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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Feb 13. 2021

그냥 쓰는 글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쓸 계획은 없었는데, 다른 작가님들 글을 읽다가 영향을 받아서, 작품 이야기를 뺀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봅니다. ^^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부터, 나는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였다. 놀 때도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뭘 만들거나, 종이를 접거나 자르거나 붙이거나 하면서 놀았다. 5살 때 어머니가 어린이 잡지 소년중앙을 구독하게 해 주셨는데, 만화를 다 읽고 나서 만화 장면 장면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가위로 모두 오리면서 놀았다. 책을 받을 때마다 하던 일이었으니까 기억이 선명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이런 취미가 좀 더 발전했다. 화가이셨던 어머니의 책장에는 미술 관련 책들이 많이 있었는데, 아마도 나 보라고 생활공작대백과였던가, 지금으로 치면 DYI 비슷한 내용의 전집을 구해 두셨다. 그 책을 보고 따라서 뭔가를 만들려고 종종 시도를 했는데, 당시로서는 우레탄이라든가 들어보지 못한 재료들을 구할 수가 없어서 종이로 많이 대체해서 만들어보려고 애를 쓰곤 했다. 또 음악을 듣다가 음악도 작곡가라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게 머리 속에 들어오자, 나도 똑같이 해 보고 싶어서 혼자서 작곡을 시작했다. 5학년 때는 원고지를 사다가 동화를 쓰기도 했다.   


학교는 좋아해서 동네 친구는 없었고, 학교 친구들은 좋아했다. 하얀 피부에 커다란 눈, 외가 쪽을 많이 닮아서 다소 이국적으로 생겼던 탓에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주목받는 어린이였다.  

    

중학생 때 클래식 음악에 꽂히면서 말수는 더더욱 줄어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클래식 전문 FM 방송이 생겨서 집에 있을 때는 항상 듣고 있었는데, 화장실 갈 때도 라디오를 들고 갔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는 작곡을 처음 배루게 되었다. 국어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께서 예전에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대학교수가 되신 작곡가 선생님께 나를 소개해 주신 것이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는 현악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작곡할 때 유용할 것 같아 어머니께 부탁드려서 바이올린을 1년 배웠다. 그런 식으로 나름 혼자 준비를 해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제대로 작곡을 시작한다고 마음을 먹고 작곡에 열을 올렸다. 집에 오면 내 방에 틀어박혀서 작곡만 했으니, 말을 할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말도 잘 안 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다 보니 사회화도 잘 안 되었다. 대학 1학년 때인가, 절친 중 한 명이 보자고 했다. 자기가 여학생을 만나는 데 같이 보자는 얘기였다. 나가보니까 여학생이 2명 나와 있었다. 한 명은 내 친구를 만나러 나온 것 같은데, 다른 한 명은 왜 나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나는 거의 한 마디도 안 하고 친구 이야기만 들어주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몇 년 지나서 어느 날, 그 때 일이 떠올랐는데, 친구가 나를 왜 불렀는지 깨달았다.     


대학 때, 작곡과 선배 한 분이 현악기 전공 학생들을 모아서 현악합주단을 만들었다. 그 선배는 내가 바이올린을 배웠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나더러 합주단에 와서 비올라 파트를 맡아달라고 했다. 비올라 악보 읽는데 도움도 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정기적으로 연습에 참여했다. 어느 날 연습 끝나고 밥을 먹었는지 차를 마셨는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단원들은 거의 여자 선배들이었는데, 한 선배가 자기는 말하는 것보다 남의 말 듣는 게 더 좋다고 얘기를 했다. 다른 선배가 맞장구를 쳤고, 다들 자기도 그렇다며 서로 공감대를 만들었다. 순서대로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내가 얘기할 순서처럼 되어 선배들이 나는 쳐다보고는 잠시 정적, 그리고 모두 웃음을 터뜨리면서 “알았어 알았어”라고 했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건 나였다.      

 

내가 특히 제일 어려워 하는 건 바로 “잡담”이다. 공식적인 말은 잘 할 수 있다. 무대에 설 일도 종종 있고,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 물론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비유나 농담을 잘 못하고 딱 필요한 말 위주로 하기 때문에 내가 대중 앞에서 15분 이상 말을 하면 모두 잠들어 버린다. 최소한으로 하고 있는 대학 강의도 강의 형 과목은 점점 줄어 지금은 결국 개인별로 하는 전공실기만 지도하고 있다. 강의형 과목은 워크샵 수업을 잘 한다. 멍석 깔아주는 일은 능숙하게 한다. 


개인적인 만남에서도 이야기할 목적과 주제가 명확하면 문제가 없다. 그냥 만나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가장 문제다. 이런 일로 불편할 경우가 생기니까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을 해 봤는데, 가장 큰 요인은, 거의 24시간 작곡에 대해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외에 사항에 대해 의식할 여지를 거의 안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머리 속에 작곡 외에 사항을 저장해 둘 공간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즈음에 최근에 어디선가 그의 안부를 접한 일이 있다면, 그와 관련해서 인사를 건네면 상대방과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텐데, 그럴 때 안부를 기억해 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머리 속에 그런 기억들을 정리해 두고 적절하게 꺼내 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내 머리는 그럴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 듯 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경험이나 자기 얘기를 자연스럽게 잘 하기도 하던데, 나는 내 이야기를 대화와 쉽게 연관지어 잘 생각해 내지도 못하고, 얘기를 꺼내도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않는다. 내 얘기를 해보겠다고 말을 꺼냈다가 계속 썰렁했던 기억도 몇 번 있어서, 지금은 아예 시도를 않는다.    


그래서 차라리 글을 쓰는 게 훨씬 편하다. 순발력도 없어서 말할 때 실수도 많이 하는데, 글을 쓰면 정리할 시간도 생기고, 전체적으로 구성도 할 수 있고, 수정도 용이하다. 

  

아무튼 말이 없어서 사는 데 불편한 경우가 더러 있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실수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 대해 답답하거나 싫지는 않다. 부모님도 나에 대해서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두셨고, 나도 스스로에 대해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혼자 살았으면 아무 문제 없이 그냥 이렇게 살았을텐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니까, 여기서 막힌다. 가족과의 관계가 제일 어렵다. 고쳐보려고 노력하고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는데,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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