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前) 자가 붙은 명함에 대하여
장자가 묻고, 우리가 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어느 날 장자는 꿈을 꿨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며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잠에서 깬 뒤 그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나비 꿈을 꾼 장자인가, 아니면 지금 사람 꿈을 꾸고 있는 나비인가.
그는 이것을 '호접몽(胡蝶夢)'이라 불렀다. 그리고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장자는 애초에 답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는 우리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껍질을 벗겨내면, 당신 안에는 무엇이 남아 있느냐고.
나는 가끔 명함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본다.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서 수십 년을 일하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명함을 받게 된다. 어떤 이의 명함에는 직함이 두 줄, 세 줄씩 이어진다. 그리고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전(前) 자가 붙은 명함들이다.
전 사장. 전 회장. 심지어 전전(前前) 대표.
처음 그런 명함을 받았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은 이미 내려놓은 자리를 명함 위에 새겨 다닐까. 그 '전(前)' 자 하나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을까?
과거의 영광에 대한 그리움인가. 아니면 지금의 나를 설명할 다른 언어가 없어서인가?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훈련받았다.
학교에서는 반장, 부반장이 되는 것을 가르쳤다. 어른들은 "커서 뭐가 될 거냐"라고 물었지,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는 좀처럼 묻지 않았다. 사회에 나와서는 명함이 곧 자기소개서가 됐다. 명함을 내밀면 대화가 시작되고, 명함이 없으면 존재가 흐릿해지는 세상.
회식 자리에서 한번 실험해 보라. 명함을 주지 말고, 직장도 직함도 말하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 보라.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하는지를. 그리고 그 당황함의 절반은, 사실 자기 자신을 향한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이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명함이 없다면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장자는 진정한 사람, 즉 진인(眞人)을 이렇게 묘사했다.
잠을 자도 꿈을 꾸지 않는다. 깨어나도 근심이 없다. 먹어도 맛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높이 올라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는다.
이것은 초인이 아니다. 외부의 것들, 즉 지위, 평판, 이름, 직함에 자신의 존재를 걸어두지 않는 사람이다. 무엇이 붙거나 떨어져도 자기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
장자가 살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벼슬이 생기면 벼슬에 매달리고, 벼슬이 떨어지면 자신마저 떨어진다고 느끼는 사람들. 장자는 그들을 안타깝게 봤을 것이다.
그러니 묻는다. 당신의 명함이 사라지면, 당신은 무엇으로 서 있습니까?
나는 이 질문을 가끔 나 자신에게도 던진다.
컨설턴트. 대표. 정비사업 전문가. 이런 것들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생각해 보면, 남는 것들이 있기는 하다. 오래된 책들에 밑줄 그어진 문장들. 통영의 어느 골목을 거닐며 느꼈던 이름 모를 정서. 빈티지 시계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습관. 좋은 위스키 한 잔 앞에서 말이 느려지는 시간. 글을 쓰고 싶다는 오래된 충동.
그런데 웃긴 것은, 이것들은 명함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더 진짜인지도 모른다.
장자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말했다. 쓸모 있는 나무는 베어지고, 쓸모없는 나무는 오래 산다고. 그것이 역설이 아니라 진리라고.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고 훈련받았다. 쓸모 있는 인재, 쓸모 있는 직원, 쓸모 있는 관리자. 그 쓸모의 증명서가 명함이었다.
그런데 그 쓸모가 사라지는 날,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진짜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호기심. 어제보다 오늘 더 궁금한 것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직함이 없어도 살아있다.
자기만의 언어.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말이든 글이든 몸짓이든.
관계의 온도. 명함 없이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들이 재산이다.
아직 하고 싶은 것. 은퇴 후에도, 직함이 사라진 후에도, 내일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살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나비 꿈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장자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 구분을 물화(物化)라 한다."
물화. 만물은 변한다는 뜻이다. 나는 나비가 됐다가 장자가 됐다가 한다. 사장이 됐다가, 전 사장이 됐다가, 그냥 한 사람이 된다.
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 그것을 찾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명함은 종이다. 그리고 종이는 결국 바뀐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명함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오늘 지갑에서 명함을 한 번 꺼내 보시길. 그리고 조용히 물어보시길.
이것을 빼면, 나는 누구입니까?
그 물음이 불편하지 않은 날, 비로소 자유로운 것일 거라 생각하는데
나는 아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