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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기내방송, 제가 해볼 수 있을까요?

『거절당하기 연습』현실화 첫 번째 챌린지


직접 기내방송을 해보겠다는 승객을 본 적이 있는지?


도서『거절당하기 연습』의 현실화 첫 번째 챌린지. 승무원에게 항공기 탑승 환영인사를 해보겠다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주말 동안 제주도 여행이 잡혀있던 차에 책의 한 구절이 마음에 꽂혔다. 


"제가 여러분들 대신에 이륙 전 안내 방송을 해도 되겠습니까?"


승무원은 안내 방송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적으로 모든 승객들은 비상시 안내 방송이 나오는 동안 좌석에 앉아있어야 했다. 대신 다른 제안을 했다. 


"하지만 괜찮으시다면 환영 인사 정도는 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탑승할 항공사는 제주항공이었다. 왠지 대한항공, 아시아나는 어려울 것 같았고, 제주항공은 해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혼자 포기해 버리기 전에 스터디원들에게 다음 주에는 '승객이 기내방송 한 썰'을 풀어놓겠노라 선언해 버렸다. 



여행 이틀 전부터 배가 아리기 시작했다. 왜 떠벌리고 다녔지, 일하는 승무원에게 민폐는 아닐까, 안전수칙 위반이면 어떡하지, 미친 사람 취급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누가 봐도 거절당할 제안을 해야 하다니.


사실 피해가 가는 제안은 아니었다. 합리적으로는. 거절당한다면 그저 제주행 비행기를 평소대로 즐기면 그만이고, 승낙을 받는다면 1분간의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뿐이었다. 승무원의 입장에서도 나의 제안을 듣는 30초 외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 일이다. 무리한 부탁이라면 거절하면 그만이고, 해볼 만한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1분 방송을 내어주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공포는 이성과는 무관한 듯하다.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어떻게 제안할지 연습했다. 후회의 파도가 밀려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걸까. 결국 그 순간이 왔다. 친구를 부여잡고 항공기에 들어섰다. 참담했다. 이렇게 바빠 보이는 승무원을 붙잡고 바보 같은 제안을 건네야 하다니. 


"제가 승무원 준비도 했었고, 제주항공의 오랜 팬인데
비행기 탑승 환영인사를 해볼 수 있을까요?"



승무원 준비는 무슨. 승무원 같다는 소리만 들어봤지 승무원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뇌가 살아보겠다고 거짓말을 내뱉는 걸 비통하게 지켜보았다. 


승무원 두 분은 내 말의 의미를 잠시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이내 한 분이 대답하셨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알아보고 안내드릴게요. 자리가 어디시죠?"


자리를 알려드리곤 얼빠진 몸으로 돌아와 앉았다. "야 뭐래? 된대?" 물어보는 친구에게 다시 안내해 준다는 전보를 전했다. "와 이게 된다고?" 친구가 설레발을 치자 다른 걱정이 생겼다. 설마 진짜 되는 건 아니겠지. 


더 높은 직급으로 보이는 승무원이 다가와서 회사 원칙상 회사와 협의되지 않았으면 어렵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행복한 거절은 처음이었다. 





지금도 그 상황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런 도전을 말했을 때 내 주변 사람 모두가 말도 안 되는 도전을 왜 하냐며 물었다. 많은 사람이 대단하다며 그 용기를 칭찬한 걸 보면, 기내방송 제안은 분명 쉬운 제안은 아니었다. 거절당할 게 뻔한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거절을 두려워할까?  



인간은 거절에 대해 극심한 공포를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거절에 대한 위협적인 불안의 근원은, 우리 선조들의 생존에 있다. 


인간은 홀로 야생에 던져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달리기가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다. 피부는 연약하기 그지없고, 기막힌 사냥을 해낼 만큼 날카로운 이빨도 없다. 


사회적 유대는 곧 생존이었다. 반대로, 무리에서의 탈락은 곧 죽음이었다. 타인에게 잘 보여야만 생존했고, 별난 행동은 곧 고립이었다. 그때의 DNA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귀에 속삭인다. 



"튀지 마. 너 그러다 위험해져." 


"거절은 죽음이야."



거절이 두려울 때 심호흡을 하고 생각해 보자. 제안이 성공 혹은 실패했을 때 나의 생존에 문제가 되는지. 


이번 제안으로 본능의 힘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단 걸 체감했다. 거절당하기 챌린지로 상상 이상의 걱정과 공포를 느꼈다. 거절당해도 내가 죽지 않을 거라는 이성에 호소했지만, 본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내가 극심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DNA가 속삭인다면 귀를 닫아야 한다. 


100번 요청으로 3번의 승낙을 얻는다면, 

100번의 침묵보다 유리하다. 


전두엽, 즉 이성에 힘을 실어주자.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은 DNA가 심은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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