과 희망사이를 오가는 감정 속에서 결국 고독과 절망을 느낍니다.

제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절망에 빠진 예술가는 독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꿈속으로 들어갑니다. 예술가는 사랑하는 여인을 죽이고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단두대로 향하는 예술가의 발걸음이 절망적인 행진곡으로 표현됩니다.

제5악장 “마녀들의 밤의 꿈”. 사형 당한 예술가의 장례식에 마녀들이 모여들어 축제를 벌이며 화려하게 곡을 마칩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스타일의 작품이었고,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작곡가 리스트(Franz Liszt)는 <환상교향곡>의 작곡 방법을 더욱 발전시켜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형식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교향시”는 <환상교향곡>과 같이 소설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음악을 만들어내는 대규모 관현악곡입니다. “교향시”는 <환상교향곡>과 다르게 악장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를 거대한 하나의 교향악곡으로 만들어내는, 표제음악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6z82w0l6kwE

슈만 "트로이메라이"- 연주: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https://youtu.be/yibf6QNjgGU

슈만 "어린이의 정경" 전곡 - 연주: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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