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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Feb 22. 2021

세월호 레퀴엠 "쪽빛의 노래"

백기완 선생님을 추모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함

2014년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절망과 슬픔을 느꼈다. 당시 세월호에 타고 있던 학생들의 휴대폰 촬영 동영상 등 수많은 이미지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볼 수가 없었다. 원래 TV를 잘 안보지만, 뉴스도 보지 않았다. 그 영상들을 직접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것들을 보고는 일상생활을 제대로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글로만 찾아보았다. 1년 내내 열심히 작곡을 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나로서는 자발적인 행동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 어떤 역할이 주어졌을 때 피하지 않겠다는 마음 정도를 가졌였다. 세월호참사 2개월 정도가 지났던 그 해 6월에, 160여명의 음악인들이 모여 청계천 광장에서 플래시몹 비슷한 형태로 <세월호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을 때 악보 만들고 연습시키고 지휘를 했다. <세월호 게릴라 콘서트>는 한 번 더 공연을 했고, 한 동안 지속되면서 작은 공연들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3년 째 되던 2017년 초, 이소선합창단의 지휘자인 임정현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백기완 선생님께 세월호참사에 대한 노래 가사를 부탁드려 받았는데, 선생님께서 노래에 전통가락이 반영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셔서 나에게 연락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쪽빛의 노래>를 받아보니 노래 가사로 쓰기에 적합한 글은 아니었다. 임정현 선배는 가사를 작곡가 임의로 수정해서 써도 된다고 했는데, 내가 워낙 남의 글에 손을 못 대는 성격이라서 받은 가사 그대로 작곡해서 보내주었다. 얼마 후, 이소선합창단과 연습을 가진 뒤, 임정현 선배로부터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왔다. 백기완 선생님의 글을 어떻게 글자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작곡을 했냐는 것이었다. 왜냐면 백기완 선생님의 가사는 무시무시한 구절들이 포함된 격정적인 표현이 많았고, 노래 가사로서 친절한 운율을 갖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백기완 선생님의 언어를 그대로 살리면서 자연스러운 음악적 표현과 정제된 예술 양식으로 담아내면서, 합창단원들에게도 낯설지만 특별한 음악적 경험을 주고 있다고 했다. 합창곡 <쪽빛의 노래> 가사를 소개한다. 




쪽빛의 노래


백기완 작사 / 신동일 작곡


이 캄캄한 밤바다에 처박혔지만

우리는 죽질 않았다구요

너무나 원통해 너무너무 원통해

원수를 갚기 전 어찌 눈을 감겠어요


온몸의 눈물이 시퍼런 칼이 되어

살인마 그 끔찍한 사기꾼들을

악살 박살 갈기갈기 찢노라니

얼라쿵 캄캄한 바다가 티 하나 없이

해맑은 쪽빛이 되네요


어머니 아버지 벗이여, 한숨을 거두세요

우리 이 썩어문드러진 땅도 발칵 갈아 엎구선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쪽빛 세상 일구자구요

우리도 한번쯤 천지개벽의 우당탕 물음 같은 

쪽빛의 노래, 넘쳐라 불러요 몰아쳐라 불러요

부를수록 맑아지는 쪽빛

아... 쪽빛의 노래여




후에 이 노래의 가사에 대해서 불만을 나타내는 음악인, 예술가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리 동의하지 않는다. 꼭 아름다운 가사만을 노래해야 할까? 음악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쪽빛의 노래> 가사는 일반적이지 않다. 백기완 선생님이 작사하신 걸로 알려진 여러 노래들은 노랫말에 적합한 형태로 수정된 후 작곡되었다. 그러니 이 노래는 백기완 선생님이 쓰신 가사 그대로 작곡된 첫 노래일 것이다. 합창곡 <쪽빛의 노래>는 그 해 4월 “세월호 참사 3주년 기억식”에서 이소선합창단이 초연되었다. 


얼마 뒤, 임정현 선배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쪽빛의 노래>가 워낙 특별한 작업이어서 좀 더 발전시키고 싶은데, 백기완 선생님께 부탁드려 가사를 10편 쯤 더 받아서 칸타타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백기완 선생님의 언어를 살려 음악을 만드는 작업이 의미 있게 다가왔고,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 함께 해보자고 했다. 6월 하순 경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님, 임정현 선배와 함께 백기완 선생님을 직접 찾아뵙고 작품에 대해 제안을 드리고 허락도 받았다.


10월 말, 백기완 선생님의 새로운 글 10편이 <갯비나리>라는 제목 아래 완성되었다. 선생님을 찾아뵙고, 프린트된 글을 직접 받았다. 음..., <쪽빛의 노래> 한 곡은 그래도 온전히 작곡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길고 복잡한 시 10편을 다루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노래하기는 불가능한 글이어서 각색이 불가피했다. 이수호 이사장님이 작품 준비를 함께 해 주시기로 했고, 각색과 연출에 이동선, 기획으로 서우영, 이종수 등이 모여 팀을 꾸렸다. 

이동선 연출은 작품을 재구성하고 백기완 선생님의 말투를 최대한 살려 각색을 했다. 각색 대본은 ‘정리된 백기완의 글’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기획팀은 이듬해인 2018년 봄에 공연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고, 나는 1월 초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작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 작업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획팀에 작곡하는데 1년 이상 필요하다고 알렸고, 공연을 2019년에 하기로 결정했다. 


<갯비나리> 작곡은 지옥 같은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라는 작품의 주제 자체가 나를 짓눌렀고, 백기완 선생님의 언어를 감당해 내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방학이면서 공연계의 비수기인 1~2월에는 그나마 작업 속도가 빨랐는데도 첫 곡 <말하라>의 보컬 스코어(피아노 반주 악보) 완성에 6주, 여덟 번째 <날아라 장산곶매야>와 두 번째 <노오란 종이배> 등 두 곡을 환성하는데 한 달 정도 걸렸다. 3월부터는 작곡 속도가 더 느려졌는데, 특히 세 번째 곡 <바닷속 재판>은 작곡에 3개월을 들였다. 그렇게 1년 이상을 들여 가까스로 보컬 스코어를 완성했다.  


우리는 공연 제목을 창작음악극 <쪽빛의 노래>로 결정했다. <갯비나리>를 원작으로 하는 합창음악극 형태이다. 기획팀은 제작비 조달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 지자체와 지역 문예회관 제작 협조, 각종 기금과 기업 후원 등 다방면으로 알아봤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거운 주제와 무거운 언어가 최근 트렌드에 맞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 공연은 2019년 5월로 결정되었고, 지휘자로 유세종 선배가 합류했다. 나는 최종 오케스트레이션을 도저히 공연 날짜에 맞출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생전 처음 오케스트레이션 도와줄 사람을 구했다. 작곡마당에서 오래 전에 인연을 맺은 젊은 작곡가 송낙호에게 부탁했다.  

12월에 들어가면서 마지막 곡과 <노오란 종이배> 수정 작업만을 남기고 있었다. 우리는 4곡 정도를 발췌하여 1월에 실내악 반주로 선보임공연(시연회)을 열기로 결정했고, 나는 최종 작업을 미루고 선보임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마지막 곡이 계속 고민이었는데,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결정할 수가 없어서, 선보임공연을 마친 뒤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2019년1월26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쪽빛의 노래> 선보임공연이 열렸다. 합창과 6명의 솔리스트, 그리고 실내악 반주는 피아노와 대금, 해금, 피리, 타악기 등으로 구성했다. 관객들은 다시금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와 슬픔의 뜨거운 감정을 불러내었고, 한편으론 거칠고 날 선 언어에 대한 거부감 등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내가 선보임공연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마지막 곡을 어떻게 써야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전해 주고자 하는 지가 명확해졌다. 절망적인 고통과 분노로 채워진 노래들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놓지 않도록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선보임공연을 통해 얻은 것들을 종합해 마지막 곡 <새 생명의 꿈이여>를 드디어 완성했다. 

그리고 본 공연 포스터를 인쇄하기 직전, 우리는 이 작품의 제목을 “세월호 레퀴엠 <쪽빛의 노래>”로 확정했다. “죽은 자들을 추모하는 레퀴엠이 아닌, 산 자들의 평화를 구하는 레퀴엠.” 처음부터 출발은 그곳이었지만, “진혼곡”, “위혼곡” 등의 번역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선뜻 레퀴엠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못했는데, 마지막 순간, 제작진 모두가 레퀴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자신 있게 제목으로 삼았다.    












▶ 세월호 레퀴엠 <쪽빛의 노래>


말하라 

노오란 종이배

바닷속 재판

졸음에 밀리면 안 된대요

쇳소리의 모뽀리

그리움으로 새긴 그림

너는 말했다

날아라 장산곶매야

새 생명의 꿈이여

(앵콜 곡) 쪽빛의 노래




본 공연은 2019년5월24일과 25일, KBS홀에서 열렸다. 애초에 칸타타 형식으로 계획을 했으나, 백기완 선생님의 칼날 같은 언어와 그에 부응하는 나의 어려운 음악 어법이 일반 대중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자신이 없었기에, 드라마를 결합한 ‘음악극’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음악극’을 만들 수 있는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음악을 중심으로 약간의 극적 장면이 삽입되어, 변형된 오라토리오 정도의 형태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공연이 도리어 음악 자체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공연을 통해 극을 더욱 더 가볍게 하고 음악에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공연에 함께 참여 연주자들도, 많은 관객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용기를 얻었다. 

백기완 선생님은 그 사이에 건강이 자꾸 나빠지셔서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공연을 보러 오실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다행히 백기완 선생님은 공연 즈음에 기운을 차리셨고, 공연장을 찾아오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공연이 끝나자 일어서서 박수를 치셨다고 했다. 공연장 밖으로 나오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자, “이렇게 큰 규모의 공연을 준비하는 줄은 몰랐다”며 놀라와 하셨고, 공연 내용에 대해서도 크게 만족하셨다. 

공연은 무사히 잘 치렀으나, 제작에 참여한 많은 주역들이 건강과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다. <쪽빛의 노래> 제작팀의 목표는 이 작품을 매년 공연하는 것이었다. 초연을 통해 음악 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충분히 다가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고, 꾸준히 공연해 나가면서 세월호 사건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제작진의 희생도 다시 회복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했다. 공연 후에도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한 끝에 2020년 공연 기회를 얻었다. 제작비 지원 등과 관련해서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우선 공연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재공연을 추진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 전염병이 크게 확산되기 시작하여, 공연이 몇 차례 연기되다가 결국 취소되어 버렸다. 코로나 상황은 개선되지 못하고 <쪽빛의 노래>가 다시 무대에 오를 날은 기약이 없다. 


백기완 선생님은 점점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시게 되었다. 선생님의 건강 상태나 코로나19 상황은 병문안도 갈 수 없게 만들었다. SNS를 통해서 간간이 백기완 선생님의 소식을 접했다. 

2021년2월15일, 백기완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선생님의 건강 상태는 계속 불안했지만, 막상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니 참담했다. 선생님과 함께 우리 현대사의 한 시대가 마감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만 “백기완”이라는 이름을 바라보다가, 50대가 되어서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작품을 같이 하면서 정말 큰 도전도 받고 또 많이 배우기도 했다. 늦게나마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우리 민족을 위해 온 몸으로 살아오신 선생님, 이제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아티스트 소개


백기완 작가.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치셨고,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많은 책을 쓰셨다. 달동네, 동아리, 모듬 등 우리말 쓰기에도 기여를 많이 하셨다. 나는 세월호 레퀴엠 <쪽빛의 노래>를 통해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다.  


임정현 성악가, 합창지휘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폴란드 쇼팽 아카데미 디플롬, 이탈리아 로마 A.R.A.M. 디플롬. 이탈리아 브린디시 국제콩쿨 입상. 현재 핌아트협동조합 이사장, 이소선합창단 지휘자. 세월호 레퀴엠 <쪽빛의 노래>를 기획, 제작했다. 




세월호 레퀴엠 <쪽빛의 노래> 초연 전곡은 10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 보시기 어려우신 분은 아래 8번 "날아라 장산곶 매야"와 9번 "새 생명의 꿈이여"를 추천드립니다. 


또는 1번 - 8번 - 9번, 또는 1번 -5번 - 8번 - 9번, 이렇게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https://youtu.be/3F-ZKlwnUzE

"쪽빛의 노래" 8. 날아라 장산곶 매야

https://youtu.be/nW2-Ajfjty0

"쪽빛의 노래" 9. 새 생명의 꿈이여




세월호 레퀴엠 <쪽빛의 노래> 전곡 실황 링크


https://youtu.be/UF69EA9sXaM

1. 말하라


https://youtu.be/YrmVSaRMBds

2. 노오란 종이배


https://youtu.be/m7vRnNdosjI

3. 바닷속 재판


https://youtu.be/0-XIb8P1bpg

4. 졸음에 밀리면 안 된대요


https://youtu.be/An9tpsLSoxE

5. 쇳소리의 모뽀리


https://youtu.be/XLsAp3u1MyQ

6. 그리움으로 새긴 그림


https://youtu.be/dPc-4IICTV8

7. 너는 말했다


https://youtu.be/3F-ZKlwnUzE

8. 날아라 장산곶 매야


https://youtu.be/nW2-Ajfjty0

9. 새 생명의 꿈이여


https://youtu.be/ucXUrqrdV1A

에필로그: 쪽빛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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