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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Mar 18. 2024

뜨거운  과거로의 회귀, 강진

강진 덕룡산 산행 후기

"내가 강진에서 어렵게 열아홉을 넘길 무렵 그녀의 불행한 사랑에 대한 풍문을 마지막으로 나는 거의 그녀를 잊고 지냈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독서에 흥미가 없던 내가 대학  새내기 때 읽고 공감한 소설은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강렬한 몰입감으로 주인공 영훈의 고뇌와 방황, 무력감을 나와 동일시하며 소설을 두 번이나  읽었다.


여세를 몰아 '사람의 아들'도 읽어 보았지만 '젊은 날의 초상' 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그리고 한 세기의 시간이 흐른 후 삼국지와 수호지로 이문열 작가의 글을 다시 접했다.

하지만 그의 다른 글에서는 그때의 가슴 시린 기억을 찾을 수 없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지명 '강진'은 낙동강 하구의 가상의 도시이지만 내 뇌리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강진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이 자리 잡았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그 기억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는 어느덧 백발성성한 중년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떠나는 산행장소가 기억을 소환하는 익숙한 이름 "강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설레었다. 

강진은 전라남도의 군으로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잘 알려져 있다.


정약용은 다산초당이라 불리는 유배지에서 18년간 귀양 생활을 하면서 지방관리의 행정지침서인 목민심서를 집필했다.

실학자 정약용과 그의 가족들의 잔혹했던 삶은 고난의 역사였다.

형제인 정약전과 정약종, 그리고 매형 이승훈의 비극적인 삶은 시대의 운명이었던가?


그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며 한발 한발 내딛는 강진 덕룡 자락에는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霧津紀行)에서 주인공 윤희중이 보았을 무진을 닮은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해발 500미터도 채 안 되는 야트막한 산에 넓게 분포한 암릉은 고단함과 위험을 동시에 경고했다.

귓가를 때리는 북풍의 매서움 또한 바닷가에 자리 잡은 강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 주었다.


대리석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백옥 같은 하얀 돌이 구석구석 박힌 듯한 바위를 한참이나 오르내리고 나니 또 다른 암벽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가파른 바위 벽에 군데군데 철계단을 만들어 등산객들이 밟고 올라서기 쉽도록 해 두었다.


가야산 만물상의 바위가 둥글고 모가 나지 않았다면 덕룡산의 바위돌은 거칠고 뾰족해서  쉽게 그 정상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서너 개의 돌로 짜 맞춘듯한 봉우리들을 거치자 동봉과 서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 정상에서 멀리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희끄무레한 안개에 싸여 보일 듯 말듯한 강진의 바다는 그렇게 내 두 눈 속에 들어와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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