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삼킨 바다 위를 비춘 형형색색의 불빛은 데칼코마니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야경에 취해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부산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애초에 서울생활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2년간의 치열했던 대학생활에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결국 휴학계를 내고 말았다. 패잔병처럼 상처 투성이로 돌아온 나를 보듬어 주고 위로해 주던 것은 부산 앞바다 였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된 집이 없었다. 좁은 방한칸에 다섯 식구가 몸을 부대끼며 살기도 했다. 가정방문을 온다하면 엄마는 이웃집으로 도망가기 바빴고 번듯한 집에 제 방을 가졌던 동갑의 주인집 아들을 부러워 했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걷다보면 숨이 턱턱 차오르는 산 비탈의 중턱쯤에 아버지는 집을 구했다. 나는 왜 이런 산꼭대기에 집을 샀나며 아버지를 원망했었다.
5년 전에 부산의 집을 팔고 부모님을 청도로 모셨다. 이사하기 전날 밤에 아버지는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부산의 밤 풍경을 오랫동안 눈에 담아두기라도 하려는 듯 한참동안 밤바다만 보고 있었다. 내가 지친 몸으로 옥상에서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던 그 바다였다.
나는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바다로부터 위안과 위로를 받은게 나만이 아니었음을.
아버지는 부산의 밤풍경과의 이별을 못내 아쉬워 하며 오랫동안 거실에 남아 있었다.
청도로 이사 오신 후 아버지는 한동안 낯선 곳에서 힘들어 하셨다. 여전히 부산을 그리워 하셨고 가끔은 그곳으로 데려다 달라며 떼를 쓰기도 하셨다. 아버지는 세월을 이길 수 없었다. 시간의 궤적은 아버지의 기억을 무디게 만들었고 그렇게 아버지는 부산을 떠나 보냈다.
아버지와 나의 마음의 안식처, 부산의 밤바다는 영원히 오래된 기억의 편린이 되어 죽는 날까지 우리의 뇌리 속에 넘실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