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by 석담

5년 전 겨울.

부산진역 근처의 뷔페에서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던 날이었다. 뷔페 입구에 낯익은 여성이 등장하자 나는 도망치듯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기억하기도 싫은 유년시절의 악몽이 떠올라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기 싫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가 꼴도 보기 싫어서 숨듯이 그 자리를 떠났다.


1978년 봄은 나에게 잔인한 시절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의 봄은 새 학기를 맞은 급우들의 소란스러움으로 어수선했다.

우리 반에는 새로 여자 선생님이 부임해 오셨다.

두꺼운 눈꺼풀과 여드름 자국이 많은 얼굴 탓에 우리는 두꺼비라는 별명으로 그녀를 불렀다.


신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봄날,

나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어떤 이유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전날 숙제를 하지 못했고 그날 아침 담임 선생님의 숙제 검사가 있었다.


교탁 앞으로 불려 나간 나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원산폭격이라는 벌을 받았다. 개구쟁이 급우의 장난스러운 시범을 보고 수업시간 내내 그 고통스러운 원산폭격이라는 체벌을 받았다. 머리를 거꾸로 하고 엎드려 있으니 온 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딱딱한 교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있으니 그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수업 종료 종이 울리고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서 나갔지만 나의 원산폭격은 계속되었다.


아마도 그녀는 내게 벌을 준 사실을 잊은 듯했다.

친한 급우가 분필 지우개를 들고 와서 머리 밑에 받치라며 놓고 갔지만 나의 알량한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의 체벌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날 저녁부터 나의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귓속에서 심장 고동 소리 같은 게 들리고 잠이 전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수업시간에 나의 이상 행동을 감지했는지 선생님은 어머니를 호출했고 그녀는 어머니 앞에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난생처음 대학병원 정신과라는 곳을 갔다.

의사 선생님이 진료하는 동안 나는 연신 눈물이 났다.

며칠분 약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복용하고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일(?) 때문인지 나는 반장이 되었다.

성적은 국민학교 내내 상위권이었지만 반장을 맡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선생님도 내게 무척 살갑게 대해 주셨다. 평온한 듯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날 이후 아무 문제가 없는 듯했고 나의 학창 시절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그렇지만 대학교 2학년 때 정신적 트라우마가 나를 덮쳤다. 두 번의 휴학을 하고 졸업 정원제에 걸려 어렵사리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원하던 직종에의 취업도 실패하고 하루하루 폐인처럼 살다 느지막이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나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나이 마흔에 청천벽력 같은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두 달 동안의 입원과 두 번의 뇌 수술 끝에 생사를 오가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제 나의 삶도 평온을 찾은 듯하다.


5년 전 그날, 초로의 국민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뷔페식당 입구에 모습을 나타 냈다.

모든 동창들이 웃고 즐거워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아니, 화가 났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녀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자리를 떠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나는 이미 어둠이 내린 지하도로 항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묻고 싶다.

"선생님, 초등학교 6학년에게 왜 그런 잔인한 원산폭격을 시키셨나요?"

그녀가 내게 행한 그 체벌 때문에 내 모든 인생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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