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헝가리 랩소디 제2번"

클래식에 젖어들기(5)

by 신동일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 제2번>


글: 신동일(작곡가)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9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아니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음악가가 바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입니다. 최초의 팬덤 문화를 만들어낸 당대 최고 스타였습니다. 요즘 세상으로 비유하자면 아이돌 스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아마추어 음악가이기도 했던 그의 아버지가 리스트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마치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9세 때 데뷔 음악회를 열어 신동으로 인정을 받고, 동시에 리스트에게 수준 높은 음악 교육을 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리스트는 8세 때 카를 체르니(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아노 교재, 체르니 30번, 체르니 40번 등을 작곡한 바로 그입니다!)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11세에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당대의 인기 작곡가로 주인공 역할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도 음악이론과 작곡을 배웠습니다. 그 당시 베토벤을 만나 크게 칭찬받았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리스트는 12-13세 무렵부터 아버지와 함께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연주 여행을 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6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떠안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20대 들어서면서 프랑스 파리에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해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리스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스타덤에 오른 리스트는 자신의 독주회에서 다양한 쇼맨십도 선보였다고 하는데, 음악회 도중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장갑을 끼고 있다가 벗어던지기도 하는 등 독특한 퍼포먼스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연주회가 끝나면 객석에서 감상하던 귀부인이나 아가씨들이 무대로 달려나와 리스트가 버린 담배 꽁초, 장갑, 연주하다가 끊어진 피아노줄 같은 것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벌이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요즘에도 팬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스타의 소품이나 애장품 같은 걸 갖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때부터 시작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리스트가 활동하던 19세기 중엽에 유럽에는 명인적인 피아니스트들이 계속 등장해서 서로 경쟁하던 시기였는데, 그 중에서도 리스트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리스트의 작곡 실력도 점점 좋아져서 자신의 뛰어난 피아노 연주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집적 작곡하거나, 당시 알려져 있던 다른 작곡가들이 테마를 활용해서 어려운 피아노 곡을 만들기도 하고, 유명한 관현악곡을 피아니스트 혼자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연주 능력을 적절하게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꾸준히 생산해 냈습니다. 리스트는 당시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피아노 연주법도 새럽게 개발해내기도 했기에 당시에는 리스트 외에는 연주할 수 없는 곡들도 많이 선보였습니다. 제목부터 어지러운 <초절기교 연습곡집> 같은 극도로 어려운 작품들이 수없이 많고, 이런 작품들은 현대의 피아니스트들도 쉽게 연주하기 어렵습니다. 당시에는 녹음이나 영상 녹화 장비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스트의 연주를 실제로 들을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다양한 피아노곡 악보를 통해 리스트가 얼마나 혁신적이고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listz-illust1.jpg 리스트의 독주회 풍경을 그린 삽화

리스트의 가장 대중적인 작품 중 하나로 <헝가리 랩소디>를 소개합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활동을 했던 리스트가 태어난 곳은 헝가리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 빈으로 옮겼다가 새롭게 떠오르는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탓인지, 어머니가 독일계였던 탓인지 헝가리어를 잘 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곡이나 작곡한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가 헝가리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작곡한 것인지, 당시 집시 음악이 인기였기에 집시 선율을 빌려와 작곡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보통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음악은 당대에도 왕족이나 귀족이 주로 향유하면서 형식적이고 고상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던 데 비해, 민중들이 즐기는 민속음악이나 집시들의 음악은 보다 자유롭고 감정적이고 관능적이기까지 하여 클래식 음악애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브람스도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집시들의 음악이 매력적이고 대중성도 갖췄다고 판단하여 집시 음악 선율을 차용하여 22곡의 <헝가리 춤곡>을 작곡하기도 했고, 그 외에도 많은 작곡가들이 헝가리 풍의 작품을 남겼기에, 비슷한 테마를 갖고 있는 곡들이 여럿 있습니다.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작곡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도 리스트가 헝가리 출신이었기에 <헝가리 랩소디>에 대해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갖췄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20세기 들어 벨라 바르톡(Bela Bartok)이나 졸탄 코다이(Zoltan Koday) 등 헝가리 음악을 세계적인 위치로 끌어올린 작곡가들은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가 집시 음악을 서유럽 주류 음악인 입장에서 재하석하여 본질을 왜곡했다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헝가리 음악의 원형을 지키면서 예술성을 갖춘 음악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는 민족주의적인 색채보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대중적이고 화려한 피아노 레퍼토리로서 의미가 크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헝가리 랩소디> 중 인기 있는 여러 곡들은 나중에 관현악곡으로 편곡되기도 했습니다.

노년의 리스트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역시 제2번입니다.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의 한편을 이 곡을 테마로 만들기도 할 정도로 친근하고 흥미진진한 곡입니다. 곡의 구성은 느릿하면서 멋들어지게 흥을 돋우어 가는 전반부와 빠른 테포로 신나게 몰아가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이런 구성은 여러 나라의 민속음악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형식으로, 우리나라의 민요나 민속음악도 비슷한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 곡에서는 특히 곡 후반부에, 협주곡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카덴차를 삽입할 수 있도록 해 두었기에, 리스트 자신 뿐 아니라 후대의 여러 파아니스트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카덴차를 만들어 삽입, 연주해 왔습니다. 매력적인 민속음악을 테마로 하여 화려한 피아노 태크닉과 흥미진진한 전개로 청중을 사로잡는, 리스트의 개성이 잘 발휘된 명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4YePVuJCtFg?si=gWIGDhbKSczZDBH4

리스트 헝가리 햅소디 제2번(피아노 독주)


https://youtu.be/uNi-_0kqpdE?si=laQfmOYcFIc5DygN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 제2번(오케스트라 연주)


▷ 음악상식: 랩소디


거쉰 "래소디 인 블루" 자필 악보

“랩소디(Rhapsody)"는 자유로운 형식의 단악장 곡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즐겨 선택한 스타일의 악곡 이름입니다. 예전에는 ”광시곡“이라는 번역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요즘에는 원어를 살린 표기법으로 ”랩소디“라고 부르는 추세입니다.

“랩소디”라는 말은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서사시를 낭송하며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 음유시인의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16세기 유럽에서 문학 장르로 일컬어지기 시작했고, 음악 분야에서는 18세기부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랩소디”가 연주곡으로 본격적으로 작곡되기 시작한 19세기에는 대체로 음악의 정서나 분위기, 조성 등이 급격하게 변화하곤 하는 스타일에 즉흥적이면서 자유로운 변주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변칙적인 스타일로 자리잡았으니, 음악적 표현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던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매력적인 양식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체코의 작곡가인 토마셰크(Vaclav Jan Tomasek, 1774~1850)가 1810년 처음 랩소디라는 이름으로 15개의 기악곡을 출판한 이후, 리스트의 <헝가리 햅소디>, 브람스(Johannes Brahms)의 두 개의 랩소디, 샤브리에(Emmanuel Chabrier)의 <스페인 랩소디>, 에네스쿠(George Enescu)의 <루마니아 랩소디>,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라벨(Maurice Ravel)의 <스페인 랩소디> 등 수많은 명곡이 작곡되었고, 20세기 들어 거쉰(George Gershwin)은 <랩소디 인 블루>를 통해 재즈 스타일의 랩소디까지 발표하게 됩니다. 자유롭고 환상적이면서 동시에 정열적이고 낭만적인 스타일의 랩소디 양식은 더 나아가 대중음악에까지 영향을 끼쳤고, 1975년 영국의 록그룹 “퀸(Qeen)"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대작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제목은 “랩소디”라는 단어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표현입니다. 형식적 균형감을 중요시 했던 고전주의 절제된 음악이 음악가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열정과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예술적 욕구를 잘 담아내는 양식으로서의 “랩소디”는 음악가들의 이상향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한 양식이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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