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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May 10. 2024

예순의 나이에  이직을 준비하다

집안 나이로 60세.

내년이면 환갑이라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급우울 모드에 빠져든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 날들이 적게 남았다는 절망감은 사람을 슬프게도 한다.

작년 하반기부터 정부에서 만으로 된 나이를 공식적으로 쓴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겨우 만 57세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내 몸은 벌써 60세라고 매일 아침 어깨며, 목이며, 허리가 자고 나면 속삭인다.


만 20년이 되었다.

햇수로 21년째 지금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

돌이켜 보면 20년 동안 같은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건

내 자의라기보다는 가족의 무게, 월급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회사가 좋아서, 너무너무 일하고 싶어서 회사를 다닌다면 믿을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내가 브런치에 심심하면 소환해서 씹어 대던 악덕 사업주가 지금 다니는 회사의 회장이다.

이제 그만 씹어 대고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회장의 욕지거리가  이제는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ㅅ"과 "ㅈ"으로 시작하는 그의 욕설을 더는 듣고 있을 인내심이 사라졌다.

칠십이 넘은 노인네가 입에 걸레를 물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역겨웠다.

녹색인증을 혼자서 준비해서 본심사까지 갔다가 고배를 마셨다.

인증을 못 받았다고 욕지거리를 해대는 그를 보며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 2월 대기업 실사가 있어서 주말에 연  3일을 나와서 특근을 했다.

경리과에서 월급 결제를 올렸는데 회장이 나를 불렀다.

'부장이 되어서 모범을 보여야지 이런 걸 받으려고 하냐"며 도리어 나를 나무랐다.

너무 화가 났지만 아내와 딸들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주 5일제에서 후퇴해 요즘은 매주 토요일 출근을 하고 있다.

평일날 저녁에도 1주일에 한 번씩 당직을 선다.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포괄임금제라며 사무실 직원들에게 수당을 주지 않는다.

너무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이다.


회장실에 결제를 들어가면 내가 요즘 들어 새롭게 는 말이 있다.

"니도 이제 나이 먹더니  다 됐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란 말인가?

일흔셋 먹은 노인네가 예순 먹은 중년에게 할 소리는 아닌 듯하다.

그에게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인간에 대한 존경심, 우리는 그것을 외경(畏敬)이라 한다.

너무 힘들어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힘들어서 그만 퇴직해야겠다 했더니 아내가 다른 데서 또 다른 시작을 해보란다.

그러면서 아내는 구직 사이트에서 몇  개의 구인광고를 골라 내게 캡처해서 보냈다.

그것이 내게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 후 그것은 큰 물결이 되고 파도가 되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20년째 등록하지 않았던 구직포털 사이트에 내 개인 정보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대구 근교 시골의 업체 한 곳에 지원서까지 제출하고야 말았다.


나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나도 회사에서 채용업무를 진행하지만 나이의 한계는 너무 가혹하다.

지금의 회사에서는 거의 50세 미만의 기혼자 위주로 채용하고 있다.

50세 이상의 구직자들에게는 서류전형의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 하루는 바쁘고 흥분되고 특별한 하루였다.

물론 며칠 후에 여전히 같은 일상을 보낼지 또 다른 삶의 터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나는 두 딸들에게 아빠는 60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고 무용담처럼 말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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