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그리는 실향민의 노래
2004년 초, 대전에 산다는 분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실향민인 자신의 아버지가 고향 생각을 하면서 “댕구지 아리랑”이라는 가사 썼고, 그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실향민의 마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게 부친의 꿈이라고 했다. 그러나 작곡가를 찾기가 쉽지도 않고, 작곡료도 비싸고 기회를 만들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나에게 가사를 읽어보고 가능하다면 작곡을 해 달라는 내용이었고, 좋은 가사이니 적당한 기회가 닿으면 작곡하겠다고 답을 했다. 아마도 인터넷 검색하면서 작곡마당 홈페이지를 통해서 알고 연락을 준 것 같았다.
“댕구지”는 글을 쓴 최성근 할아버님의 고향으로, 황해도 연백군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고 한다. “댕구지 아리랑” 가사는 고향을 잃은 사람의 마음이 깊이 담겨, 절절한 그리움이 진하게 표현되어 있다. 발표할 만한 기회가 생기면 곡을 붙여 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집> 공연 이후 경제적으로 혹독한 시기를 겪고 있어서 쉽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듬해 서울국악관현악단에서 준비하는 “신가악” 연주회에서 발표할 작품을 위촉받았다. 조건은 1990년 이후에 쓰여진 시를 가사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댕구지 아리랑>을 발표하기에 적절한 기회라고 판단하여 흔쾌히 위촉을 받아들였고, 이 노래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 동안은 처음 이메일을 주셨던 아드님과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10월 쯤 작사자인 최성근 님이 직접 편지를 보내주셨다. 감사하다는 뜻과 함께 자신의 마음과 댕구지 마을에 대한 이런 저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편지 전문을 소개한다.
“저의 고향은 황해도 연백군 벽촌에 있는 ‘댕구지’ 마을입니다. 저는 중학교 5학년이었던 17살 때까지 부모님 슬하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재미있게 ‘댕구지’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5년 전인 1950년(6.25전쟁), 저는 아름다운 가정을 잃었습니다. 다정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하늘 같은 아버지, 어머니와 생이별을 했습니다. 저는 사고무친한 거치른 ‘남한땅’에서 무의무탁의 알몸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이제 배고픔 고생, 추운 고생, 세상 살이 고생은 그런대로 면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에 대한 마음 아픈 나날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해만 갑니다. 저는 늙어가는 부모님의 안타까운 모습을 55년 2만날을 하루도 빠짐없이, 또 하루에도 열 번, 스무번씩이나 그리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 자식이 ‘못된 놈’이 되어 ‘사람 구실’ 못할까 하는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하였겠습니까. 또 이 자식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였겠습니까. 저는 지금 당장 부모님을 찾아가서 큰 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원혼이 되어 고향 ‘댕구지 하늘’을 이리 저리 맴 돌면서 지금도 이 자식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에게 갈 수가 없습니다. 강화도 교동 섬에서 불과 백리길도 안 되는 지척에 ‘댕구지 마을’이 있건만... 저의 이러한 안타까운 마음을 보탬도 뺌도 없이 쓴 것이 <댕구지 아리랑>입니다.
지금 신 선생님께서 제가 쓴 이 <댕구지 아리랑> 가사에 힘을 들여 곡을 만드신다고 합니다. 이 <댕구지 아리랑> 노래가락을 온 세상 사람들이 목청 높혀 힘껏 불러 저 세상에 계실 저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의 귀에까지 들릴 수만 있다면...
신 선생님께서 저의 한을 풀어주셨습니다. 건투를 바랍니다."
편지를 받고 마음이 저려왔다. 필사 악보를 완성한 뒤 복사해서 한 부 보내드렸다. 최성근 님께서 “생각보다 장중한 대곡을 써 주셨다"고 매우 기뻐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댕구지 아리랑>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최성근 작사 / 신동일 작곡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댕구지”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너머 갈 수 없는 곳
그리운 내 고향 “댕구지” 있소
1. 고향 부모 생이별 벌써 오십년
헤어질 때 홍안소년 백발 되었소.
내 목숨 다 되어 저승 갈 때면
부모님 계신 곳 찾아 가리라.
전쟁도, 이별도 다시없는 곳
그 옛날 뛰놀던 댕구지에서처럼
부모님 다시 만나 따스한 손 맞잡고
천년만년 행복하게 모시고 싶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댕구지”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너머 갈 수 없는 곳
그리운 내 고향 “댕구지” 있소
2. 어머니 가슴속은 소금 되었고
아버지 가슴속은 재가 됐겠소.
하나밖에 없는 자식 보지 못하고
정화수 물그릇만 달았으리라.
기다림도, 그리움도 다시없는 곳
그 옛날 뛰놀던 댕구지에서처럼
부모님 다시 만나 찰밥 지어드리며
천년만년 행복하게 모시고 싶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댕구지”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너머 갈 수 없는 곳
그리운 내 고향 “댕구지” 있소
3. 오십년 흘린 눈물 그 얼마던가
그래도 남은 눈물 한없이 솟소.
이 자식 눈물은 강물 되어 흐르고
부모님 눈물은 바다 되어 넘치리라.
슬픔도, 괴로움도 다시없는 곳
그 옛날 뛰놀던 댕구지에서처럼
부모님 다시 만나 즐거이 웃으며
천년만년 행복하게 모시고 싶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댕구지”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너머 갈 수 없는 곳
그리운 내 고향 “댕구지” 있소
<댕구지 아리랑>은 2005년 12월 국립국악원에서 바리톤 박태영의 노래와 김성경이 지휘하는 서울국악관현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최성근 님과 가족 분들도 공연 날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이후에도 피아노 반주 등 여러가지 편성으로 고쳐서 기회가 될 때마다 연주를 했다. 최성근 님 가족은 때때로 연락을 주셔서 매년 만남을 가지면서 인연을 이어갔다.
이렇게 노래를 만들고 나니, 음반이 아쉬운 일이다. 나에게 이 노래를 포함한 음반 제작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최성근 님 가족의 오랜 고민 끝에, 자제분들 삼형제가 일을 도모하여 2009년 비매품으로 음반을 내놓았다.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을 갖고 있던 최성근 님의 아내 박인자 할머님께서 노래를 했고, 대중가요 작곡가에게도 부탁하여 <슬픈 댕구지>라는 노래를 하나 더 넣어서 전체적으로 트로트 음악 스타일의 음반으로 만든 것이다.
최성근 님은 이 음반을 원하는 분들에게 무료로 발송해 주곤 했다. 이 일이 알려져 몇 년 뒤 어버이날에 여러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몇 년 뒤, 최성근 님은 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2014년 초, 케이블 TV 음악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 최성근 님을 초대해서 <댕구지 아리랑>을 소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연락을 준 작가 분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아드님을 연결해 주었다. 몇 달 뒤 방송에서 병상에 누운 최성근 님의 사연이 소개되었고, 아내 박인자 님이 <댕구지 아리랑>을 불렀다. 방송 직후 작가가 케이블TV “분 당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며 신이 나서 문자를 보내왔다. <댕구지 아리랑>이 한걸음 한걸음 성장해 온 자취가 대견했다.
이듬해 2015년 최성근 님은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https://soundcloud.com/n6ngh9tvp6n6/go6walmchn5q
"댕구지 아리랑" 소리꾼+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