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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Jun 24. 2024

살구가 익을 무렵

청마와 정운의 그리움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草堂)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이호우 시인의 "살구꽃 핀 마을"이다. 밭에 오래된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특별히 돌보거나 챙기지 않아도 해마다 튼실하고 먹음직스러운 살구를 내어 준다.

작년에는 살구꽃이 일찍 피는 바람에 냉해 피해를 입어 살구  구경을 못했는데 올해는 나누어 먹어도 될 만큼 많은 살구 열매를 선물해 주었다.


농장 근처의 경로당에도 한 바구니 갖다 드리고 친지들과 지인들과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생긴 거는 마트에 파는 것만큼 크지도 않고 볼품없이 생겼지만 맛은 훨씬 뛰어났다.

새콤 달콤한 살구 열매를 먹다가 문득 이호우 시인의 살구꽃 핀 마을이 떠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호우 시인과 이영도 시인의 생가가 청도 주말농장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동안 한 번도 찾아갈 생각을 못한 게 아쉬워 이번 주말에라도 당장 찾아볼 생각이다.

중학교 시절 영어선생님의 큰아버지가 이호우 시인이었다. 이호우 시인의 여동생이 정운 이영도 시인이다. 그녀는 통영여중에 재직하면서 유치환을 만났다.


청마 유치환은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 근처  남여상 교사로 근무하다 부산시내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시는 학창 시절 연애편지에 자주 인용됐고 고등학교 시화전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었다. 

그 시절 나도 연애편지에 청마의 시를 뻔질나게 인용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불륜이었을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 여사의 20년간 계속된 5000통의 연서를 통한  세기의 로맨스는 여전히 현대인들의 심금을 울린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의 세상에 시사하는 바가 있으리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 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의  '행복'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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