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희 Mar 31. 2023

바람개비

빙글빙글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바람개비

- 라희
                 
눈을 감아

그렇게 속삭였어야 했다
어지러워서 속이 울렁거릴 거라고
당부했어야 했다

넌 떠났으려나
그 자리에 서 있었을까
수십 번 되풀이한다

창백해진 얼굴로 쇠락해져 가겠지
혼곤한 눈
시무룩한 표정
세상 모든 망설임을 삼킨 듯
안절부절못할 너의 날개

그럼에도 돌겠지
끊임없이
너의 삶을 이어가겠지

눈을 꼭 감아

더운 바람도 시린 바람도
모두 받아들일
미련한 바람개비야

앞을 봐

풍속 따위는
땔감으로 태워버릴
나의 바람개비야
나야


---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나는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목표를 전부 이루고 그 분야의 정상에 올라서 있는 사람들 말이다. 부와 명예를 전부 끌어안고 있는 이들이 대단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그들이 박수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특정 분야에서 높이 올라 간 사람은 그만큼의 노력을 하고, 수많은 장애물의 뛰어넘었다는 거니까.

다만 최근 들어 정상에 있는 이들보다 멋있다고 생각되는 존재가 생겼다. 자신의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매일 같은 일을 한다. 똑같은 일상을 산다. 더 나아질 길이 없어 보이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한다. 인간들은 반복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반복에도 지치지 않는 건 기계뿐이다. 그렇기에 되풀이되는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위대하다. 어쩌면 정상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주변을 둘러보니 반복을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부모님, 친구들,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의 사장님, 학교를 다니고 있는 어린 학생들까지도. 난 그들이 바람개비 같았다. 한 자리에서 마구 돌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바람개비 말이다. 이 시는 바람개비처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에게 바치는 글이다.


작가의 이전글 변화와 지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