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보자니 꽃이 아닌 게 없다
베어 내자니 풀이요, 두고 보자니 꽃이더라
얼마 전, 한 책에서 《주자》의 구절 하나를 만났다.
베어 내자니 풀 아닌 게 없지만,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다.
若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
읽는 순간, 또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쳐내는 사람’이었다.
작은 정치판 욕망의 집합체라고도 불리는 재개발 현장에서 20년 이상 일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쓸 것과 쓸모없는 것을 빠르게 분류하는 능력. 될 사업과 안 될 사업을 구분하는 눈. 믿을 사람과 조심해야 할 사람을 가려내는 감각.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수많은 것들을 ‘잡초’로 분류해 왔다.
지지부진한 회의. 성과 없어 보이는 관계. 당장 답이 안 나오는 고민. 쓸데없어 보이는 감정들.
베어내고, 정리하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런데 이 구절은 묻는다.
네가 잡초라 부른 것들, 정말 잡초였느냐고.
돌아보면, 내가 가장 쓸모없다고 여겼던 시간들이 나를 가장 깊이 만들었다. 답 없이 버텼던 밤들. 성과로 이어지지 않은 인연들. 삽질처럼 보였던 시도들.
그것들은 잡초가 아니었다. 그냥 아직 피지 않은 꽃이었다.
시선의 문제다.
‘베어낼 것’을 찾는 눈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정리해야 할 잡초밭이다. 하지만 ‘두고 볼 것’을 찾는 눈으로 보면, 그 자리가 전부 꽃밭이 된다.
같은 들판이다. 다른 건 내 눈의 각도뿐이다.
《주자》의 이 구절을 인용한 사람은 어느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고 한다. 어려움과 고통을 맞닥뜨리면서도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두고 보는’ 시선이라고. 오십을 넘기고서도 배울 게 많다.
예전에 와닫지 않았던 고전 옛말들이 틀린 게 없다고 얘기할 때가 많아진다.
나는 요즘 조금씩 연습 중이다.
판단을 미루는 것.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것. 지금 당장 풀처럼 보여도, 꽃이 필 때를 기다려보는 것.
이게 무능함이나 우유부단함과는 다르다. 오히려 더 단단한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무언가를 베어내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여유, 그게 진짜 내공이 아닐까.
베어 내자니 풀 아닌 게 없고,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다.
오늘도 나는 베어 내려는 손을 한 번 더 멈춰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