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젖어들기(8)
글: 신동일(작곡가)
차이콥스키(Peter Ilich Tchaikovsky; 1840~1893)는 러시아 음악 역사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오랫 동안 사랑 받아온 작곡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최고 음악 교육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이, 소련 시절인 1940년 모스크바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정도로 러시아에서도 가장 상징적이고 역사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생전에서 러시아 뿐 아리나 서유럽과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성공한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행복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14세에 어머니를 여읜 이후 줄곧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당시에는 특히 죄악시되었던 동성애 성향으로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성공에 대한 욕망도 지나쳐서 관객들의 호응 여부에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렸습니다. 차이콥스키에게 매달렸던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결혼했지만 끝내 불행하게 헤어지고 맙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전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그의 정신병 증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의 갑작스럽고 비극적인 죽음은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걸작인 교향곡 제6번은 일반적인 교향곡과 다르게 제4악장에서 느리고 암울한 분위기로 이어지다가 비극적인 느낌의 마치면서 초연 당시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는데, 며칠 뒤 차이콥스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비창 교향곡”이라는 부제를 얻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음악가로서의 성공 이면에 숨겨진 그의 실제 삶은 고통과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사실 재정적으로 어렵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스스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생활이 항상 불안정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연 중 하나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사랑하여 오랫 동안 조건 없는 후원을 해 주었던 부유한 미망인 나데츠다 폰 메카와의 인연입니다.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교수로 있던 차이콥스키는 교수직을 그만 두고 작곡에 전념해도 될 정도로 큰 후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폰 메크는 차이콥스키와 직접 만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했고, 그들의 인연은 편지로만 계속 이어지며 특별한 관계를 지속했습니다. 1876년 폰 메크는 차이콥스키에 대한 후원자로서의 관계를 갑자기 종료했고, 차이콥스키는 크게 낙담하여 정신적으로 더욱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동시대 다른 러시아 작곡가들에 비해 세련되고 기술적으로도 안정되어 있으며 서유럽의 구조주의 작곡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러시아 바깥 세계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음악계는 서유럽 스타일에서 벗어나 러시아만의 색채가 뚜렷한 독자적인 음악 양식을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차이콥스키도 초창기에는 러시아 음악의 특징을 적극 반영한 작품들을 발표했지만, 점차 서유럽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하고, 러시아적인 색깔도 완전히 잃지는 않아서 매력적인 작품을 꾸준히 내놓았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그의 첫 번째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Swan Lake)는 "발레"라는 예술 장르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역사적인 명곡이지만, 초연의 처참한 실패를 비롯해 차이콥스키 생전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난 뒤 페테르부르크의 황실 마린스키극장의 안무가인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의 협업으로 1895년 새롭게 제작된 <백조의 호수>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재평가 받기 시작했습니다.
초연 당시 러시아 발레의 관행은 웅장한 음악에 화려한 의상과 군무 등으로 쇼에 가까운 형태의 공연이었기에 <백조의 호수> 초연도 그런 관습에 따라 공연되어 실패했는데, 차이콥스키 사후 프티파와 이바노프는 드라마의 흐름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던 <백조의 호수>의 음악을 꼼꼼히 분석한 뒤 안무, 의상, 무대 등 모든 것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접근했고, 발레라는 장르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만들어냈습니다.
<백조의 호수>의 이야기는 러시아와 독일에서 떠돌던 민담을 절충하여 구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주인공 지그프리드 왕자는 독일식 이름이고, 이야기의 모티브는 러시아 민담에도 나타나는 소재입니다.
지그프리드 왕자는 자신의 성년식 날, 숲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호숫가에서 인간으로 변하는 백조를 발견하는데, 로트바르트라는 악마의 마법에 걸려 낮 시간에 백조로 살아가야 하는 오데트 공주였습니다. 오데트와 사랑에 빠진 왕자는 변치 않는 사랑을 받으면 저주에서 풀려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오데트 공주에게 사랑의 맹세한 뒤 다음날 있을 무도회에서 결혼 발표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로트바르트는 자신의 딸 오딜을 보내 왕자를 유혹하고, 왕자는 오데트와 꼭 닮은 오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맙니다. 상심한 오데트는 자살하려는데 지그프리트가 나타나 용서를 구하고 다시 사랑을 고백을 합니다. 그 뒤의 결말까지의 내용은 수 많은 버전이 존재합니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다층적이고 암시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어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고, 해피엔딩에서 비극적 결말까지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습니다.
프티파와 이바노프의 <백조의 호수> 공연은 여러 가지 면에서 작품의 새로운 관습을 정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연 당시에의 관행에 따라 궁정의 화려한 분위기와 춤을 강조하고 백조 장면을 가볍게 처리해 드라마의 당위성을 떨어뜨렸는데, 1895년의 재공연에서는 지그프리드 왕자와 백조들이 펼치는 드라마를 꼼꼼하게 살려내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바노프는 실제 백조들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관찰한 뒤 섬세한 안무와 의상 등을 디자인 하여 현대 발레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주인공 오데트와 악마의 딸 오딜 역할을 한 무용수가 1인2역으로 연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흰색 의상의 오데트와 검은색 의상의 오딜을 1인2역하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졌습니다.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2010년 영화 <블랙 스완>은 화이트 스완과 클랙 스완을 대조를 공연을 앞둔 무용수의 심리 스릴러 양식으로 표현해 크게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1882년 <백조의 호수> 음악 중 6곡을 발췌하여 연주회용 모음곡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정경>을 첫 곡으로 <왈츠>, <어린 백조들의 춤>, 또 다른 <정경>, <헝가리 춤>, 마지막 <정경과 피날레>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곡들을 포함하고 있고, 지금까지도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 영상 (볼쇼이 발레단)
https://youtu.be/6FHPcnG2vfI?si=ON08EsUc4VrnSF0M
차이콥스키 관현악 모음곡 <백조의 호수>
https://youtu.be/OSVSlddJMn8?si=ku9aSvqp66Z-075C
발레(Ballet)는 르네상스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여 16세기 프랑스에 전파됐고,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합니다. 프랑스의 발레 음악은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에 의해 큰 발전을 이룹니다. 륄리는 17세기 중요한 바로크음악 작곡가로 평가되는데, 최초의 발레단을 설립하고 당대 프랑스 최고의 극작가였던 몰리에르(Molière)와 함께 작업하여 최초의 코미디 발레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륄리는 발레를 오페라의 한 부분으로 도입해서 이야기 전개를 보조하게 했고, 이후 오랜 기간 오페라에 발레 장면이 추가되는 게 관습처럼 정착되었습니다.
발레는 기본적으로 귀족들이 배우고 감상하는 춤으로 성장했는데, 18세기말~19세기 초의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등을 통해 사회 구조가 급격한 변혁을 맞이했고, 발레도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대본을 통해 드라마를 무용으로 표현하는 발레 형식이 정착됩니다. 1830년대 이후 프랑스 발레는 쇠퇴하고 덴마크, 이탈리아, 러스아 등으로 확산됩니다.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는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과 함께 러시아 발레를 크게 발전시켜 발레의 주도권을 러시아가 잡게 됩니다.
20세기 들어 러시아 발레는 서구 세계로 나아가 대단한 찬사를 얻게 됩니다. 특히 디아길레프(Sergey Diaghilev)가 이끄는 발레 루스(Ballet Russ)가 20여년 동안 유럽에서 수많은 공연을 하면서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디아길레프는 바슬라프 니진스키(Vaslav Nijinsky)이나 조지 G. 발란신(George Balanchine)과 같은 역사에 남을 안무가를 길러내면서 발레의 정의를 새롭게 정립해 갔습니다.
20세기 발레는 19세기와 달리, 2시간씩 드라마를 바탕으로 구성하는 발레 공연을 탈피하여 줄거리와 상관 없이 구성하거나 다양한 음악을 선택하여 자유롭게 구성하는 짧은 단막 발레들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아길레프 사후에는 영국, 미국 등 서구 여러 나라에서 발레단을 만들어 다양한 발레 작품들이 확산되었습니다.
‘발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인 발끝으로 서는 기술은 “푸앵트'(pointe)”라고 합니다. 이것은 19세 초 전설적인 무용수 마리 탈리오니가 의해 처음 선보였습니다. 로맨틱 발레의 대표작인 <라 실피드>에서 요정 역으로 출연하여 마치 정말 날개가 달린 요정처럼 깃털 같이 가벼운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발레 기법의 혁명을 가져온 “푸앵트” 테크닉은 특히 여성 무용수가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춤을 추기 위한, 발레의 중요한 테크닉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발레 음악의 대표작을 살펴보면 차이콥스키의 3편의 명작, <백조의 호수(Swan Lake)>, <잠자는 숲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을 우선 꼽을 수 있고, 아돌프 아당(Adolphe Charles Adam)의 <지젤(Giselle)>, 들리브(Léo Delibes)의 <코펠리아(Coppélia)>와 <실비아(Sylvia)>, 프로코피에프(Sergei Prokofiev)의 <로미오와 줄리엣(Rmeo and Juliet)>,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의 <스파르타커스(Spartakus)>와 <가야네(Gayane)> 등이 발레 공연 외에 음악회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