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by 석담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당신이 충분히 피사체에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명언을 접하고 그의 추종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사진학 개론 수업을 듣고 나서다.


그리고는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부모님을 졸라 삼성에서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수동 카메라를 질렀다.

일제 카메라를 사고 싶었지만 너무 고가의 제품이라 없는 살림에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로버트 카파의 추종자가 되기 위해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학교 신문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캠퍼스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기도 했고 졸업 후에는 부산의 일간 신문사 두 군데에 사진 기자 시험을 보기도 했다.

무난하게 합격했는지, 어렵사리 합격했는지 지금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두 군데 다 1차 시험은 통과했다.

실기 테스트인 2차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나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잠시 식은 듯 보였다.

내가 다시 카메라를 메고 나선 것은 서른이 넘어서 인터넷 사진 동호회에서였다.

'로커(rokkor) 클럽'이라는 사진 동호회는 미놀타 수동 렌즈를 주로 다루며 활동하는 사진 동호회였다.


때로는 창념 우포 늪에서 출사도 하고, 때로는 청송 주산지에서 정모도 하며 작품사진에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 당시 회원수가 100명에 육박하며 로커 클럽은 호황을 맞았다.


사진 동호회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비싼 카메라며 렌즈를 구색을 갖춰 장만하려면 기둥뿌리가 몇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로코렌즈는 단종된 렌즈라 이베이(Ebay) 같은 해외 경매 사이트에서 주로 구매했다. 몇 십만 원씩 하는 렌즈를 마누라 몰래 이베이에서 사고팔고 했다.

그 덕분에 현재 이베이 피드백이 58개까지 쌓였다.

나중에는 필름 스캐너까지 구매하는 중독성을 보였다.

동호회 회원들도 '지름신이 강림했다'며 충동구매를 부채질했다.


나의 두 번째 취미는 이렇게 럭셔리하게 반짝이다 그 파국을 맞는다.

필름 카메라의 인기는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시들해졌다.

필름 카메라 유저들은 재빠르게 디지털카메라에 눈을 돌렸으며 나도 필름 카메라와 수동 렌즈 등 모든 장비를 내다 팔았다. 그리고 캐논사의 디지털카메라로 옮겨 탔다.

한동안 디지털카메라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사진 동호회도 문을 닫고 사이트도 사라졌다.

캐논사의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는 집안 장롱 구석에 처박힌 지 오래다.

나의 사진에 대한 정열이 언제 다시 그 불꽃을 피울지 기약할 수 없다.


로버트 카파가 되고 싶다던 젊은이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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