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젖어들기(7)
글: 신동일(작곡가)
19세기 러시아 작곡가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 1839~1881)의 대표작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은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독창적인 모음곡 중 하나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명곡입니다.
그러나 무소르그스키 자신은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마추어 작곡가로 평생을 지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 많은 러시아 작곡가들이 음악가로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무소르그스키도 예외가 아니어서 군인, 공무원 등의 직업을 갖고 작곡 활동을 해나갔습니다. 동료 음악가들의 무시를 받기도 했고,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다가 4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 작곡가입니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작으로, 그의 나이 35세 때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입니다. 이 작품은 그의 친구 빅트로 하르트만(Viktor Alexandrovich Hartman)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열린 추모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입니다. 무소르그스키는 그의 지지자였던 음악평론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Vladimir Vasilievich Stasov)로부터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빅토르 하르트만을 소개 받아 가까이 지냅니다. 그런데 1873년 어느날 하르트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무소르그스키는 크게 상심합니다. 이듬해 스타소프는 하르트만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하르트만의 그림과 스케치, 건축 설계도, 소장품 등을 모아 독특한 추모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안고 찾은 전시회에서 큰 감흥을 얻고 피아노 모음곡을 작곡하게 됩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하르트만의 그림 중 10개 작품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 작품을 더욱 특징적으로 만들어주는 부분은, 각 곡의 사이사이에 ‘프롬나드(산책; Promenade)’라는 짧은 간주곡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간주곡은 마치 하나의 그림을 감상한 뒤 다른 그림을 보러 이동하는 사이 느끼는 정서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들려주는 듯한 것인데, 같은 주제를 사용하여 곡마다 분위기를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곡 사이에 프롬나드가 배치된 것은 아니고, 전체적으로 5곡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결국 전체 15곡의 모음곡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독특한 형식을 가진 모음곡은 <전람회의 그림>이 유일합니다. 전곡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프롬나드 1 : 전주곡 역할을 하게 되는데, 장중한 느낌의 여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난쟁이(Gnomus) : 절뚝거리며 달려가는 난쟁이를 스케치한 그림을 소재로 한 곡인데, 다소 기괴하면서도 풍자적인 느낌이 듭니다.
프롬나드 2 : 부드러운 톤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곡 <옛성>의 정서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2. 옛성(Il vecchio castello) : 중세의 옛 성을 그린 그림을 소재로 합니다. 목관악기인 바순(Bassoon)의 아련한 멜로디를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입니다.
프롬나드 3 : 첫 번째 프롬나드와 같은 장중한 분위기로 돌아와 감상자의 마음을 가다듬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첫 번째 프롬나드보다 길이는 훨씬 짧고, 다음 곡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마지막 종지 부분이 조정되어 있습니다.
3. 튈르리 궁전. 아이들이 놀이 뒤에 벌이는 싸움(Tuileries. Dispute d’enfants après jeux) : 밝고 아기자기한 악상으로 귀엽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애니메이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프롬나드 없이 다음 곡으로 이어집니다.
4. 비들로(Bydło) : ‘비들로’는 큰 바퀴가 달린 폴란드의 달구지라고 합니다. 저음 악기 위주로 무겁고 거칠게 전진하는 수레를 표현합니다. 친구의 죽음에 비통해 하는 작곡가의 마음이 엿보입니다.
프롬나드 4 : 고음역에서 여린 음색으로 연주되는 네 번째 프롬나드는 마치 생각에 잠긴 감상자가 머뭇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입니다.
5.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춤(Ballet of unhatched fledglings) : 묘한 분위기의 스케치를 소재로 한 곡으로 짹짹거리는 병아리들이 뛰어다니는 광경이 상상되는 재미있는 곡입니다. 프롬나드 없이 다음 곡으로 이어집니다.
6.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뮐레(Samuel Goldenberg und Schmuÿle) : 거만한 부자와 비굴한 가난뱅이가 언쟁을 벌이는 광경을 묘사한 음악입니다. 저음 현악기가 거드름피우는 부자 골덴베르그를, 약음기를 사용하여 빽빽거리는 소리를 내는 트럼펫이 가난한 슈밀레를 표현합니다. 부자와 가난뱅이는 폴란드인이라고 합니다. 둘의 언쟁은 점점 고조되어 강하게 마칩니다. 마지막 종지는 부자인 골덴베르그가 가난한 슈뮐레를 한 대 치는 결말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프롬나드 5 : 다시 첫 프롬나드의 장중한 분위기로 돌아와 충실하게 곡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애통한 마음을 정리하고 나머지 그림들을 향해 힘있게 나아가려는 의지를 전하려는 듯 합니다.
7. 리모주의 시장(Limoges, The Market Place) : 프랑스의 시골 시장에서 여인들이 싸우는 광경을 그린 작품을 소재합니다. 활기차면서도 부산한 시장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흥미로운 음악입니다. 프롬나드 없이 다음 곡으로 이어집니다.
8. 카타콤(Catacombae) : 카타콤은 로마의 지하 묘지로, 초기 기독교 시대의 기독교인이 많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하르트만 자신이 등불을 들고 카타콤을 조사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전곡 중 가장 독특한 음악으로 불길한 화음만으로 이어지는 짧은 곡입니다. 전통에서 벗어난 특이한 화음이 연결되면서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형식적으로는 프롬나드를 대체한 듯한 형태이며,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는 다음 곡으로 연결됩니다.
9. 닭발 위의 오두막집(The Hut on Fowl's Legs) : 제9번과 제10번은 중단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서 연주됩니다. 절정의 피날레로 달려가는 듯,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원작은 닭발이 달린 시계 모양을 한 바바야가의 오두막을 묘사한 전통 디자인 같은 느낌의 그림입니다. 바바야가는 러시아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변덕스러운 마녀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변화무쌍하고 익살스런 악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느낌을 주면서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10. 키에프의 대문(The Heroes’ Gate at Kyiv) :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에프 시의 대문을 위한 디자인 스케치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슬라브 특유의 둥근 지붕 모양을 한 옛 러시아의 전통적인 웅장함을 담고 있습니다. 전곡을 마무리하는 웅장한 피날레 곡으로 적합한, 대합창을 연상시키는 멋진 음악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무소르그스키는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지 못하여 오케스트라 음악을 다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관현악곡이나 오페라 등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작품들은 모두 당대 최고의 오케스트라 작곡가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도움으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르그스키 생전에는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사후에 점점 유명해졌는데, 워낙 독창적이고 다양한 음악적 이미지가 가득한 모음곡이어서 여러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편곡으로 지금까지 널리 연주되는 것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로 환상적인 오케스트라 음악을 다수 남긴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편곡 작품입니다. 라벨 특유의 색채감 넘치는 악기 사용과 대관현악의 장쾌한 사운드로 피아노 원곡보다 더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특히 자휘자로서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고 마지막 곡은 멋진 폼으로 연주할 수 있는 여지도 많기 때문에 많은 지휘자들이 사랑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피아노 원곡과 라벨 편곡의 관현악곡을 비교 감상해 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감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피아노 원곡)
https://youtu.be/zeIzK9QWnK4?si=jsGtNh2xnPyCGd3M
무소르그스키-라벨 <전람회의 그림> (오캐스트라 버전)
https://youtu.be/gexw3NUTVxk?si=Ee5Mh_amAYpG5jC_
19세기 이전까지 러시아는 유럽 음악의 변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예술 양식을 확립하지 못하고 서유럽의 음악 양식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특히 러시아 민속음악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던 러시아 귀족들 사에에서 발레나 이탈리아 오페라가 큰 인기를 얻어, 이탈리아 오페라를 수입해 공연하거나 모방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러시아 음악 발전을 저해했습니다.
그러다가 러시아 음악의 발전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초 작곡가 미카일 글링카(Mikhail Glinka; 1804~1857)의 등장부터였습니다. 러시아 민속음악에 관심을 갖고 민족적인 색채를 담아 완성도 높은 예술 음악을 최초로 내놓기 시작한 글링카는 19세기 러시아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글링카의 음악과 정신을 이어 받은 후배 작곡가들은 서유럽의 구조주의 작곡법을 연구하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 러시아 음악만이 가진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했고, 그중 가장 뛰어난 5명의 작곡가에 대해 당대 영향력을 가졌던 음악평론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Vladimir Vasilievich Stasov)가 “러시아5인조”라고 명명하고 러시아 국민음악 운동에 불을 치폈습니다. “러시아5인조”라고 불린 5명의 작곡가는 가장 선배격인 밀리 발라키레프(Milij Balakirev; 1837-1910) 선두로 하여, 알렉산드르 보로딘(Alexander Borodin; 1833-1887), 세자르 큐이(César Cui; 1835 - 1918),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Musorgskii; 1839-1881),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i-Korsakov; 1844-1908) 등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민족주의 음악 운동을 시작한 러시아는 20세기 이후 현대까지 꾸준하게 빼어난 작곡가들을 배출해 냈고, 그 영향으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등의 동유럽과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북유렵까지 민족음악 운동을 각지로 확산되기에 이릅니다.
러시아5인조와 반대 방향의 길을 걸었던 차이코프스키는 서유럽의 구조주의 음악을 받아들여 형식적으로 균형잡히고 음악적으로 매력적인 악상으로 러시아 밖에서도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렇다고 러이사5인조와 차이코프스키가 서로 대립하거나 반목했던 것은 아니고, 친분 관계를 형성하며 자주 교류했다고 합니다. 반면 스타소프가 인위적으로 러시아5인조로 묶은 다섯 사람의 작곡가들이 서로에 대한 소속감이 크지는 않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러시아5인조 중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던 작곡가는 발라키레프입니다. 지금은 ‘러시아5인조’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곡가지만, 글링카와 일찌감치 친분을 갖고 러시아 음악을 독창적인 색채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하고, 음악학교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며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직 음악계 환경이 열악한 러시아 현실에서 많은 작곡가들이 전업 음악가로 살지 못하고 다른 직업을 병행하며 아마추어 작곡가로 음악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발라키레프는 그 중에서 드물게 전업 음악가로 활동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곡은 <이슬라메이>(Islamey, An Oriental Fantasy Op.18)라는 피아노 독주곡입니다. 32세 때 캅카스 지역을 여행하고 받은 인상으로 작곡한 이국적인 분위기의 화려한 피아노곡입니다. 초연 후 오랫동안 쉽게 연주할 수 없는, 대단히 어려운 난곡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보로딘은 뛰어난 화학자이자 작곡가였습니다. 본업이 화학자였기에 일요일이나 휴가 시기에만 작곡할 수 있었고, 따라서 많은 작품을 남기진 못했지만, 러시아5인조 중에서 형식적으로 가장 탄탄하고 균형잡힌 작품을 남겼습니다. 러시아 작곡가다운 풍부하고 이국적인 음악 색채에 형식미를 더한 수준 높은 작품들을 나겼습니다. 교향곡을 3곡 남겼는데, 제2번은 특히 뛰어난 작품으로 중요한 교향곡 레퍼토리 중 하나입니다. 교향시 <중앙아시아 초원에서>(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도 널리 사랑받는 곡입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 즉위 25년 기념으로 위촉받아 작곡한 곡인데, 다양한 음색과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현악4중주 제2번은 첼로의 매력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제3악장의 녹턴(Notturno)가 가장 유명합니다. 평생 공들여 작곡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던 오페라 <이고르 공(Prince Igor)>도 가자 중요한 러시아 오페라 레퍼토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제2막의 폴로비치안 춤곡은 독립적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관현악곡입니다. 오페라는 보로딘 사후에 림스키-코르사코프와 후배 작곡가인 글라주노프가 완성했습니다.
큐이는 5명의 작곡가 중 가장 낮게 평가받는 작곡가입니다.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작곡가로 활동했고, 오페라 작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후에는 오히려 가곡에 더 큰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무소르그스키도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제대 후에 공무원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작곡 활동을 했는데,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에, 천재적인 음악성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후에 그의 작품은 더욱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고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을 꼽을 수 있고, 교향시 <벌거숭이 산의 하룻밤>(Night on Bald Mountain)으로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펼쳤고,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 역시 러시아 오페라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명작으로 오늘날까지 공연되고 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당대 가장 뛰어난 오케스트라 작곡가로 인정받았지만, 그 역시 군 장교로 복무하며 작곡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1871년 성 페테르부르그 음악원 교수가 된 후로 더욱 깊이 연구하여 뛰어난 관현악곡과 오페라 등을 작곡했고, 무소르그스키나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의 오케스트라 편곡을 다수 맡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집필한 관현악법 교재는 현재까지 많은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는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오페라 <살탄 황제의 이야기> 중 2막에서 연주되는 <왕벌의 비행>(Flight of the Bumblebee)이 있고, 대표작으로 관현악 모음곡 <세헤라자데>(Scheherazade)와 관현악곡 <스페인 기상곡>(Capriccio Espagnol) 등이 자주 연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