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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Oct 28. 2023

나는 아내에게 다시 도전하라고 말해 주었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공인중개사 2차 시험이 있는 날이다.

아내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다녀오겠다며 시험장으로 떠났다.  시험장까지 차로 데려다주지 못해서 못내 미안했지만 예정된 텃밭 작업이 있어서 나는 주말 농장으로 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최종평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며  내일 시험에도 이렇게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들뜬 목소리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늦은 오후 시간  담담한 목소리로 시험을 끝냈다는 전화 통화를 했다.

나는  저녁 무렵 주말농장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가답안이 나오지 않아 채점을 하지 못했다  했다. 저녁을 먹고 난 늦은 저녁에 아내는 카톡으로 떨어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 실망해 있을 아내를 생각해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아내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시험 공부하느라 집안 살림에 손을 놓았었다.

아내가 시험준비하는 동안 퇴근 후 밥  하고 반찬 만드는  일과 설거지가 모두 내 몫이었다. 계속되는 식사 준비와 설거지에 나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아내는 재작년부터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  첫해는 준비를 전혀 못하고 인강 무료이용권을 받기 위해 부산까지 가서 시험을 보고 작년에는 1차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나의 노후는 자기가 책임질 거라며 호기롭게 얘기했었다. 나는 그냥 슬며시 웃어 주었다. 아내에게 말은 안 했지만 노후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흐뭇했다.


아내가 2차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8월에 2차 시험 원서를 접수하고 나서 한참 뒤였다. 직장생활,  집안 살림에 처가의 장인어른도 챙겨드려야 하는 바쁜 일상 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밤늦게 까지 남아서 중개사 시험 2차를 준비했다.


퇴근해서 내가 저녁을 준비하면 같이 저녁을 먹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밤늦은 시간까지 책과 씨름했다.

내가 일찍 잠들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정확한 취침시간을 알지 못한다. 항상 아침에 출근하기 전 방문을 열어보면 아내의 방에는 불이 켜져 있고 노트북에서는 인강이 여전히 방송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의 등을 고 출근하고는 했다.


우리 부부는 아직까지 한 방에서 잠이 든다.

지금껏 부부싸움  때 빼고는 각방을 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지난 몇 개월간 아내의 시험준비를 위해 우리는 원치 않는 이별을 했었다.


아내는 내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시험 준비하는 동안 나의 수고에 대한 미안함일 것이다.

그래도 낙방의 아픔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 일 것이다. 아내가 많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내는 강단이 있는 여자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는 꼭 이루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녀는 다시 도전해서 꼭 해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다시 도전하면 될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내년에 혼자 살림 살 일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나도 사람 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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