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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ry Kim Dec 09. 2023

해마다 좌절하는 이들을 위하여

직장인의 피할 수 없는 연중행사

정확히 2년 전에도 그랬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면서 여기저기 선배나 동료들에게 조언도 구하고 조직도도 열심히 살펴보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의 밤들을 보냈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십수 년간 해왔던 업무 영역과는 전혀 다른, 그리고 고객과 매우 가까운 접점이라 할 수 있는 부서로 왔었다.  그게 2년 전이다.


이제는 이런 일은 없겠거니 하고 2년을 보냈다.  나름 억지로 찾아서 재미도 붙이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는 업무 단계까지는 왔고 이제 어느 정도 잘 회사생활을 할 수 있겠다 싶은 정도의 시간이 흐른 나날이었다.  그러나, 엊그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재 부서가 기존의 타 부서와 합병되고 팀 내 정해진 인원이 줄어든 관계로 대부분은 타 부서를 찾아서 떠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2년 전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짧게는 1년마다 길어도 2년이면 매번 이렇게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자존감이 떨어지게 이벤트를 하는 회사들이 있다.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의 대부분의 회사는 이런 일을 겪고 있으리라.  명색이 국낸 유수의 IT회사임에도 전문성을 길게 가져가며 해당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가는 그런 모습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어제의 고객에게도 내일이면 "이제 저 그 업무 안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맡게 될 겁니다!"라고 말을 해야 한다.  이런 일이 매년 일어난다.


아주 오래전 미국의 모 회사와 협력할 일이 있어서 자주 미국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미국의 본사 건물로 찾아가서 회의도 하고 의사 결정하기 위한 리스트도 만들고 하던 때가 있었다.  이때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면서 한편 부러워했던 일이 있었다.  여러 건물 동을 옮겨가며 회의를 하다 보면 건물 내의 사람들 표정들과 말투 그리고 자유시간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회사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이하게 느꼈던 것이 하나가 있었다.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작은 방들이 마치 독서실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1인 1실의 형태로 업무를 하는 공간들로 구성된 건물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발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나이 든 사람들이 많지?"라고 느낄 정도로 흰머리에 배 나온 아저씨 아줌마들이 코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느꼈던 감정은, 역시 오래된 IT회사는 그 전문성이 이런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거구나 하는 부러움과 동시에 배려의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그들은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다시, 한국 직장의 연말 분위기로 다시 돌아와서 생각을 해보면, 오늘도 나는 좌절하고 있다.  어디로 다시 이동을 해야 할까, 그리고 다시 또 어떤 새로운 일을 두려운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까 하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아는 선배나 임원에게 기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인사이동은 큰 부담일 뿐 아니라 자신들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전문성은(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젠) 철저히 무시되고 그저 숫자를 채우는데 필요한 대상일 뿐이다.  아마도 고고한 윗사람들은 그냥 새로운 사람 자리에 앉히면 모든 일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다들 적응하게 될 거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 전문성은?  고객은?  신뢰성은?  이 또한 새로운 사람들이 또 알아서 찾을 것이다.


해마다 좌절하며 심지어 나의 인격이 무시되는 느낌을 느껴가며 활로를 찾으려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정글에 버려진 사람과도 같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아픔과 기쁨과 사랑을 느낄 줄 아는 인격체이다.  결국 직장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이런 행태조차 받아들이고 나름 나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조금 전, 다른 부서를 맡고 있는 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당신을 내 조직의 리스트에 올려서 위에 상신을 했으니 기다려보자라는.  결정이 되면 그 부서에 가서 일을 또 1~2년 하게 될 것이다.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라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만약에 안되면 또다시 물처럼 흘러가서 원치 않는 새로운 곳에 강제발령이 될 수도 있다.


올해는 자투리 시간을 할애하여 많은 책들을 읽었다.  하고 있는 일이 가슴 뛰며 즐거운 일이 아닐 때에는 잠시 침잠하며 나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데 힘써야겠다고 생각한 몇 개월 전부터 생긴 나만의 자기 계발 방편이다.  그러다가 이 브런치 사이트를 찾았다.  읽는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이든, 나의 그간의 경험이든 지식이든 적게나마 공유해보는 시간들을 차츰 시작해 보려 한다.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백분의 일이나마 비슷한 사람들도 있고 헤쳐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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