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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서 여섯 달을 살다
by
석담
Nov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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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Landing"
착륙을 알리는 기장의 멘트가 흘러나오고 비행기는 어둠이 내린 토론토 공항에 미끄러지듯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토론토는 4월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겨울의 한기가 남아 있었다.
그제야 이역만리 이국땅에 홀로 남겨진 나를 발견했다.
장장 12시간의 비행 끝에 지구 반대편 북미의 캐나다 땅을 밟았다.
"해외시장개척요원이라 카는데 김 과장 영어 되니까 함 지원해봐라"
연초 사장님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눈이 번쩍 떠졌다.
중소기업의 무역부에서 어느 정도 수출실적을 내던 내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신 거다.
중소기업청에서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서 해외시장 개척 요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월급 받고 정부에서 왕복 항공비와 체제비까지 지원한다니 내게는 꿩 먹고 알 먹는 좋은 기회였다.
토론토 도착 다음날 현지 멘토를 만나 도착 보고를 하고 핀치역 근처에 렌털하우스를 얻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 이민자가 운영하던 월셋집이었다.
다음날부터 걱정 반 기대 반의 캐나다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하루 세끼를 혼자 해결해야 했다. 근처 한국 마트에서 쌀과 육류, 야채를 구입해 요리를 했다.
거창하게 요리라고 말할 것도 없이 고기를 삶거나 볶거나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다.
닭고기는 주로 백숙을 해 먹었고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프라이팬에 볶아 먹었다.
국내에서는 입에도 대지 않던 외국산 소고기가
주식이 되었다.
점심은 밖에서 간단하게 분식류나 샌드위치 등으로
때윘다.
캐나디안들은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던 원두커피를 하나씩 들고 다녔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진정한 캐나디안이 되는 것처럼.
"아메리카노 플리즈!"
커피 판매점 앞에서 호기롭게 외쳤다.
"For here or to go?"
점원의 물음에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계속 "I beg your pardon"만 남발했고 점원은 멍한 표정으로 포기한 듯 커피를 내주었다.
나중에 한국 친구들을 만나 그 의미를 듣고서야 얼굴이 붉어졌다.
해외시장개척 업무는 생각만큼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바이어 명단을 검색하고 전화 연락 후 일주일에 한두 번 현지 업체 방문해서 견적 요청을 받아 본사에 보내주면 되었다.
토론토 생활이 어느 정도 몸에 익을 무렵 뉴욕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
퀘벡은 이미 자동차를 렌트해서 한번 다녀왔었다.
캐나다 서부의 로키산맥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지만 비싼 비행기
삯
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일찌감치 포기한 터라 뉴욕은 꼭 가보고 싶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뉴욕에는 한번 가봐야지'
뉴욕행을 결정도 하기 전에 나는 벌써 뉴욕행 시외버스 표를 예약하려고 인터넷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캐나다에는 이용 날짜가 많이 남은 버스표를 엄청 싸게 파는 사이트가 있었다. 심지어 단돈 5달러에도 예약이 가능했다.
'질주하는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했던가?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뉴욕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모든 걸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이방인으로서의 객창감으로 나는 야간 버스 안에서도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캐나다와 미국 국경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려 입국검사를 받았다.
입국심사대에서 파란 눈의 출입국 담당 직원이 미국에 왜 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억지로 웃음 띤 얼굴로 'For tour'라고 짧게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뉴욕의 유니온 지하철 역 앞이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 내리는 인파에 섞여
나는
그들 속에서 뉴요커처럼 행동했다.
차이나 타운에 미리 예약해 둔 숙소는 한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다. 하루 종일 박물관, 미술관,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를 둘러보고 해 질 녘에 티브에서 자주 보던 월스트리트를 찾았다.
' 이 중요한 장소에서 기념사진은 찍어야지'
내가 뉴욕에 왔음을 한눈에 알릴 수 있는 장소는 여기라고 판단한 나는 사진을 찍기로 했다.
지금에야 스마트폰 카메라가 일반 카메라 못지않지만 그 당시에는 사정이 달랐다.
집에서 가져온 캐논 카메라를 제일 착하고 마음 좋아 보이는 미국인에게 건네고 정중히 부탁했다.
"Would you take a picture for me?
최대한 한국적인 발음이 나지 않도록 혀를 굴렸다.
그 미국인은 친절하게도 웃으면서 찍어 주었다.
월 스트리트 근처에 별 그림이 그려진 세계적인 커피점이 보였다. 지금에야 우리나라에도 흔한 커피 판매점이지만 그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다.
커피점에는 사람이 많았다. 역시 뉴욕이구나 생각하면서 커피를 주문했다. 테이크 아웃하겠다는 말도 잘 알아 들었다. 모든 게 술술 잘 흘러갔다.
커피 한잔 받아 들고 밖의 의자에 앉아 마시며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그렇다.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
너무 긴장한 탓에 커피를 받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오면서 잔돈을 챙기지 않은 것이다
.
다시 거스름돈을 받으러 들어가기에는 나는 그때 너무 소심한 뉴요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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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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