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장통 속의 우리

성공하려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힘에 대하여

by 오중훈


게를 잡아 양동이에 담을 때, 뚜껑이 필요 없다. 한 마리가 기어 올라가려 하면, 나머지들이 집게발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양동이 속, 게들은 서로를 밟고 올라섰다가, 서로를 끌어내린다. 탈출에 성공한 게는 단 한 마리도 없다. 아이였던 나는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그 장면이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

심리학과 사회학에서는 이것을 크랩 버킷 이펙트(Crab Bucket Effect)라고 부른다. 집단 내 한 구성원이 성공하거나 탈출하려 할 때, 나머지 구성원들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끌어내리는 현상이다.


“내가 못 나가면, 너도 못 나간다. 내가 안 되면, 너도 안 된다.”


말로 표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훨씬 정교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게 되겠어?”, “네가 뭘 안다고”, “분수를 알아야지”, “우리 때는 다 이렇게 살았어.”

그리고 가장 강력한 한 마디. “나니까 하는 말이야. 네가 걱정돼서 그래.”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이 문장은 반박하기가 가장 어렵다. 공격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랑처럼 들린다. 그래서 더 깊이 박힌다. 직접적인 공격보다, 걱정의 얼굴을 한 낙담이 더 효과적으로 사람을 제자리에 붙잡아 둔다.


나는 오래도록 도시정비 일을 해왔다. 재개발, 재건축. 낡은 것을 허물고 새것을 짓는 일. 그런데 이 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공사가 아니라, 사람이다. 수십 년을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이웃들이 이해관계로 갈라서는 순간, 게장통의 원리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먼저 손을 든다. 그러면 반드시 누군가가 끌어내린다. “왜 당신이 앞장서냐”, “저 사람 뭔가 속셈이 있는 거 아니야”, “너무 나서면 나중에 피곤해진다.” 두려움과 의심과 시기가 섞인 그 집게발들은, 진보를 막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그렇다면 이 현상은 나쁜 사람들만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그게 더 무서운 점이다. 끌어내리는 쪽도, 대부분은 악의가 없다. 그들은 걱정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장통 속에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양동이 밖에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 현상의 뿌리에는 사회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이 있다.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아를 형성한다. 동료가 성공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위치가 낮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내려오게 만드는 것이다.


몇 해 전, 사업을 다시 확장하려 할 때였다. 오래된 지인 중 한 명이 말했다. “지금 잘 되고 있잖아. 굳이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 그 말이 오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옳은 것도 아니었다.

현상 유지는 안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세계가 움직이는 동안 멈춰 있는 것은, 사실 후퇴다. 게장통 안에서의 안정이란, 결국 탈출의 포기다.


당신을 끌어내리는 사람이 항상 적은 아니다. 가끔 그들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가족, 오랜 친구, 동료. 그들의 의심은 악의가 아니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네가 성공하면, 내가 뒤처지는 것 같아서. 네가 변하면, 우리가 달라지는 것 같아서. 이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 나면, 분노보다는 연민이 먼저 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세 가지를 배웠다.

첫째, 게장통을 알아보는 눈을 키울 것. 모든 집단이 게장통은 아니다. 하지만 특정 관계, 특정 환경, 특정 대화에서 이 패턴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신호다. 환경 자체가 성장을 억제하고 있다는 신호.

둘째, 끌어내리는 말과 우려하는 말을 구분할 것. 진짜 우려는 대안을 품고 있다. “그 방법은 위험할 것 같은데,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라고 말한다. 반면 게장통의 집게발은 그냥 끌어내린다. 이유도, 대안도 없이. 그리고 끝엔 꼭 이 말을 덧붙인다. “나니까 하는 말이야.”

셋째, 그리고 가장 어렵지만 먼저 탈출한 게가 될 것. 게장통을 탈출한다고 해서 동료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나간 게가 뚜껑을 열어줄 수도 있다. 진짜 의리는, 함께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가는 길을 여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양동이 안팎을 넘나드는 일을 한다. 도시를 바꾸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니까. 때로는 내가 끌어내려지고, 때로는 내가 끌어내리는 쪽이 되기도 한다.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게장통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것은 이미 완전한 감옥이 아니다. 이름 붙인 것은 이미 반쯤 극복한 것이다.

갯벌의 벽돌색 양동이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탈출한 게는 어디로 갔을까. 아마 더 넓은 바다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아무도 자신을 끌어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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