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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Mar 22. 2021

작곡마당 이야기 (2)

장르와 전공을 초월한 작곡가들의 모임

장르와 전공을 초월한 작곡가들의 모임 "작곡마당"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습니다. 작곡마당이 20년 동안 성장해 온 이야기를 몇 편에 걸쳐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지난 1편에서 작곡마당 창립 즈음의 이야기에 이어, 그 동안 작곡마당에 참여했던 인상적인 작곡가들에 대해 소개합니다. 


"작곡마당 이야기 (1)"을 안 읽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통해 같이 보셔도 좋겠습니다. 

https://brunch.co.kr/@f314b41122b2406/28 




작곡마당을 20년 동안 이어오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작곡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혼자 힘으로 작곡을 해 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중음악계는 오래 전부터 작곡이나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음악가들이 주로 활동을 해 왔다. 그러나 대중음악 이외의 영역에서 작곡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써온 사람들은 작곡마당 이전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작곡마당은 숨어 있던 비전공 작곡가들의 열정을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인상적이었던 작곡가들을 기억해 본다. 



디자이너였던 이주노 님은 어린시절부터 미술과 작곡을 병행했다고 한다. 작곡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고,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작곡을 하는데, 대단히 독특한 음악적 상상력을 지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휘파람에도 관심이 많아서 국내 최대 휘파람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휘파람을 위한 난이도 높은 곡을 작곡해서 발표한 적도 있다. 지금은 미술학원 원장님이다.  


현재 광주에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규 님은 고등학교 때 작곡마당의 문을 두드리고, 제2회 신동일의 작곡마당부터 참여했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기에, 모든 회원 작곡가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았다. 그가 처음 들고 온 피아노 곡이 너무 마음에 들어 내가 가장 신뢰하던 피아니스트 한봉예 선배에게 특별히 연주를 부탁해 기막힌 무대를 만들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작곡마당 무대에 작품을 올렸는데, 매번 발전을 거듭해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대가의 느낌을 받을 정도의 작품을 발표했다. 작곡과 진학을 희망했던 이승규 님은 입시 공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이공계로 진학했다가 군에 입대한 뒤 연락이 끊어졌다. 그리고 10년 후 어느날, 작곡마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그의 글이 올라왔다. 20대 내내 방황했는데,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30살의 이승규는 다시금 작곡마당 무대에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고, 꾸준한 노력 끝에 지금은 광주광역시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곡가로 성장했고, 2018년에는 광주작곡마당을 창립하기에 이른다. 

    

경제학도였던 박수형 님은 몇몇 회사에 근무하다가 지금은 경제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작곡마당 홈페이지에 자기 작품을 소개하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조용하게 자기가 작곡한 작품의 음원만 소개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회원이었다. 당시에는 충북 음성에 살고 있다고 들었다. 주로 피아노 곡을 소개했는데, 드뷔시를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대단히 세련된 작품들이었다. 작곡마당 홈페에지에서 10여년을 조용하게 활동하던 그가 어느 날 작품을 연주하고 싶다며 현실에 등장했다. 그는 악보도 못 그리고, 피아노도 전혀 연주하지 못해서, 컴퓨터로 음원을 만들어서 작곡마당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드뷔시 스타일을 완전하게 소화한 수준 높은 작품을 작곡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작품 빌표를 위해 컴퓨터로 만들었던 음원 데이터를 바탕으로 출력한 악보 교정을 도와주고 피아니스트도 소개해 주었는데, 처음하는 공연인데다 성격도 매우 내성적이어서 연주 준비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는 첫 작품 발표 후 뒤풀이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의 이야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프랑스에 혼자 여행을 가서 드뷔시가 산책했다던 곳도 걸어보고 드뷔시가 앉았었다는 벤치에도 앉아보았다고 할 정도로 드뷔시 음악에 깊이 매료된 사람이었다. 한번 발걸음을 떼니 자신감이 생겼는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의 작품 중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진정한 케인즈주의자>라는 제목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이었다. 음악 활동을 해 오면서 여러 가지 소재를 가진 작품들을 봐왔지만, 경제학을 테마로 작곡한 음악은 처음 보았다.       


은행원이었던 김재덕 님은 지금은 작곡마당 활동을 하지 않지만, 몇 차례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들을 선보였고, 음악과 작곡에 대한 대단히 진지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작곡가였는데,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니 안부가 궁금하다. 


안부가 궁금한 또 한 사람, 김형수 님은 작곡마당에서 활동할 당시 철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었는데, 피아노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나중에는 작곡마당 회원들 중에 자기 작품을 직접 연주하는 작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소모임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작은 음악회도 하는 등 열심히 활동했다. 

비교적 최근에 인연이 되었던 임현묵 님은 작곡보다 피아노 연주에 주력했던 공학도였는데 대단히 독특한 개성을 가졌다. 중학교 때부터 보통 현대음악이라고 하는 20세기 이후의 작곡가들과 우리나라 창작 음악에 관심을 갖고, 현대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현대음악 전문 블로그도 운영하고,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와 작품을 꾸준히 소개하고 잊혀진 작품들을 발굴해 연주하기도 하는 등 특별한 작업을 해 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음악 기획가를 꿈꾸며 일본으로 예술경영 대학원에 진학했다. 작곡마당에서 2번 정도 특별 무대를 만들어 일본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했는데, 연주 자체도 훌륭했거나와 연주하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관객과 회원 작곡가들에게 크게 주목 받았다.    


2006년 즈음에 몇 차례 작품을 발표했던 이준학 님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모교에서 강의하는 군인이었다. 작곡하는 군인은 처음 만났다. 


영문학을 전공한 회사원 김동빈 님은 작곡과 피아노 연주에 관심을 갖고 자기 작품을 직접 연주하곤 했는데, 매우 낭만적이고 달콤한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공대생으로 현대음악에 관심을 많이 보였던 서승주 님, 이상빈 님은 전공이나 외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각자 개성이 강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두 사람 모두 자신 만의 철학이 뚜렷해서 자기 자신과 작품을 소개할 때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기억에 남는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독특한 영상과 함께 유투브 활동을 하던 김동호 님은 대학 졸업 후 전문적인 유투브 영상 제작회사를 설립하고 남다른 스타일의 영상과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충청북도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서년 님은 아주 최근에 인연이 된 분인데, 가곡 등 노래 곡에 특히 관심이 많고 상당히 대중성 있는 노래를 작곡하고 있다. 제도권 진입을 목표로 공모전에 종종 도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추어 작곡가로 입상하기는 쉽지 않은 듯 하다. 대신 성악가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들을 작곡하고 있어서 연주 기회가 점점 많아져 용기를 얻고 있다. 


내 제자 중에 작곡마당 무대에서 작품을 발표한 경우 중 좀 특별한 작곡가는 디자인을 전공한 김희원 님과 서울교대 대학원에서 만났던 초등학교 교사 진혜원 님을 들 수 있다. 내 수업을 듣기 전까지 작곡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김희원 님은 아름답고 개성 있는 목소리를 갖고 있고, 우쿠렐레를 연주하면서 자기가 작곡한 예쁜 노래를 불러주었다. 진혜원 님은 서울교육대학교 대학원에서 만났던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났던 몇 선생님에 손꼽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오카리나 연주에 몰두하면서 단체를 만들어 연주활동도 했었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교사의 환경이 반영된 것이 아니었을까. 인상적인 오카리나 앙상블 작품을 발표했었다.     



또 다른 한 그룹을 소개하자면, 작곡이 아닌 다른 일을 하다가 결국 작곡을 하게되어 꿈을 이뤄간 사람들이 있다. 


제1회 신동일의 작곡마당부터 결합하여 지금까지 작곡마당의 핵심적인 회원으로 인연을 이어온 작곡가 김정희 님은 공과대학을 중퇴하고 노동운동을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국악과에 편입하여 한국음악학 박사학위까지 얻은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특히 민요 연구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2007년 그의 제안으로 작곡마당에서 토속민요 공부를 시작하여 이를 바탕으로 작곡한 작품들을 모아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라는 시리즈 음악회를 5년 동안 진행했는데, 작곡마당의 기획 공연 중 음악계로부터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았던 작업이었다.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다가 영국으로 떠나 재즈 공부를 한 뒤,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에 감명을 받아 현대음악 작곡으로 대학원을 2군데 다니고, 국내에서 한국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는 미국에서 전자음악으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이종찬도 작곡마당 초창기에 인연이 되었다. 재즈 스타일이 스며들어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환상곡 느낌이 나는 개성 있는 작품을 꾸준히 작곡해 온 그는 한국음악과 영어에도 관심이 많아서 해외에 우리 음악을 소개하는 번역 일도 적잖이 했고,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작곡마당 초기에 KAMA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 분이 작곡마당의 문을 두드렸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여러 가지 퍼포먼스와 특이한 의상과 실험적인 음악 등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분인데, 지금은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했던 송기영 님은 미국 유학 가서 대학원을 작곡 전공으로 마쳤다. 음악을 하려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귀국했지만, 학부에 인연이 없었던 탓인지 작곡 관련 일을 하거나 음악 활동을 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어찌하여 작곡마당을 찾아왔다. 리코더 음악에 관심이 많던 그는 작곡마당에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어린이 음악에 관심을 가진 회원 작곡가들이 만든 소모임 “아이기 뮤직”에 합류하여 음반, 악보, 기획 공연 등을 통해 자신의 활동 영역을 찾아가고 있다. 자작곡만으로 구성한 리코더 작품집 악보를 출간하기도 했다. 


음악 중에서 작곡이 아닌, 연주를 전공하고 작곡 활동을 했던 작곡가 중 김연선 님과 이지은 님이 있다. 김연선 님은 피아노 전공, 이지은 님은 바이올린 전공이다. 피이나스트답게 화려한 피아노 작품 등을 선보였던 김연선 님은 작곡마당 활동을 하다가 결국 작곡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이지은 님은 클래식과 재즈를 두루 섭렵한 남편과 함께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번 글에서는 작곡마당의 연혁과 기억에 남는 공연들을 정리해 보려고 했는데, 그 동안 거쳐간 작곡가들이 계속 떠올라 그 동안 작곡마당 무대를 거쳐간 작곡가들을 소개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작곡마당의 힘은 다양한 이력을 가진 개성있는 작곡가들의 에너지가 모여 만들어졌다고 생각된다. 다음 글에서는 작곡을 전공한 작곡가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2014년 제10회 포럼작곡마당에서 발표했던 저의 노래 3곡을 소개합니다. 


https://youtu.be/dn8z32U1dwA

신동일 "어제보다 진한 오늘"(작사: 이현수)


https://youtu.be/ayfkls2Mijc

신동일 "당신이 있어요" (작사: 이현수)


https://youtu.be/xKKCoBIot-g

신동일 "그대가 있으면" (작사: 임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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