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담 Mar 06. 2024

나는 하남자(下男子)다

얼마 전이었다.

저녁 무렵에 TV를 보던 아내가 혼자 낄낄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를 보고 웃는 게 평소와 달라 보였다.

그러다 한술 더 떠 내게 손짓을 하며 웃음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당신은 하남자야"


순간 나는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직감적으로  하남자가 상남자와는 상반된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여태 상남자라는 어휘는 일상에서 많이 접했지만 하남자는 단어는 그날 아내를 통해 처음 접했다.


"하남자 :남자답지 못하고 속이  좁은 남자를 뜻하는 신조어"


'어라, 이런 단어도 있었네'

나는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고 아내 몰래 스마트폰을 뒤적였다.  그곳에는 버젓이 '하남자' 있었다.

상남자 바로 아래에 하남자의 의미가 뚜렷이 있었다.


아내의 말에 즉각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건 아내의 표현이 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고 평소에 내게 각인된 상남자의 이미지가 꼭 좋은 의미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식스팩이 있는 근육질의 몸매에 문신 한두 개쯤 있는 나쁜 남자 같은 이미지나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에 담배 피우는 모습도 멋있어 보이는 건달 같은 남자들만 상남자로 여겨졌다.

내 모습하고 매치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 나는 상남자가 아닌 게 확실하다.


근데 왜 마누라는 상남자에 열광하며 나를 하남자라고 비웃었을까?

내가 헬스클럽에 가서 근육을 만들고 터프하게 행동하면 나도 상남자가 되는 걸까?

생각이 여기까지 떠오르다 문득 사촌형이 떠올랐다.


지난 설날에 사촌형집에서 차례를 지내며 아내가 사촌형을 가리키며 아주버님이 상남자라고 이야기하던 게 떠올랐다.

사촌형은 소위 종합 무술인으로 근육질의 몸은 물론이고 말술에 흡연까지 상남자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색소폰 연주에까지 일가를  이루었으니 상남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다 구비했다.


나는 어떤가?

한 번도 근육이라는 것을 만들 노력도 해보지 않았고

소주는 한 병을 초과해서 마시기를 겁내고

담배도 멀리한 지 오래이니 애당초 상남자 되기는 틀린 듯하다.

그렇다고 상남자로 살지 못하는 것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상남자와 하남자로 양분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이기도 하고 상남자를 최고로 받드는 미디어의 역할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샛별 보고 출근해서 퇴근하면 옆길로 새지 않고 곧장 집으로 오는 하남자.

마누라 오기 전에 설거지도 하고 밥도 하고 반찬도 만들 줄 아는 하남자는 어떤가?


가정을 제일 소중하게 여기고 가족을 먼저 챙기는 가장,

멋진 남자보다는 착한 남편이 어울리는 하남자의 삶도 괜찮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