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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Feb 23. 2021

탈고!

오페라 "화공 둥섭" 보컬 스코어 완성을 기억하기 위해

음악 작품 탈고를 하나 했는데, 아직 어디 대대적으로 알릴 단계는 아니고, 뭔가 자축을 하고 싶은데 브런치가 떠올라서 여기다가 몇 자 적습니다. 기록도 남길 겸.      


제가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작곡마당”이라는 작곡가 모임(설명하자면 좀 복잡해서 나중에 따로 여기에 대해 쓰기로 하고) 회원 중 가까이 지내는 작곡가 한 분이 화가 이중섭의 유족입니다. 이중섭 화가가 작은 할아버지인데, 국내 저작권 관련해서는 이 분 아버님께서 관리 책임을 지고 계십니다. 


2014년 말이나 2015년 초 정도로 기억하는데, 개인적으로 저에게 이중섭에 관한 오페라를 위촉했습니다. 그동안 이중섭과 관련된 무대 작품들이 꽤 만들어졌는데(오페라 포함해서), 본인 마음에 흡족한 작품이 없었다고 자기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을 하나 완성해서 악보라도 소장하고 싶다는 얘기였습니다. 자기가 작곡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와 오랫 동안 신뢰를 쌓았고, 그 즈음에 제 오페라를 한 편 관람한 뒤에 결정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거절할 이유는 없어서, 저와 호흡이 잘 맞는 극작가 한 분을 소개하여 몇 차례 회의를 가진 뒤 대본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애초에는 2016년 이중섭 100주년 즈음에 기회가 많을 듯 하여, 그 때 쯤 공연할 기회를 모색해 보는 걸로 계획을 했습니다. 그러나 대본 작업이 점점 오래 걸려 100주년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대본 완성까지 2년 정도 걸렸습니다.   

   

대본은 정말 좋았습니다. 작가님이 연구를 정말 많이 하신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지역에 관련된 인물을 소재로 한, '인물 오페라'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천편일률적인 이야기 구성을 갖고 있어서 크게 성공한 작품이 없었습니다. 이번 대본은' 인물 오페라'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할 만큼 튼튼하고 치밀한 구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기분 좋게 작곡을 시작했는데, 이런, 대본의 밀도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작곡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대본은 어렵고, 공연 날짜가 예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목표도 없고, 그때 그때 닥치는 일들을 해나가면서 짬짬이 작곡을 해야 했기에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습니다.    

  

오페라는 보통 피아노 반주로 먼저 완성을 한 뒤에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확대하게 되는데, 피아노 반주로 한 곡 완성하는데 짧으면 한 달, 길면 2-3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일이 없는 기간에 집중해서 작곡하곤 했는데, 1년에 한 곡이나 두 곡 정도 완성해 나갔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시대가 왔습니다. 가을 쯤 되자 생활이 흔들렸습니다. 평생 작곡하고 공연하면서 한 눈 안 팔고 달려왔는데,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지 회의가 와서 머리 속이 산만해지고 작곡이 잘 안 되었습니다. 작심을 하고 한 3개월 정도 처음으로 작곡을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저런 계기로 마음을 잡고 다시 작곡을 시작하면서 이중섭 오페라에 마음이 확 쏠렸습니다. 여름에 작곡하다가 중단했던 2막의 중요한 한 곡을 해를 넘겨 1월 초에 가까스로 완성한 뒤, 2월 말까지 전체 완성을 목표로 작곡에 열중했습니다. 한 장면 한 장면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이런 저런 해야할 일들이 생기고, 오페라는 벽에 부딪히기도 하면서 2월 말 완성은 어렵겠다 싶어 다시 마음을 비웠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오늘 2월23일 이중섭 오페라의 보컬 스코어(Vocal Score; 오페라의 피아노 반주 악보를 이렇게 부릅니다)를 마침내 완성했습니다. 작곡한 지 4년 만에, 대본 작업부터 6년 만에 완성을 한 것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프로덕션을 세우려면 온갖 방편을 동원해서 여기저기 알아봐야 하는데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고, 공연 계획이 세워지면 또 어마어마한 분량의 오케스트라 악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도 오늘의 탈고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오페라 제작의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1단계 작업이 완료된 것입니다. 정말 이 작품을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채로 몇 년을 보냈습니다. 공연을 또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말 기분 좋습니다.  

    

오늘 밤은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오페라의 제목은 <畵工 둥섭>입니다. 

  


최근 제가 운영하는 작곡마당 회원 발표회인 "포럼 작곡마당"에서 오페라 <화공 둥섭> 중 제1막 이남덕의 아리아 "그날이 언제였나요?"를 연주해 보았습니다. 이중섭이 일본인 아내에게 "이남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중섭이 일본 유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 일본에 남은 이남덕이 이중섭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https://youtu.be/5qjFgXKfSSA

신동일 오페라 "화공 둥섭" 중 1막 이남덕의 아리아 "그날이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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