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 liebe dich"
그녀에게 유치하기 짝이 없는 독일어 문구를 적어 보낸 건 그녀의 답장이 한 달째 오지 않을 무렵이었다.
보통 보름이면 어김없이 도착하는 그녀의 답장이 무슨 일 때문인지 한 달이 되도록 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15일쯤 지나서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녀의 반가운 답장이 도착했다. 그녀는 나의 오버액션을 너그럽게 이해했고 우리의 편지는 계속되었다.
그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1980년대엔 유행처럼 해외 펜팔 붐이 불었다. 나도 덩달아 해외 펜팔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펜팔 상대 국가는 독일로 정했다. 영어 실력이 달리는 나로서는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는 피해 볼 요량으로 독일을 선택했는데 나의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펜팔 협회의 소개로 그녀의 주소를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첫 편지를 준비했다. 영어 사전과 영한사전을 준비하고 흡사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 마음가짐으로 영작에 몰두했다.
그렇지만 중학생인 나의 영작 수준은 곧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대부분의 문장은 1 형식으로 영어시간에 주워들은 문구로 도배되었다.
부산 우체국의 국제우편 담당부서로 찾아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국제우편물을 보냈다. 편지봉투에 행운의 키스도 잊지 않았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편지를 보낸 후 일주일쯤 흘렀을까? 방과 후에 집에 오면 우편함을 열어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왜 그렇게 더디게 가던지.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은 내게 너무 가혹한 시간이었다. 혹시 집배원이 빠트리지는 않았는지... 온갖 상상을 하며 편지 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보름 만에 그녀의 답장이 도착했다. 난 뛸 듯이 기뻤다.
그녀의 이름은 'Susanne Busche'라고 했다. 나랑 비슷한 또래로 파란 눈을 가진 예쁜 소녀의 사진이 동봉돼 있었다.
베를린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펜팔은 내 학창 시절의 첫 취미가 되었다.
그녀의 답장을 받고 너무 기뻤지만 편지를 개봉하자마자 바로 멘붕이 왔다. 영어 번역에 앞서 글자 판독부터 해야 할 지경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녀의 영어 필체에 스펠링 식별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럭저럭 그녀의 필체에도 익숙해지고 나의 영작 실력도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올라 우리의 편지 교환은 횟수를 거듭해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계속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입시 준비로 바빠 그녀와의 편지 교환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했다.
그 펜팔 경험으로 갈고닦은 영작 실력 때문이었는지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영자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졸업하고 무역업무를 맡으면서 해외 출장을 자주 갈 기회가 있었다. 독일에 갈 기회는 없었지만 이태리 출장길에 독일 공항에 잠시 경유한 적이 있었다.
문득 그녀가 떠올랐다. '잘 살고 있을까?' 그녀가 궁금했다.
귀국하자마자 예전에 그녀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Hello, I am Mr. Kim. How are you? Do you remember me?"
짧은 영어회화 실력으로 더듬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다고 했다. 대화 말미에 다음에 베를린 출장 가면 꼭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 다니던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더 이상 해외출장의 기회는 없었다.
아직도 내 기억 속 파란 눈의 그녀는 우리 집 앨범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