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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Mar 01. 2021

감정 표현

해금과 현악4중주를 위한 음악

나는 일상의 소소한 이미지를 음악에 담는 데 관심이 많고, 그것이 내 창작의 동력이 된다. 어린 시절에는 음악이라고 하면 뭔가 심오하고 추상적이고 깊이 있는 숭고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가면서 비현실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보다 주변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구체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일이 내게 더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작곡을 할 때 떠올리는 일상의 이미지에는 어린 시절 생활 속에서 가졌던 느낌과 연관된 것이 많다. 해금과 현악4중주를 위한 <감정표현> 역시 1970년대 내 어린 시절의 감정들을 되살린 정서를 담은 작품이다. 


일상 속에서 감정 표현이 서툰 나는 피아노를 배울 때나 연주 연습을 할 때 ‘감정 표현’이라는 말을 많이 듣곤 했다. 내 경우, 최근에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 되었기 때문에 ‘감정 표현’이라는 말이 조금 옛날 식 어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고 있다. <감정 표현>이라는 곡의 제목은 음악 공부할 시기의 경험과 더불어 내 어린 시절 따뜻함을 느꼈을 때의 정서를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이 곡은 내게 묘한 느낌을 준다. 곡 중간 부분에 대위법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고전적인 클래식 음악과 해금 가락을 결합시킨 것인데, 곡을 완성하고 보니 학창 시절 즐겨 듣던 베토벤의 현악4중주가 연상되기도 하고, 서울 변두리 주택가의 조금 촌스러우면서도 정겨운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감정 표현>이라는 제목은 내가 이 곡에서 느끼는 복합적인 정서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제목이다. 


이 곡은 편성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일종의 크로스 오버 음악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장르화 된 음악을 작곡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내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 오고 대학에서 공부까지 했던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클래식 음악의 전형성에서 멀어져 왔고, 나 스스로 다양한 기법의 음악을 꾸준히 작곡해 가다 보니 기법에서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크로스 오버가 갖는 가능성에 늘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은 크로스 오버도 결국 하나의 장르로 굳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하지만, 여전히 탈장르 음악으로의 다양한 길은 매력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크로스 오버의 방법은 주로 텍스추어(texture; 짜임새)와 관련되어 있다. 특히 국악기와 서양악기와 같이 서로 심하게 이질적인 악기들이 결합되는 경우에는 단순하게 음색적인 결합을 추구하기보다는 악기들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만들어내는 텍스추어를 조절하면서 각 악기들의 선적인 움직임이 다른 악기들의 움직임 사이사이로 파고 들게 만들어 마치 씨줄과 날줄로 옷감을 짜듯이 조직한다. 이런 식으로 각 악기의 흐름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모이도록 하는 것이다.  

해금과 현악4중주를 위한 이 곡도 전체적으로 몇 가지 텍스추어가 서로 교차되게끔 작곡되어 있다. 해금은 현악4중주가 연주하는 화음 위에 얹혀 살며시 떠오르거나 현악4중주의 대위법적 흐름 사이에 파고들어 함께 뒤엉키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을 바탕으로 훈련된 작곡가가 크로스 오버 음악으로 향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정표현> 함께 쌍둥이 작품으로 작곡했던 <창 밖 세상을 바라보며>이라는 곡은 좀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면서 작곡했다. 어린 시절 15년 동안 살았던 우리 집이 있던 곳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양옥집이 드문드문 지어져 있고 온 동네가 집이 지어지지 않은 채 집터로 구역이 나뉘어 정리되어 있던 산동네였다. 내 방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동네 전체가 굽어보였고 동네 끝으로 산이 이어져 있었다. 우리 집 맞은편으로는 집이 한 채도 지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망이 탁 트였다. 맑은 날 점심시간 즈음에 창밖으로 동네 한 편에 있던 구멍가게 쪽을 내다보면, 가게 앞에 내 놓은 평상에 동네 아주머니들이나 할머니들이 몇 분 앉아 있는 것이 보이기도 했고, 사람이 없어도 가게 앞 풍경이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이었다. 공부하다 지치면 나는 “창 밖 세상을 내다보며” 나른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얻곤 했다.      

해금연주가 강은일

해금 디바라 불리는 국악계의 스타 연주가인 강은일은 민족음악연구회를 통해 인연을 맺었고, 적지 않은 작업을 함께 했다. 2003년에는 강은일과 2가지 작업을 했는데, 그의 첫 음반 <오래된 미래> 수록곡 중 <낡은 마루바닥>과 <라다끄의 여인> 등 2곡을 내가 작곡했고, 작곡마당의 첫 앨범 <장르의 벽을 넘어서> 수록곡 중에서 내가 작곡한 <감정표현>과 <창 밖 세상을 바라보며> 등 2곡을 강은일이 녹음했다. 그 당시에 강은일과 나는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기에, 서로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두 앨범 작업을 했었고, 두 앨범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발휘했다.            




강은일

해금 연주가. 단국대학교 교수, 서울 돈화문국악당 예술감독. 민족음악연구회를 통해 알게 되어 음반 작업과 공연 등을 함께 했다. 강은일 1집 <오래된 미래>, 작곡마당 첫 작품집 <장르의 벽을 넘어서> 등 음반과 <강은일의 해금 플러스> 공연 등에 서로 참여했다.      




https://youtu.be/E-Y6Q0mtKhQ

신동일 해금과 현악4중주를 위한 "감정 표현"



"감정 표현"과 "창 밖 세상을 바라보며" 두 곡 모두 디지털 앨범으로 발표되어 있습니다. 


https://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10041481


https://www.genie.co.kr/detail/albumInfo?axnm=80925257


https://music.bugs.co.kr/album/20083557?wl_ref=list_ab_03


그 외 여러 음원 사이트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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