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

by 석담

엄마의 손을 볼 때면 아스라이 떠오르는 기억 몇 개가 나의 가슴속을 아리게 한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난데없는 한마디는 훈훈하던 밥상머리 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너희 엄마 봐라. 일하다 손가락을 다쳐서 피도 철철 흘리고 병원 갔다 안카더나?”


나는 밥을 먹다 말고 고등어자반을 발라 주시던 엄마의 손가락을 살폈다. 엄마의 손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고 연한 핏자국이 스며 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시다 기계에 손가락 끝이 잘려 나가는 아찔한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대충 병원에서 치료만 받고 오후 근무를 거르고 집으로 오신 것이었다. 나는 밥을 계속 먹긴 했지만 흡사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눈물이 찔끔 찔금 흘러나와 입속으로 들어가서 눈물과 밥을 같이 먹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절대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가족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 울지 말고 밥 먹어라”


엄마는 어떻게 아셨는지 나를 다독이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씀하셨다.

지금도 가끔씩 엄마의 뭉툭한 검지 손가락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부산에서 청도로 이사 온 후 엄마는 농협에서 통장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어느 날인가 엄마를 모시고 농협에 갔다. 신청서에 자필로 이름을 써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대신 쓰라고 하셨지만 은행 직원은 본인이 직접 써야 한다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엄마는 웃으시며 잘 못쓴다고 하시면서도 펜을 들고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제대로 못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엄마는 문맹으로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여러 명의 외삼촌 사이에서 가부장적 외할아버지와 지독한 가난 탓에 배움의 기회를 얻기 어려웠으리라. 엄마는 삐뚤빼뚤 이름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이름 석자를 완성하신 엄마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지난 설이 지나고 청도 본가에 갔을 때 엄마는 평생을 간직해 오신 당신의 패물 주머니를 꺼내어 반지며 시계, 목걸이를 하나씩 우리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엄마는 금가락지 하나를 꺼내어 당신의 손가락에 마지막으로 끼어 보시며 반지와의 이별이 아쉬운 듯 말씀하셨다.


“이제 손가락이 이렇게 안 이뻐서 반지도 안 들어간다.”


나는 그때 평생을 가정과 일터를 지키느라 고단했을 엄마의 투박한 손을 보았다. 손가락 마디가 굵어지고 삐뚤어진 엄마의 손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손을 닮아 있었다.

올해 여든다섯의 늙은 노모는 주말이면 나를 기다리신다. 엄마가 해주신 밥을 맛있게 먹고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을 제일 좋아라 하신다. 이번 주말에는 엄마 앞에서 어리광이라도 부려 볼 참이다.


* 사진은 챗지피티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