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낮은 집

by 석담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반듯한 새집들이 들어선 그곳에 어릴 적 살던 우리 집의 흔적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곳에는 우리 가족이 처음 부산에 정착하여 살았던 ‘마당 낮은 집’이 있었다. 마치 어제까지 살았던 것처럼 지금도 집 구조를 눈감고 그려낼 수 있을 만큼 그 집은 나의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었다. 골목길 담벼락 옆 대문을 열고 서너 계단 내려가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긴 복도 같은 통로 옆으로 쪽방 문을 닮은 부엌문이 서너 개 이어져 있었다. 늘 헛구역질을 유발하는 매캐한 수채 냄새가 진동하고 담 너머 거리의 발소리와 두런거림이 벽을 뚫고 그대로 스며들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싸구려 찬장과 연탄아궁이로 발 디딜 틈 없는 축축한 젖은 부엌 너머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방 한 칸이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그 집에는 해가 뜨지 않았고 지는 해를 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행복했다.

어머니는 부뚜막에 앉아 밥상 앞에서 숙제를 하는 내 모습을 보시며 가난한 삶의 시름을 덜어내셨고 막노동으로 피곤에 절은 아버지는 내가 받아 온 상장을 보시며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셨다.


내가 자라듯 우리 집도 나와 함께 조금씩 달라져 갔다. 방 하나와 다락이 딸린 전셋집으로 옮긴 뒤, 방 두 개의 주택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그제야 비로소 나만의 방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방은 나만의 세상이었다. 부끄러움 많던 소년이 이성에 눈을 뜨고 청년으로 자라난 사색의 공간이었다. 또한 그 집에서 나는 처음 강아지를 키우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다. 똘망똘망한 눈빛의 새끼 강아지 세 마리가 태어나던 날 우리 가족은 새 생명의 탄생을 손에 땀을 쥐고 숨죽여 지켜보았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는 자가 주택의 세대주가 되었다. 산중턱 고지대의 전망이 트인 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대학에 진학했고 결혼을 한 뒤 집을 떠났다. 내가 떠난 뒤에도 부모님은 오래도록 그 집을 지키셨다. 아버지가 힘들게 마련한 그 집을 몇 년 전 내손으로 정리하고 부모님을 청도로 모셔 왔다.


지금 나는 온종일 햇볕이 드는 남향의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절간처럼 고요하고, 하수도 냄새 하나 없이 늘 깨끗이 정돈된 곳이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집이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어둑어둑하고 허름했던 그 옛집이 떠오른다. 젊고 환하게 웃던 어머니와, 힘줄 선 팔뚝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던 아버지의 너털웃음이 머물던 곳. 이제는 사라진 그 집이, 여전히 내 안에서 가장 또렷한 집으로 남아 있다.