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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 Oct 11. 2023

죽음의 원료에 대해

행복이 대체 뭔지 모르겠어서 그냥 써보는 글이다.

요즘 세상에 가장 그럴듯한 종교인 행복. 행복하지 않으면 죽어버려야 할 것만 같은 이 세상.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불행해서일까. 불행하다고 모두가 죽지는 않는데. 이 세상이 행복하지 않으면 죄인처럼 취급하니까 그런 건 아닐까. 

매일같이 행복할 수는 없다. 어느 날은 끝없이 불행해지는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한 날들을 더 많이 겪을 수도 있다.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불행해도 된다고. 불행하다고 죽어야 되는 게 아니다. 모두 다 불행한 거니까. 죽지 말고 살자고 말하고 싶다. 

나는 불행한가? 나는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만족하는 날이 많지만 그러지 못한 날도 많다. 그래도 괜찮은 거다. 불행하지 말자. 행복하자. 이런 말 말고. 죽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죽지 말자. 제발 죽지 말자. 불행해도 되지만, 불행을 죽음의 원료로 쓰지는 말자. 그 말의 방향은 내게도 향해있다. 일이 안 풀리는 어느 날엔 마음껏 한탄하고 혐오해도 된다. 스스로를 충분히 미워해도 된다. 대신에 죽지만 말자. 살아있자.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곧잘 죽곤 한다. 건너 건너 누가 자살했다더라, 누가 무슨 병으로 죽었다더라. 그런 소리들을 들을 때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다. 모르는 이의 죽음에 슬퍼할 만큼 에너지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적당히 묻어두었던 죽음들은 한 번씩 나를 두렵게 한다. 내 옆의 누군가가 사라진다면? 그땐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울어야 하나. 눈물이 나오기는 할까. 후회되면 어떡하지. 후회해야 하나. 죄책감을 가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오늘 같은 날엔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 퍽 사무치기도 한다. 이미 죽어버린 영혼이 불쌍해서. 이미 떠나버린 존재가 안쓰러워서. 

아무도 안 죽었으면 좋겠다. 영원을 믿지도 않고, 그 단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영원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는 세계. 약속이 지켜지는 세계 말이다. 누군가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내게 글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본인의 블로그에서 그런 얘기를 하셨다. 매년 한예종에서는 최소 1명의 학생이 자살한다고. 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 끝없이 동경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죽어나간다. 이상하고 무섭다.

십 대 시절을 바쳐서 겨우겨우 '나'라는 사람을 알아냈다. 나빠졌다가 착해졌다가 이기적이었다가 이타적이었다가 억지로라도 웃고 싶었다가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다가 1분 1초마다 달라지는 나를, 혼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란 존재를 오랜 시간 연구했다. 내 인생을 방해하는 커다란 물음표를 걷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내 앞에는 나란 인간보다 백배 천배 아니 무한대 더 무시무시한 세상이 버티고 있다. 너무 무겁고 거대한 물음표가 버티고 앉아있다. 차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지기는 싫은데, 이길 자신도 없는 그런 상태다. 

'잘', '열심히', '최선을 다해', '솔직하게', '행복하게' 이런 말들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언어들은 하나의 돌덩이가 되어 누군가의 삶을 무겁게 할지도 모르겠다. 내 말대로라면 불행한데도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많다. 자기 삶을 그저 이고 가는 것도 버거운 사람들에게 돌덩이를 더 내밀고 싶진 않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나는 내가 더 잘 되기 위해 '잘', '열심히', '최선을 다해' 같은 말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낼 수도 있다. 그런 다음 '솔직함'과 '행복' 같은 말들로 같잖은 조언과 위로를 건넬지도. 아는 척, 이해하는 척, 다 겪어본 척하는 겉으로만 그럴듯한 어른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그건 아무래도 싫은데. 그 반대편에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을지 확답하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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