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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Jul 02. 2021

어머니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에세이집 "바람을 타고" 출간

어머니와 함께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화가로 활동하시다가 미국 이민 후 은퇴 전까지 생활인으로 열심히 살아가시고, 지금은 다시 뉴저지 화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미주 한인 신문에 컬럼을 쓰신 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건강이 악화되시면서 외부 기고는 그만 두셨습니다. 블로그에는 한 달에 두번 글 올리시는 것을 목표로 꾸준히 써오셨고, 좋은 글들이 많이 쌓여 책으로 묶어 내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의 추억과 이민 생활 이야기, 온갖 병고를 극복하며 의사들로부터 "뉴저지 기적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으실 정도로 특별한 삶을 살아오신 "아픈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실었습니다.  


추천 글 삼아 제가 뒤표지에 올린 짧은 글을 소개합니다.


어머니와 나는, 어머니의 글을 연재하는 블로그 ‘주 앙’을 약 8년 동안 함께 운영해 왔다. 항상 내 일에만 빠져 있어 가족과도 이야기를 잘 안 나누는 나에게 ‘주 앙’ 블로그는, 멀리 이국땅에 계신 어머니와의 소통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서울과 뉴저지, 수만리 떨어져 지낸 시간이 20년이 훌쩍 넘어,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어머니가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또 어떻게 생활하시는지도 알 수 있는 편지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시작했던 ‘주 앙’ 블로그는 어느새 꾸준히 성장하여 새 글이 올라오면 항상 찾아와 댓글로 소통하는 고정 팬들이 모여들었다. 그분들은 어머니가 살아오신 특별한 삶을 느끼고, 공감하고, 흐르는 세월을 함께 추억하기도 하면서 ‘주 앙’ 블로그를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세상을 보는 독특한 관점, 위기에 대처하는 담대한 태도, 세대를 뛰어넘는 열린 생각이 담긴 어머니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상상하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8년 동안 빛나는 글을 써 오신 내 어머니에게 박수와 응원, 그리고 사랑을 보내드린다. (작곡가 신동일) 



책에 실린 글 중에서 한 편 소개합니다. 



쿠퍼(Cooper) 선교사와 어머니     


글: 주 앙


예배를 마치고 친교실로 향했다. 친교실 창가는 볕이 잘 들고 아늑한 자리다. 그곳은 시니어반 ‘사랑선교회’ 회원들의 좌석이다. 그런데 오늘은 사랑선교회 분위기가 좀 어수선한 것 같았다. 모두들 손에 꼭 잡히는 크기의 책들을 펴들고 있었다. J 권사님이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셨다.

권사님은 요즘 눈이 아프셔서 책을 읽을 수 없으니, 나에게 먼저 읽으라며 자신의 책을 건네주셨다. 무심코 책을 받아든 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아니 이 책을 어떻게?…”, “아, 우리 반 담임 목사님이 한국 방문했다가 교단에서 이 책을 많이 줘서 우리 선교회만 선물한 거예요.” J 권사님의 자랑스러운 대답이셨다.     

케이트 쿠퍼(Kate Cooper)의 『한국에 온 그리스도의 대사』, 권사님으로부터 건네받은 책이었다. 오랜 세월, 까맣게 잊었던 이름이다. ‘쿠퍼’… 한국 이름은 ‘거포계’. 그 이름과 함께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나의 ‘어머니’…. 눈물 같은 그리움의 결정체인 바로 그 이름이다. 아주 먼 옛날, 하나님은 나의 어머니와 ‘쿠퍼’ 목사님의 신비한 만남을 연출하셨다. 그 사건의 현장을 벅찬 가슴으로 더듬어 가 보기로 한다.     

‘케이트 쿠퍼’, 그녀는 1886년 6월 미국 조지아주 더글러스 빌에서 태어났다. 신앙 깊은 부모의 신실한 영적 지도 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지방 판사였으며, 많은 농토를 지닌 부유한 집안이었다. 아무 어려움이 없이 자라난 ‘케이트’, 그녀는 어떻게 그 옛날에 선교사의 꿈을 품게 되었을까?


케이트가 19세에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부흥 집회에 참석하여 불같이 뜨거운 성령 체험과 거듭남의 순간을 겪게 된다. 그는 주님의 일꾼으로 콜링(calling)을 받고 주저함 없이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결단하게 된다. 그 후 교사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진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면서 철저하게 선교사 준비 훈련을 하게 된다. 드디어 1908년 10월 22일, 케이트는 미국 남감리교 교단에서 선교사로 임명받고 오지의 땅 한국으로 선교사 파송을 받아 부산항으로 입국했다. 그리고 그녀는 해수욕장 ‘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선교지로 부임하여, 원산 보혜여자관을 중심으로 여성을 위한 선교, 교육, 계몽, 사업에 헌신적인 사역을 펼쳐 나갔다. 그때 그녀는 약관의 나이 22세, 아름다운 처녀였다. 당시의 척박한 선교 현장에서,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선교 활동을 어찌 다 감당했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다 송연해질 정도로 처연함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용사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고스란히 감내했으며, 6.25 한국전쟁 때는 본국으로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국을 마다하고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제일 가까운 일본으로 건너가 전쟁을 추이 살펴 다시 입국의 기회를 모색했던 ‘케이트 쿠퍼’ 선교사. 그렇게 핏빛으로 물들었던 한국 근대사의 한가운데서 그림자처럼 50년간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아낌없이 불살랐던 ‘쿠퍼’ 선교사의 삶이었다. 그녀의 50년 사역을 어찌 다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1957년 쿠퍼 선교사는 은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분은 오랜 세월 한복만 입어서, 양복 입는 방법을 잊어버려 얼마간을 어려웠다고 한다. 그 일화는 ‘쿠퍼’ 목사를 압축해서 표현한다.  

   

어머니…. 나의 엄마는 동해안 북쪽으로 관동팔경의 ‘총석정’이 있는 통천군 근저에서 태어났다. 유교적이고 봉건적인 가정에서 엄하게 자라면서 사춘기를 맞았다. 엄마는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형으로 게다가 명석한 두뇌를 지닌 매력 만점의 처녀였다고 한다. 어느 날 소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양코쟁이’ 처녀를 멀리서나마 직접 보게 되었다. “예이슈 믿으세요… 예이슈 믿으세요.” 금발의 이국 처녀는 이상한 발음으로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고 다녔다. 엄마는 호기심이 불붙듯이 일어났다. 도대체 예수가 뭐기에 저 외국 여자는 겁도 없이 저러고 다니는 걸까? 멀찌감치 떨어져 몰래 숨어 가는 듯 파란 눈을 따라갔다. 한참을 지나 골목길에서 파란 눈은 사라졌다. 주춤주춤 두리번거리는데, 골목 사이로 파란 눈이 나타나서 엄마는 그만 들키고 말았다. 두 사람은 숨바꼭질을 한 셈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쿠퍼 선교사는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의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환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엄마는 스펀지처럼 흡인력 있게 복음을 빨아들였고, 소프라노 음성이 뛰어나 찬송을 부를 때 쿠퍼 선교사는 탄성을 지르곤 했다고 한다. 쿠퍼 목사는 엄마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며 원산에 있는 ‘루씨학당’(여고)에 입학하기를 권했고 당신의 수제자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엄마의 집안에서 이 일을 들키고 말았다. 친척들은 물론 엄마의 큰아버지는 “어디서 ‘야소교’ 귀신 들린 여자가 남의 딸을 꼬드겨 집안을 망치려고 한다”며 엄마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엄마의 삼단같이 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는 집안에 가두기까지 했다. 엄마는 그 어떤 최악의 물리적 상황은 모두 극복할 수 있었으나, 제일 큰 고통은 교회에 갈 수 없고, 쿠퍼 선교사를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쿠퍼 목사님은 헤어지고 말았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그러나 엄마에게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얼마 후 풍성한 열매로 이어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엄마가 혼기가 차서 결혼해 간 나의 친가는 이미 할아버지 때부터 쿠퍼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인 기독교 집안이었다. 그럼에도 지주에 대농에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들어간 엄마는 층층시하의 시집살이가 어려웠고 힘에 부쳤다. 어느 날 부흥 집회에 참석한 엄마는 철야를 하면서 주일 새벽을 맞았는데, 그때 오순절 다락방과 같은 성령의 불을 받게 된다. 각종 은사를 다 받았는데, 그중 으뜸의 은사는 치유 은사와 중보 기도의 은사였다. 평생에 단 한 번도 “내가 치유했다”는 말을 입 밖에 내어 본 일 없이, 아무도 모르게 그 은사를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사용하셨다. 마치 쿠퍼, ‘거포계’ 선교사와 같은 모습 그대로 말이다. 나의 친가는 5대째 믿음의 집안이며, 순교자를 비롯해 예수의 제자들과 같은 숫자인 12명의 목회자가 탄생했다. 쿠퍼 목사와 어머니가 함께한 사도의 열매였으며, 다시 그 씨앗은 홀씨가 되어 세계로 훨훨 파종되고 있다.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아니 주님 오실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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